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6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국인에게 미국은 어떤 나라일까. 한국전쟁을 한반도 역사의 일부로서 배운 전후 세대가 다수를 차지하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주한미군의 평시 주둔과 핵 위협에 따른 한-미의 군사훈련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고착된 남북 분단 상황에서 70년이란 긴 시간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으로 자리매김한 미국은 오늘을 사는 한국인들에게 ‘강대국’ 그 이상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한겨레>는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여론조사업체 휴먼앤데이터에 의뢰해 20∼70대 남녀 23명을 대상으로 표적집단 심층면접(FGI)을 진행해 미국과 한-미 동맹, 그리고 동맹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봤다.
한국전쟁 무렵 태어난 이들부터 2000년대생까지 다양한 세대에 걸친 표적집단 심층면접 참가자들은 “혈맹”(70대 남성 ㄱ씨)에서 “경제대국”(30대 남성 ㄱ씨)까지, 표현은 달라도 대체로 미국을 ‘한국에 현실적으로 필요한 강력한 국가’로 인식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미국 또한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미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는데, 40~50대의 경우 “미국이 우리나라를 착취하고 있다”(40대 남성 ㄱ씨)고 하는 등 미국에 비판적인 정서를 상대적으로 강하게 드러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앞으로도 가장 협력해야 할 국가로 미국을 꼽으면서도 “지나친 미국 편중은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에 대해 참가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린 이미지는 ‘강대국’, ‘패권 국가’였다. “미국 하면 무지하게 세다는 거죠. 천조국(미국 국방비가 1천조원에 달한다며 인터넷에 퍼진 표현). 1천조를 무기에 쓰는 거잖아요. 힘으로써 압도를 한 것이죠.” 면담에 참여한 50대 남성 ㄱ씨의 말이다. 대학생인 20대 남성 ㄷ씨 또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온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는 나라”라며 같은 생각을 밝혔다. 40대 여성 ㄹ씨는 “강하지만 무서운 나라”라고 말했다.
60∼70대는 미국을 “고마운 나라”라며 세 그룹 가운데 가장 높은 유대감을 보였다. “미국은 우방 국가죠. 제가 교회를 다니는데, 6·25 때 많은 군인들을 보내 이 나라를 위해 싸워줬고, 선교사들이 선교도 많이 해서 우리나라 발전에 많은 도움을 줘 고마운 나라죠.”(60대 여성 ㄴ씨) “혈맹 아닙니까? 우리가 미국을 멀리하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70대 남성 ㄱ씨)
“우리처럼 나이 먹고 반공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미국에 좀 우호적이지요. 다른 나라보다는 미국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70대 남성 ㄴ씨)
20∼30대 또한 미국을 가깝게 인식했지만, 이들은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미국과 자신을 연결 지었다. 전쟁에 더 가까운 세대인 6070이 국가 관계 차원에서 미국을 긍정적으로 본 것과는 차이가 있다. 30대 여성 ㄱ씨는 “아이티(IT) 쪽에 근무하다 보니 미국을 가보고 싶어요. 10억대 연봉 이야기도 나오고…. 군사적인 것과 별개로 미국은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대학생인 20대 남성 ㅁ씨도 “올해 초에 뉴욕을 다녀왔는데 빌딩숲 느낌도 나고 자유가 느껴졌다. 개인적으론 살고 싶은 나라고 실제로 계획도 있다”고 했다. 반면 “인종 차별이 떠올라 가고 싶지 않다”(20대 여성 ㄱ씨) 등 미국 사회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다.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영향력, 한-미 관계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볼 때, 참가자 다수는 양가적인 반응을 보였다. 세대 구분 없이 “미국 뜻대로 주도되는 관계”에 대한 불만이 드러나기도 했다.
20대 남성 ㄱ씨는 “미국은 문화적으로도 체험해보고 싶은 나라”라면서도 “한편으론 우리가 너무 미국을 과신하고, 상향평가(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든다”고 했다. 20대 여성 ㄴ씨는 “중학교 때 공부하러 몇개월 미국에 다녀왔는데 그때 (기억이) 너무 좋았다”면서도 “남북 관계나 수출·수입 등 경제 관계에서도 미국보다는 약자라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것 같다”고 했다. “미국을 믿어야 한다”는 70대 남성 ㄴ씨도 “바이든은 부드러운 트럼프지요. 어차피 자국의 이익을 위하죠. 과격하게 하느냐, 부드럽게 하느냐의 차이이지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그놈이 그놈’입니다”라며 미국 우선주의를 에둘러 비판했다.
