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8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노동조합은 불법 세력’이라는 메시지를 앞세워 ‘부패 엄단’ 기조를 부각하고 있다. 노동계를 대상으로 부패-반부패 구도를 형성한 뒤 검찰총장 출신인 자신의 존재감을 환기하고 지지층을 결집하겠다는 행보로, 왜곡된 노동관에 이어 실종된 정치 리더십의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노조의 회계장부 공개 거부 상황을 언급하며 “노동개혁 출발은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라고 강조했고, 건설 현장의 갈취·폭력 행위에 대해서는 “임기 내 반드시 뿌리 뽑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건설현장 폭력’을 ‘건폭’이라고 줄여 말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건설현장 폭력’은 ‘어려운 서민에 대한 조직적 범죄’라며 ‘건폭’이라는 줄임말을 직접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의 집권 2년차 노동개혁의 밑그림은 노조를 표적으로 한 전방위적 공세로 요약된다. 노동시간이나 임금체계, 파견제도 등 오래된 노동개혁 의제를 살피기보다 ‘법치’를 부각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여소야대로 법률 개정에 한계가 있는 상황에서, 검사 이미지를 바탕으로 지지율 상승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 당시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지지층이 결집하고 국정 지지율이 40%대로 반등한 ‘학습효과’의 결과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도 “올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헌법의 근본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며 “노조가 정상화돼야 기업의 가치가 올라가고, 자본시장도 발전하며, 수많은 일자리도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이도운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이날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 자료 중 사용자 쪽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불법 하도급, 임금 체불 등으로 인한 불안정한 수입 등 미흡한 근로여건도 건설사업자-근로자 간 부당한 거래를 유발하는 요인”이라고 딱 한줄로만 요약돼 있었다. 노동개혁은 노동자와 기업·정부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타협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노조만 적으로 모는 편향된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내놓고 있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이 기존 노조와 엠제트(MZ) 노조를 구분 짓는 것도 노동개혁을 위한 노림수로 읽힌다. 윤 대통령은 전날 관계부처 장관들의 보고를 받은 뒤 “강성 노조의 폐해 종식 없이는 대한민국 청년의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공정’ 이미지를 공고히 하면서 노동개혁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속내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세대·구조적 갈라치기를 통한 윤석열 정부의 노동계 흔들기 작업이 본격화했다고 지적한다. 정치학자인 이관후 박사는 “정규직 비정규직 구조 문제를 세대 논쟁으로 가져왔던 이명박 정부 시절의 모습을 윤 대통령은 ‘엠제트 세대’로 이름 붙여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 화물연대 강경 대응에서 효능감을 느낀 윤석열 정부가 개혁 과제 실행을 위해 이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정치외교학)도 “보수 이념적 결집을 이끄는 차원의 갈라치기는 물론, 부패-반부패 구도를 통해 깨끗한 정치 이미지를 형성하는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라며 “노동계를 만나 협력하고 자정 노력을 촉구하는 대화 프로세스가 필요한데, 지금처럼 표적을 정해 수사하는 방식은 검찰의 모습이지, 정치인의 모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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