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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문제는 ‘어공’이다…잼버리가 산으로 간 이유

등록 2023-08-20 07:30수정 2023-08-20 17:18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94
관료 복지부동 부른 ‘검사 정권’…잼버리 실패의 진짜 원인
“‘늘공’ 부릴 줄 모르고 짜증만…
일 터져야 잘못 따지고 책임 추궁”
‘목자 잃은 양떼’처럼 방치된 상황
정권 무능, 공무원에게 책임 전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2일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개영식에서 참석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2일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개영식에서 참석했다. 대통령실 제공

전북 부안 새만금에서 열린 ‘2023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끝났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를 무난하게 마무리함으로써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해준 종교계, 기업, 대학 및 여러 지방자치단체에 감사하고, 잼버리 대원을 반갑게 응대해준 우리 국민께도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는 의미였습니다. 기자들이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책임 규명’에 대한 언급은 없었는지 물었습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잼버리가 계획됐던 대로 진행되지 못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점검하고, 또 향후 대응책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과정이 소모적인 정쟁이 돼서는 안 되고, 생산적인 개선책을 도출하는 그런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웅덩이, 온열 질환, 화상벌레, 비위생적 화장실로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이번 대회를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이처럼 관대하게 평가한 이유가 뭘까요?

“올림픽 치른 지가 언젠데…”

윤 대통령은 스카우트 대원 출신 최초의 대통령이었습니다. 지난 3월엔 한국스카우트연맹 명예총재로도 추대됐습니다. 지난 2일 개영식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스카우트 단복을 입고 장문례(대원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긴 봉으로 삼각형 모양을 만든 문으로 귀빈을 지나가게 하는, 스카우트의 예우 의례)를 통해 활짝 웃으며 입장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스카우트 활동을 통해 길러진 독립심과 책임감, 이웃에 대한 봉사 정신, 국가에 대한 헌신적 자세는 여러분들을 훌륭한 사회의 리더로 성장시킬 것”이라고 연설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모여든 스카우트 대원들과 함께 각자의 꿈이 담긴 종이비행기도 날렸습니다.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행사를 차마 대통령 입으로 “실패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일입니다.

감사원이 나섰습니다. “대회 유치부터 준비 과정, 대회 운영, 폐영까지의 대회 전반에 대해 감사를 진행할 것이고, 관련된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 모든 유관기관과 문제점 등을 대상으로 철저하게 감사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감사원은 아마도 새만금 잼버리 실패의 책임을 주로 문재인 정부와 전라북도 및 여성가족부 공무원들에게 물을 것입니다. 그래야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에 쏟아지는 비난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일까요? 새만금 잼버리 실패의 진짜 원인이 도대체 뭘까요?

무엇보다도 저는 공무원들이 일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매우 유능한 집단입니다. 전문성, 조직력, 순발력에서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공무원이 이번에는 일제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일까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10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하이킥’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올림픽 치른 지가 언제입니까? 88년도인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근데 공직자들이 신경만 제대로 썼으면 행사 준비가 저렇게 엉터리가 될 리가 없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완전히 엉터리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허술했던데요. 이건 무슨 뜻이냐 하면 관련 부처나 기관의 공무 공직자들이 성의를 다 안 했다는 뜻이에요. 그럼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

“우리나라 공직자들이 능력으로 따지면 유능한 공직자들이에요. 경험도 많고. 근데 자기 성의를 다 안 했다는 얘기 아니에요.”

“성의를 다하도록 만들지 못한 책임자들에게 문제가 있는 거죠. 지도력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죠.”

윤 전 장관의 몇 마디에 핵심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장관 부재 행안부, 정무적 판단 못해”

