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4일 오전 국회에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자녀 특혜채용 의혹’이 불거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대한 공세 수위를 연일 높이고 있다. 현충일인 6일까지 이어지는 징검다리 휴일에도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어, 노태악 선관위원장의 사퇴를 재차 요구하는 한편, 선관위와 야당의 ‘공생 관계’ 의혹까지 제기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관위를 압박하는 동시에 청년층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채용 이슈를 부각해 청년 지지를 끌어올리겠다는 셈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4일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하고 선관위 자녀 특혜채용 의혹에 대한 공세를 이어갔다. 통상 월·목요일에 열리는 당 최고위원회의를 징검다리 연휴 중간인 일요일에 소집한 것은 이례적이다. 국민의힘은 5일에도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공세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김기현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노 위원장은 더 이상 부끄러운 모습 보이지 마시고 사퇴로써 행동하는 책임을 보여주시기 바란다. 감사원 감사도 조속히 수용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노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말인 지난해 4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하고,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그해 5월17일 취임했다.
김 대표는 지난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중앙청년위원회 발대식에서도, ‘헌법상 독립기구’라는 이유로 감사원 직무감찰에 응하지 않기로 한 선관위를 겨냥해 “근무를 세습하는 못된 짓을 구조적으로 하는 조직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감사원 감사를 거부하는 것인가. 국민과 청년이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선관위와 더불어민주당의 공생 관계가 의심된다는 의혹까지 꺼내 들었다. 김 대표는 “(자녀 특혜채용 의혹이 불거진) 선관위 고위직이 이토록 겁도 없이 과감하게 (채용) 세습을 저지른 이유가 민주당과 공생적 동업 관계를 형성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선관위가 주요 선거 때마다 민주당에 유리하도록 편파적 해석을 했던 사례가 많았다는 점은 선관위와 민주당의 공생 관계를 더욱 확신하게 한다”고 했다.
김 대표의 ‘공생적 동업’ 발언은 선관위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이 펼침막에 ‘술과 주술’ ‘신천지 비호’ 등 국민의힘에 불리한 문구를 사용하도록 허용한 일과, 올해 초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에게 지역구 펼침막에서 ‘예산 확보’ 문구를 교체하라고 지시한 일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이런 움직임을 두고 한편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적 셈법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는 부적절하다’는 게 다수 헌법학자들의 의견인데도 감사원 감사 수용을 촉구하며 야당과의 ‘공생 관계’까지 거론하는 것은 독립성이 생명인 선관위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특혜채용 문제에 청년층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이른바 ‘김남국 코인 의혹’으로 민주당에 등 돌린 청년층의 표심을 잡을 여지도 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꺼내 든 선관위와의 ‘공생적 동업 관계’ 주장을 두고 “정치 공세성 허위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철민 민주당 의원은 <한겨레>에 “국민의힘은 (노 위원장 등을 포함해 선관위 지도부를) 일단 다 사퇴시킨 뒤, 선거 국면에서 자신들에게 좀 더 유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선관위 책임자들을 입맛에 맞게 두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여당 대표의 정치 공세성 허위 주장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 국민의힘은 여야가 공감대를 이룬 채용비리 국정조사를 빠르게 착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했다.
여야는 선관위 국정조사를 두고도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여야는 최근 선관위 자녀 특혜채용 의혹과 관련해 국정조사를 하자는 데 뜻을 모았지만, 국정조사 기간과 범위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여당은 ‘북한발 선관위 해킹 시도’에 대한 선관위의 국가정보원 보안 점검 거부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이러한 주장을 ‘선관위 흔들기’ 시도로 본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임호선 민주당 의원은 “선관위 국정조사에 북한 해킹에 대한 보안 점검 거부까지 포함하자는 주장은 선관위 길들이기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채용비리에 집중해 빠르게 (진상규명에) 착수해야 하는데 북한 해킹에 대한 보안 점검 거부 등을 국정조사에 추가하기 시작하면 논의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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