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참석을 위해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국민 담화’를 연상시켰던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정상회담 관련 21일 국무회의 발언에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대일 외교정책 기조를 뒷받침하려 언급한 국내외 사례를 두고 전문가들은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정합성이 있어야 하는데, 무리하게 갖다 붙인 느낌”이라고 평했다.
2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제3자 변제안)과 관련해 “1965년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은 한국 정부가 국민의 개인 청구권을 일괄 대리해 일본의 지원금을 수령한다고 돼 있다”는 전날 윤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당시) 한-일 회담 과정에서 일본이 한국인 피해자 개인에게 (지원금을) 직접 지급하겠다고 한 제안에, 후속 조치는 한국이 하겠다는 취지로 대응한 기록은 있지만, 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 어디에도 그런 문구가 없다. 더 중요한 건 2018년 대법원 판결이 명확하게 선언한 것처럼,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라며 “전혀 관련 없는 두가지를 뒤섞었다”고 짚었다.
윤 대통령이 중-일 수교 과정에서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전쟁 배상 요구를 포기한다”고 했다고 강조한 것도 논점에서 벗어난 사례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일본학)는 “중국은 ‘전쟁 희생자가 흘린 피에 값을 매길 수 없다’며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 배상권을 포기하긴 했지만 수교 이후 30여년 동안 막대한 규모의 엔 차관을 지원받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국 쪽이 개인의 배상권까지 포기한 건 아니었다. 중국 쪽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일본 니시마쓰건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벌였다가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에서 패소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강력 항의하고, 중국 내에서 반일 여론이 들끓으면서 가해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하고, ‘화해금’을 지급했다.
윤 대통령이 “과거를 넘어서야 한다”며 근거 사례로 제시한 독일-프랑스의 ‘화해’도, 한-일 관계의 현실을 외면한 발언이란 비판이 나온다. 철저한 반성에 기초해 나치 잔재 청산에 나선 독일과, 사죄·반성을 언급하고도 걸핏하면 식민지배의 불법성까지 부인하는 일본을 등가로 놓고 볼 수 없어서다. 이수훈 전 주일대사는 “독일은 총리가 바뀔 때마다 사과·사죄·반성의 뜻을 밝히고, 희생자를 기리는 참배도 한다. 또 ‘기억·책임·미래 재단’을 만들어 천문학적인 자금을 동원해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명예회복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대사는 “윤 대통령이 계승하겠다고 말하는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년)의 핵심은 일본이 과거를 직시하고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바탕에서 한-일 관계를 미래 지향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과거 직시’라는 한 축을 무너뜨리고 선언을 계승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윤 대통령은 자신의 ‘결단’이라며 대일외교 정책 방향을 정해놓고도 구구절절 설명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신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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