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30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맨 왼쪽)와 양금덕 할머니(왼쪽 둘째)가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판결금을 ‘제3자 변제’ 방식으로 집행하고자 법원에 공탁(맡김)하려던 정부의 움직임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지원재단)이 강제동원 피해자 쪽에 전달할 판결금을 법원에 맡기는 게 불발되자 이의신청을 했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법원의 결정이 15일 처음 나온 것이다. 일본 전범기업이 아닌 한국 정부가 마련한 판결금을 공탁 제도를 이용해 집행함으로써 강제동원 판결금 문제를 마무리하려던 정부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전주지법 민사12단독(판사 강동극)은 이날 강제동원 피해자인 고 박해옥씨의 자녀 2명에 대한 공탁 불수리 결정과 관련한 지원재단의 이의신청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앞서 전주지법 공탁관이 ‘피해자가 제3자 변제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지원재단의 공탁을 받아들이지 않자 지원재단이 이의신청을 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채무자(일본 기업)가 배상해야 할 손해는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위자료로, 채무자에게 제재를 부과함과 동시에 채권자(유족)를 보호할 필요성이 현저히 큰 사안”이라며 “이 사건은 민법 제469조 제1항 단서에 따라 제3자 변제가 허용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공탁서를 보면 채권자가 제3자 변제에 관한 반대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와 지원재단은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 발표 당시부터 공탁을 통한 제3자 변제 뜻을 밝혀온만큼, 이날 전주지법의 결정에도 불복해 항고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탁을 통한 정부의 제3자 변제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본 이번 재판부 결정은 다른 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건들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지원재단이 항고·재항고를 통해 대법원까지 가서 판단을 구했을 때에도 똑같은 결론이 나온다면, 사실상 법적으로 제3자 변제를 할 방법은 없다.
강제동원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정희 변호사는 “우격다짐 식으로 피해자에게 변제받기를 강요했던 정부의 일방통행식 제3자 변제에 제동이 걸린 것”이라며 “외교부와 지원재단이 배상금을 지급할 법적 자격이 없다는 것을 법원이 선언한 셈”이라고 했다.
한겨레가 일선 법원과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의 대리인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지원재단은 이번 전주지법 사건을 포함해 강제동원 피해자 11명에 대한 공탁 신청을 불수리한 공탁관 처분에 이의신청을 해 광주지법, 수원지법 등 7개 법원에서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지원재단은 대형로펌 세종과 바른에서 전관을 선임하는 등 공탁 절차에 힘을 쏟아왔다. 가장 먼저 공탁 불수리 결정이 나왔던 광주지법의 양금덕(92) 할머니 사건의 경우, 대법관 출신의 민일영 변호사(세종)와 부장판사 출신 이원 변호사(세종), 이명박 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이었던 강훈 변호사 등 9명이 사건을 맡고 있다. 피해자가 원치 않는 공탁을 받게 하기 위해 정부가 벌이고 있는 이 같은 사법 절차에, 사실상 국가 세금으로 비용 또한 상당한 규모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심규선 지원재단 이사장은 “현재까지는 지원재단 예산으로 (소송에) 대응하고 있다”면서도 “자세한 집행 계획을 지금 공개하긴 어렵다”고 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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