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기금과 관련한 한·일 정부 협상을 피해자 반발 등 국내 비판 여론에도 서둘러 마무리 지으려는 데는 ‘한·미·일 협력’에 쏠린 현 정부의 외교 정책 기조가 깔려있다. 윤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를 한·일 관계 개선의 최대 걸림돌로 보고, 이를 넘어서서 안보·경제 등 한·미·일 협력 반경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라는 게 정부 쪽 설명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5일 <한겨레>에 “이 사안이 정부의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왜 이렇게 결론짓게 되는지 큰 그림을 봐야 한다”며 “신속하게 결단해야 한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달 중 한·일 정상 ‘셔틀 외교’를 복원하고, 4월에 미국 방문, 5월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옵저버(참관)로 참석하면서 한·미·일 강화 기조를 대외적으로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5일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하며 ‘강제동원 피해자 해법 문제도 논의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한·미 양측 간 논의할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해서 한·미·일 안보 협력, 더 나아가 한·미·일 전반적인 관계 발전을 위해서 미국이 할 수 있는 역할, 한·미 동맹 차원에서 챙길 수 있는 그런 어떤 방안들을 논의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중국·러시아·북한에 맞서기 위해 한·미·일 협력을 주요 축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을 필수적으로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부터 “이념 편향적인 죽창가를 부르다 여기까지 왔다”(2021년 6월), “외교가 국내 정치로 들어왔기 때문에 한·일 관계가 최악이 됐다”(2021년 11월)며 전 정부의 대일 정책을 비판했다. 지난해 9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는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문제 등을 한·일 안보 협력, 경제·무역 문제 등의 현안과 함께 하나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일괄 타결) 하고 싶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번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또한 전 정부에서 미룬 사안을 자신이 일괄타결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지난 1일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협력 파트너로 변했다”며 과거사 문제나 민감한 현안은 전혀 거론하지 않은 것도 이런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1997년 우리나라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재판소에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이래 만 25년 넘게 이어져 온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국민적 공감대 형성 없이 ‘밀어붙이기’에 나서면서, 여론의 강한 반발은 불가피해 보인다. 역대 정부에서도 대일 외교 과정에서 불거진 ‘반일 감정’은 정치적 부담으로 여러차례 작용해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며 “양쪽이 조금씩 양보해서 만들어가고 그런 내용을 이해시켜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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