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현대자동차 국내영업본부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던 김선영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 지회장이 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경찰에 현행범 체포되고 있다. 금속노조 제공
두께 1㎝도 채 되지 않는 스티로폼 손팻말(피켓)로 경찰 앞을 막았다는 이유로 시위 참가자를 체포한 경찰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공권력 남용”이라며 경찰서장에 직무교육을 요구했지만 경찰이 이를 거부했다. 영상으로 경찰의 무리한 체포가 확인됐음에도 경찰은 “적법한 물리력 행사”라고 주장하고 있어, 경찰이 인권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7일 인권위는 서울 수서경찰서 대치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에게 직무교육을 하라는 인권위 권고를 경찰서장이 수용하기 어렵다고 회신했다고 밝혔다.
인권위 결정문을 보면,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구 현대자동차 건물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현대차 판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기본급 등을 요구하며 시위하던 김선영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 지회장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시위 소음 신고를 받고 출동한 뒤 채증 과정에서 김 지회장 쪽과 실랑이를 벌인 직후였다.
경찰은 “김 지회장 쪽이 선전 피켓으로 얼굴을 2회 내려치는 폭행을 가했다”며 체포에 나섰다. 김 지회장이 체포에 응하지 않고 저항하자, 경찰 2명은 김 지회장의 목을 잡고 수갑을 채우려했고 수갑이 채워지지 않자 김 지회장의 목을 젖혀 넘어뜨리기도 했다. 이에 김 지회장은 체포 과정에서 공권력의 부당한 물리력 행사가 있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경찰이 제출한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본 인권위는 “김 지회장이 들고 있던 피켓이 얼굴에 닿았다”면서도 “김 지회장이 경찰을 향해 선전 피켓으로 1회 막는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해당 손팻말이 0.7~0.8㎝ 두께의 스티로폼으로 “엄지와 검지로만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인권위는 형법상 공무집행방해죄는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방해할 만한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는 2007년 대법원 판례를 들어 경찰이 김 지회장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한 과정은 “합리성을 잃은 공권력 행사의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또 인권위는 김 지회장이 ‘스스로 (경찰서로) 가겠다’고 수차례 발언한 정황으로 보아 “당장 체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급박한 사정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판단을 바탕으로 지난 7월 인권위는 수서경찰서장에 경찰관 직무교육을 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수서경찰서장은 “(경찰관이) 적법한 공무집행을 했고, 체포 과정에서 정당하게 경찰 장구와 물리력을 사용한 것”이라며 “과도한 제압으로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경찰의 이런 답변은 윤희근 경찰청장 체제에서 과감한 물리력 행사를 강조하는 기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물리력 사용보고서’를 보면, 경찰의 물리력 사용은 2020년 6191건에서 2022년 9490건으로 2년새 53%가 늘었다. 민갑룡 청장 때 526건이던 물리력 사용은 윤 청장 재임기에 월평균 936건으로 77% 증가했다. 전임 청장인 김창룡 청장 때(575건)보다도 62% 는 수치다.
금속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경찰은 국가기구인 인권위 결정까지 정면으로 거슬렀다. 인권 포기 선언을 한 것과 같다”며 “노동자가 피켓을 들기만 하면 계속 체포하겠다고 공언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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