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ALPS)라고 하는 다핵종제거설비를 예고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삼중수소, 트리튬이 남아 있고 이것은 각종 암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다. 현재 기술로는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평가받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제 1원전 오염수 방류를 우려하는 발언이다. 누구의 발언일까. 야당 정치인의 발언 같지만, 이 발언은 현재 국민의힘 당 대표인 김기현 의원이 2020년 10월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 말이다.
당시 야당으로서 오염수 방류에 대해 충분히 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현재 국민의힘은 오염수 방류에 반발하는 목소리에 ‘괴담’이나 ‘선동’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일 페이스북에 “2년 전 우리 당 의원 과반수는 오염수 방류에 반대했다”며 “이제 여야가 바뀌니 서로의 입장도 바뀐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가 나오기 전이고, 오염수에 대해 현재 일부 야당 정치인들의 발언이 과도한 면도 있지만, 분명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야당이었던 국민의힘도 정부를 상대로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를 전하고 철저한 검증을 촉구했다. 당시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의 발언을 짚어보면, 정부·여당이 현재 ‘괴담’으로 몰아세우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시각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지난 2020년 10월께 일본 정부가 국내외 반대에도 오염수 방류 방침을 굳혔다는 현지 보도가 이어졌다. 빠르면 2년 안에 실제 방류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자 당시 제주지사였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같은 해 10월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원 장관은 “단 한 방울의 오염수도 용납할 수 없다”며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강행할 경우 한일 양국 법정과 국제재판소에 제주도가 앞장서 소송을 제기하겠다”며 강경 대응을 천명했다.
다만 3년 뒤 장관이 된 뒤에도 원 장관은 지난 4월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개인 견해로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고, 정부의 의사결정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정치인들은 어떨까. 현재 당 대표인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해 10월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이렇게 주장했다.
“알프스(ALPS)라고 하는 다핵종제거설비를 예고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삼중수소, 트리튬이 남아 있고 이것은 각종 암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다. 현재 기술로는 그것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평가받고 있다.”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는 ‘1년에서 2년 사이에 동해로 (오염수가) 유입될 것이다’(라고) 예측하고, 심지어 일본 가나자와대학과 후쿠시마대학에서 2018년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바에 의하면 ‘일본의 오염수가 1년 정도 걸려 동해로 흘러들어오더라’(는) 공식 발표까지 있다.”
김기현 대표는
“이(오염수 방류)에 따른 국제 소송과 가처분 신청도 해야 할 것이고, 적어도 오염수 배출을 방지하기 위한 국회 요구안에 외교부가 찬성하는 입장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6일 국회 당 사무실에서 최고위 회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이듬해인 2021년 4월13일 각료회의를 열어 오염수를 2년 뒤 바다에 방류하기로 결정하자, 국민의힘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국민의힘은 사흘 뒤 의원총회를 열어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출은 어떤 이유로도 결코 타협할 여지가 없다”(주호영 당시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고 했다.
이어 당시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조태용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도 같은 해 4월29일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결정 규탄 및 원전 오염수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대한민국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촉구 결의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기현 대표와 당시 의원이었던 박진 외교부 장관 등 15명 의원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이 결의안에는
“후쿠시마 오염수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삼중수소를 비롯해 60여종의 방사성 물질이 포함돼 있는데 완전한 제거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 뒤 같은 해 6월29일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방출 결정 규탄 및 오염수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 촉구 결의안’에는 재석의원 191명 가운데 188명이 찬성표(기원 3명)를 던졌다. 당시 김 대표와 이철규 사무총장 등도 찬성표를 던졌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12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권이 바뀌고 일본 오염수 방류에 대한 입장이 바뀐 여권은 문재인 정부 시절 국무위원들의 발언을 소환해 ”윤석열 정부의 입장은 문재인 정부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항변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오염수 처리 문제에 관한 정부의 입장은 뭐냐’는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의 물음에 “정부의 입장은 전 정부의 입장과 같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의 발언을 소환했다.
실제로 정 전 실장은 2021년 4월19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충분한 과학적 근거 제시와 정보 공유 △한국 정부와 충분한 사전 협의 △국제원자력기구 검증 과정에 한국 전문가 참여를 전제로 “세가지 여건이 마련되고 우리가 볼 때 국제원자력기구 기준에 맞는 적합성 절차에 따라서 된다면 굳이 반대할 것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도 2020년 10월2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오염수 처리는)일본의 주권적인 영토 내에서 이루어진 사항”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2020년 10월 문재인 정부에서도 ‘오염수 방류는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낸 것도 문제 삼는다. 해양수산부와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정부 합동 태스크포스(TF)가 발간한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관련 현황’ 보고서에는 ‘수산물 섭취 등으로 인한 유의미한 피폭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해류에 따라 확산·희석돼 유의미한 영향은 없을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다만 당시 문재인 정부는 2021년 4월 해당 보고서가 언론에 보도되자 “일부 전문가 의견이 정부의 입장이 될 수는 없다”며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출 결정을 단호하게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들의 정책 포럼 ‘사의재’가 지난달 13일 보도자료를 내어 “문재인 정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출에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으며, 우리 국민과 어민의 안전과 피해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강력히 요구했다”며 “(한덕수 총리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와 현 정부는 기본원칙부터 세부 대응조치에 이르기까지 큰 차이가 있다”고 반박한 것을 이를 가리키는 것이다.
김웅 의원은 “더불어민주당도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 암묵적으로 동조했다. 야당일 때는 위험하지만 여당이 되면 위험하지 않다. 그게 과학이라고 한다”며 “지금이 과학이라면 그럼 2년 전 (국민의힘)의 ‘괴담 유포 행위’에 대해 먼저 사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했다.
그는 “그때와 지금이 같지 않으면 국민은 정치를 믿지 않는다. 밥 한 공기 먹고, 회 먹고, 수조물까지 먹어도, 국민은 정치인을 믿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