미국을 향한 비판의식은 40∼50대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50대 남성 ㄴ씨는 “저 어렸을 때는 라디오, 카메라 같은 것도 ‘이건 미제야!’ 하면서 굉장히 좋은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모든 전쟁에 개입하는 깡패 국가, 무기를 팔아먹기 위해서는 어떠한 짓도 서슴지 않는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40대 남성 ㄱ씨도 “초·중·고 교육을 받을 땐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군인들이 희생한 우방 국가로 배웠지만 성인이 되어가면서 ‘미국은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을 계속 했지요. 세계의 경찰국가 역할을 한다는데 코소보나 르완다 사태는 외면하고…. 결국 미국 자신을 위한 것이었더라고요. 우리에게 우방이긴 하지만 공생하는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미국을 향한 이중적 감정에도 불구하고 한-미 동맹은 남북 문제의 안전장치로서 한국이 “손해를 보더라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세대를 뛰어넘는 공통된 인식이었다. “한-미 동맹이란 장치가 있어서 북한이 더 적극적으로 대남 도발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동맹은 우리가 안고 가는 손해가 있더라도 돈독히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20대 남성 ㄴ씨) “자주국방을 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선 슬픈 얘기지만 분단국가에서 현실적으로 달리 대안이 있어 보이지 않아요. 통일이 되어도 한-미 동맹은 유지가 되지 않을까요?”(50대 남성 ㄴ씨)
이런 생각의 기저엔 여전히 “한국이 약해서”라는 마음이 깔렸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위상이 바뀌었지만, 국력에 대한 주관적 인식은 그 속도에 못 미치는 모습이다. 이런 인식은 세대를 가리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슬프지만 힘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동맹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40대 여성 ㄷ씨)
“우리나라는 약해요. 그래서 우리가 미국을 등에 업어야 힘이 되고. 북한이 미사일 쏘잖아요. 미국에서 (우릴) 버리면 즉각 쳐들어올걸요? 그래서 한-미 동맹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60대 여성 ㄱ씨)
“미국보다 우리는 아래에 있기 때문에 미국과 동맹을 맺는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이득을 보는 부분이란 생각이 들어요.”(20대 남성 ㄷ씨)
‘미국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세대별 차이가 드러났다. 북한의 핵공격이 실제 발생했을 때 미국이 지난 4월 ‘워싱턴 선언’을 통해 약속한 것처럼 미국 핵무기를 동원해 보복에 나설 걸로 보느냐는 질문에, 70대 남성 ㄴ씨는 “국제적 신뢰 (문제도) 있기 때문에 미국이 우리 대신 보복할 것”이라고 했다. 60대 남성 ㄱ씨는 “뜸은 들여도 약속은 지킬 것 같다”고 했다. 반면 20대에서는 “100% 믿진 못하겠다. 미국 입장에선 중국과의 관계도 봐야 하고, 세계적으로 일이 너무 커질 수 있으니 (개입을) 안 할 수도 있다”(20대 여성 ㄴ씨)는 등 회의론이 나왔다. 50대 남성 ㄱ씨도 “종이상에서만 보호하겠다고 외교적 용어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21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린 일본 히로시마 한 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인식은 미국의 또 다른 동맹국인 일본과의 비교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미와 미-일 동맹을 비교했을 때, 미국은 일본에 더 큰 가중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20대 남성 ㄱ씨는 “한국은 미국에 지금 책상에 놓여 있는 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정도 같아요.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은 없는?”이라고 했다. “미국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이나 전략에 항상 일본이 들어가 있더라.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좀 더 아래에 있다는 걸 미국 스스로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50대 남성 ㄴ씨도 “미국과 한국이 주체가 되어 뭘 하는데 일본을 끼워주는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미국의 동아시아 넘버원 파트너는 일본이에요. 그래서 미-일 관계에 한국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주변 강대국에 비해 한국은 아직 국력이 약하다는 인식, 일본 중심 동북아 정책 등을 고려하면 한·미·일 협력엔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였다. 40대 여성 ㄴ씨는 한·미·일 안보 협력이 강해지면 “미국과 일본이 손잡고 뭔가 더 힘을 발휘해 (한국이) 소외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참전용사 가족이 있다는 30대 남성 ㄱ씨는 “일본은 북한이 대남 도발을 할 때마다 군사적 증강을 하는데, 과거 침략을 당했던 우리나라 입장에선 그런 일본과 군사적 결탁을 해선 안 된다”고 했다.
