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오후 해경이 북한 주민 4명이 탄 소형 목선(빨간색 원 표시)을 강원 양양군 기사문항으로 예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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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 4명이 지난 24일 소형 목선을 타고 강원 속초항으로 귀순하는 과정에서 어민이 신고하기 전까지 군이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을 두고, “경계작전의 실패”란 비판이 거세다. 군 당국이 북한 목선의 동해 북방한계선(NLL) 월선 시점과 경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목선이 북방한계선을 34㎞ 남하해서야 육군 레이더가 뒤늦게 이를 포착한 점에서 이런 지적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군 당국은 동해의 작전 환경과 해군·육군의 해상·해안경계 시스템을 고려하면, 애초 ‘물샐틈없는 철통 경계’는 불가능한 게 현실이라고 설명한다. 서해는 많은 섬에서 병력과 장비가 촘촘하게 경계·감시를 할 수 있지만, 동해는 섬이 거의 없는 망망대해고 북방한계선 길이가 404㎞에 이른다. 이 때문에 이번처럼 동해 먼바다로 나간 뒤 다시 들어와 북방한계선을 넘는 7.5m 크기의 소형 목선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감시 자산이 한정된 상황이므로 해안으로 침투하는, 실제 위협이 되는 표적에 선택·집중해야 한다고도 설명한다.
이에 육군 대장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5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너무나 어이없는 얘기”라며 “경계작전의 실패이자, 합동작전의 실패”라고 비판했다.
이번 경계 실패 논란은 윤석열 정부의 ‘자승자박’ 성격이 짙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전임 문재인 정부가 대북 경계태세를 무장해제했다고 비난하며 “북한의 어떤 위협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확고한 결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북한의 모든 위협에 100% 대응하겠다는 것은,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통해 안보를 추구하겠다는 ‘절대안보’ 개념이다. 이는 현실에선 불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런 ‘선전전’을 통해 국민들의 기대치를 잔뜩 올려둬, 경계 실패 논란을 자초했다.
이번 북한 목선 귀순 보도 과정도 눈여겨볼 만하다. 첫 보도가 나온 건 24일 아침 8시30분 조선일보였다. 이날 어민이 북한 어선을 발견해 해경에 신고한 건 아침 7시10분이었고, 군과 해경이 출동해 북한 주민 4명의 신병을 확보한 건 아침 8시쯤이다. 거의 실시간으로 조선일보에 민감한 정보가 나간 것이다. 관련 내용을 취재하던 기자들 사이에선 “윤석열 정부가 북한 주민의 가족 단위 해상 탈북을 북한 체제가 흔들리는 징후로 판단해, 조선일보에 바로 흘려 ‘북한체제 내구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프레임을 만들려 했다”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국민 관심과 언론 보도는 ‘경계 실패’로 흘러갔다. 북한 체제의 취약한 내구성을 폭로하기는커녕 윤석열 정부에 경계 실패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국방부 출입기자 사이에서 “군 당국의 경계작전 실패가 아니라, 대통령실의 공보작전 실패”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윤석열 정부의 ‘안보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