국민의힘 김기현, 권성동, 안철수 의원과 나경원 전 의원이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신년인사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3.1.2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나경원 전 의원이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10일 밝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당심’ 1위를 달리는 나 전 의원의 사의 표명이 국민의힘 당대표를 뽑는 3·8 전당대회 출마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이는 가운데, 그는 “(출마 여부를) 좀 더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나 전 의원은 이날 밤 기자들과 만나 “(윤석열) 대통령에게 심려를 끼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내려 놓겠다는 뜻을 표했다. 문자와 전화로 (대통령실 쪽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10월13일 나 전 의원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장관급)으로 임명한 지 3개월여 만이다.
나 전 의원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사의를 밝힌 데는 지난 6일 대통령실이 “정부 기조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출산 시 대출 원금 일부 탕감’이라는 자신의 저출산 대책을 공개 면박한 게 결정적이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부위원장 해촉”까지 언급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나 전 의원으로서는 대통령실의 ‘불신’을 확인한 이상 직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나 전 의원은 ‘부위원장직 사의=전대 출마’라는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대한민국과 국민의힘, 대통령에게 어떤 결정이 도움이 될지 고민하고 있다. 어떤 형태의 당과 전당대회 모습이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될런지에 고민의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위원회 신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나 전 의원은 이날 부위원장직 사의를 오후에 언론에 공개하기에 앞서, 오전에 서울의 한 호텔에서 친윤석열계 핵심인 이철규 의원과 비공개 회동을 했다. 이 의원은 회동 뒤 “우연히 만난 것이고, 의미 있는 이야기는 없었다”고 했으나 친윤계가 김기현 의원에게 힘을 몰아주는 상황을 고려하면, ‘윤심’을 거스른 전대 출마 강행을 만류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나 전 의원은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으나 대통령실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마를 강행하는 것은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나 전 의원은 불출마로 갈 것”이라며 “출마를 안 할 거 같다. 대통령실에서 사의를 반려해주면 퇴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일 나 전 의원이 당대표 출마를 결심한다면, ‘친윤 대표 추대’로 흐르던 전당대회 구도는 ‘윤심’을 등에 업은 김기현 의원과 ‘당심’(국민의힘 지지층 여론조사)을 내세우는 나 전 의원 사이의 이른바 ‘친윤 대 비윤’ 구도로 재편될 수 있다. 한 중진 의원은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이야 공천이 걸렸으니까 윤석열 대통령에게 줄을 설지 몰라도, 일반 당원들은 다르다”며 “지금 대통령실이나 친윤계가 나 전 의원에게 해도 너무한다는 동정표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불쾌한 표정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나 전 의원의 사의 표명과 관련해 “들은 바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고 말했다. 나 전 의원은 이날 김대기 비서실장과 통화에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 사임하라는 것이냐’라는 취지의 대화를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관계자는 “명시적으로 사의를 밝히거나 서면을 보낸 게 아니다”라며 “그래서 대통령실에선 사의 표명이 없었다고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영지 배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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