60~70대는 이런 생각이 더 강했다. “일본 자위대는 누구를 공격하거나 전쟁할 수 있는 부대가 아닌데, 세 나라가 (관계를) 강화하면서 결국 무장의 빌미를 일본한테 주는 거거든요.”(70대 남성 ㄷ씨) “일본은 원님 덕에 나팔 부는 게 아닌가요? 자위대는 전쟁을 할 수 없는데 우리는 다르잖아요. 일본이 (군사협력) 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요.”(60대 여성 ㄱ씨)
다만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긍정하는 의견은 20대를 중심으로 일부 나왔다. 20대 여성 ㄴ씨는 “우리가 분단국가이기 때문에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선 필요하고, 우리보다 경제적·군사적으로 우세한 나라들과의 협력은 필요하다”고 했다. 또 다른 20대 남성 ㄹ씨는 “저는 대만과 중국 사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어서, 좋다 나쁘다를 떠나 (한-일 군사)협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며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를 더 선명하게 그리고 있는 현 정부의 외교에 대해선 기대보다 우려가 많았다. 특히 한-미 간 밀착에 따른 대북 강경책과 적대적 대북관엔 비판적인 의견이 나왔다.
20대 남성 ㄱ씨는 “힘을 통해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정부의 말을 보면, 북한과의 관계를 너무 적대적으로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다만 북한 문제에선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과한 적대심은 지양되어야 하지 않나 해서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40대 남성 ㄱ씨도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와 달리 북한과 미국 사이의 중재자 역할도 고려하지 않는 것 같고, 북한은 무조건 적이고 미국은 아군이라는 인식 같아요. 동맹은 같이 생존하는 것이지 한쪽이 종속되어선 안 되는데 가치 동맹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예요”라며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었다.
한-미 동맹을 통해 실질적으로 얻는 이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느낌상 G8’이라고 말한 것처럼 실질적인 뭐가 있는 게 아니고 느낌만 있다는 거지요. 우리가 한-미 동맹 관계에서 이익을 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있습니다.”(40대 여성 ㄱ씨)
이런 인식은 40~50대의 경우 윤석열 정부 들어 한-미 관계에서 한국의 주도권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국가의 정상과 정상이 만나면 서로 간에 밀고 당기는 게 있어야 할 텐데, 윤 대통령은 끌려가기도 전에 미리 (미국에) 주는 느낌을 받았어요.”(40대 여성 ㄷ씨) 반면, 60∼70대 사이에선 “문재인 정부 때 대미 쪽은 조금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안 드십니까? 현 대통령은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 아닙니까? 그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70대 남성 ㄱ씨)는 평가가 나왔다.
그럼에도 양국 관계에서 한국도 주도권을 확보하는 동맹을 바라는 마음은 세대를 불문하고 비슷했다. “우방국이라고 미국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면 안 될 것 같아요. 우리 주권을 좀 내세우면서 경제에서 이익을 취할 건 취해야지 너무 미국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60대 여성 ㄱ씨) “미국이 과거에 우리를 도와줬지만, 이제는 우리도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만큼 (미국을) 쫓아가고 끌어주는 개념보다는 같이 보조를 맞춰서 우리도 이익을 취할 건 취해야 합니다.”(40대 여성 ㄱ씨) “전시작전통제권을 아직 미국이 갖고 있는데, 외교 정책을 우리가 좀 더 주도적으로 가지고 와야 합니다. 종전 선언도 결국 북한과 우리가 해결을 해야 하는데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상황이잖아요. 이런 것부터 변화가 필요합니다.”(20대 남성 ㄹ씨)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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