전·현직 공무원 몇 사람에게 이번 사태의 원인을 집중적으로 물었습니다. 무척 흥미로운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전북도에서 왜 하필 그런 장소에 잼버리를 유치했는지는 별도로 따져볼 사안이다. 문제는 행정안전부다. 여성가족부나 문화체육관광부는 인원도 적고 조직도 약하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기획재정부 다음으로 유능한 인재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경험도 풍부하고 조직도 막강하다. 이번 잼버리를 제대로 치를 수 없다는 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행정안전부가 제대로 된 판단을 했다면 행사 시작 전에 비상 대책을 가동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민 장관은 올해 2월8일 국회의 탄핵소추를 받았고 7월25일 헌법재판소가 기각 결정을 내릴 때까지 직무가 정지되어 있었다. 직무를 대행한 차관은 장관이 해야 하는 정무적 판단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8일 오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전북 부안군 잼버리 프레스센터에서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퇴영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8일 오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전북 부안군 잼버리 프레스센터에서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퇴영 상황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쌓인 문제가 터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은 ‘늘공’(늘 공무원)들을 어려워했다. 늘공이 말하면 어공들이 일단 들어는 줬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어공들은 늘공들이 말을 하면 자꾸 짜증을 냈다. ‘그런 건 당신들이 알아서 해야지 왜 자꾸 우리에게 물어보냐’는 태도였다. 그러면서 아무런 결정도 내려주지 않았다. 늘공들을 ‘목자 잃은 양떼’처럼 방치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어공들은 그래도 엘리트들이었다. 늘공들을 부려먹을 줄 알았다. 윤석열 정부의 어공들은 일머리가 없다. 검사 정권이라서 그런지 자꾸 잘못을 따지고 책임을 물으려고만 한다. 그러니 늘공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태원 참사도 그래서 터진 사건이다. 새만금 잼버리 실패와 비슷한 사건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윤 대통령도 공무원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여러차례 질타했습니다.

급기야 지난 6월29일 대대적인 차관 인사를 하면서 대통령실 비서관 5명을 차관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이들에게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조금 버티다 보면 또 (정권이) 바뀌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은 정부가 아니라 국회로 가야 한다”고 했다고 합니다. ‘영혼을 바쳐서 일을 열심히 하라’는 불호령입니다. 윤 대통령의 이런 주문을 공무원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대통령이나 장차관이 질책을 하면 늘공은 뭔가를 열심히 하는 척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늘공은 이런 상황에 도가 튼 사람들이다. 특히 나중에 책임질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빠져나갈 구멍을 다 만들어둔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따라 일한 공무원들에게 감사원 감사와 검찰·경찰 수사라는 칼을 들이댔다. 5년 뒤를 생각하는 늘공들이 일하는 척만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늘공이 아니라 어공이다.”

영혼 바쳐 일해야 할 사람은 대통령

어공과 늘공을 정치인과 관료로 환치해도 과히 틀리지 않습니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으로 민주화가 이뤄지고 1997년 사상 최초의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시작된 이후 우리나라는 정치인과 관료, 어공들과 늘공들이 협력과 견제로 국정을 끌어가고 있습니다.

관료제는 근대국가에서 필수적인 제도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논문 ‘관료제의 본질과 발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관료제는 인간이 만든 조직 중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며 현대 사회에 필수적인 것이다.”

“관료제란 지식으로 통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관료제는 위계의 서열화, 권한의 명확화, 문서로 정의된 법규에 따른 과업 수행, 전문성을 지닌 관료, 개인이 아닌 조직에 의해 검증된 경력 관리를 특징으로 한다.”

이처럼 중요한 관료제를 성공적으로 활용할 책임은 정치인에게 있습니다. 막스 베버는 정치인과 관료의 바람직한 역할 분담에 대해서도 탁월한 견해를 남겼습니다. 박상훈 박사가 2011년에 낸 ‘정치의 발견’에서 소개했습니다.

“전문 관료는 데마고그(시민의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적 정치가)가 아니며 데마고그의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가 데마고그가 되려 한다면 대체로 그는 매우 나쁜 데마고그가 되고 만다. 진정한 관료는 그의 본래적 사명에 비춰 볼 때 정치를 해서는 안 되고 단지 ‘행정’만 하게 되어 있으며, 무엇보다도 비당파적 자세로 행정을 해야 한다.”

“관료는 ‘분노도 편견도 없이’ 그의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정치가, 지도자 및 그의 추종자들이라면 항상 그리고 불가피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바로 그것, 즉 투쟁을 해서는 안 된다. 당파성, 투쟁, 열정, 분노와 편견 등은 정치가, 특히 정치적 지도자들이 활동하는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정치 지도자, 즉 지도적 역할을 하는 정치가의 명예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전적으로 스스로 책임을 진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이 자기 책임을 거부할 수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할 수도 없으며 또 해서도 안 된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영혼을 바쳐서 일해야 하는 사람은 공무원들이 아니라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그리고 국민의힘의 정치인들입니다. 국정의 방향을 정확히 제시하고, 열정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고, 결과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신들의 무능 때문에 발생한 새만금 잼버리 실패의 책임을 공무원들에게 뒤집어씌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애꿎은 공무원들을 괴롭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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