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숙원 과제’를 해결했다. 비록 윤석열 대통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이나 간호법 제정안처럼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지만, 민주당으로서는 총선을 다섯달 앞두고 노동계 등에 지지를 호소할 명분을 챙기게 됐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노란봉투법·방송3법 통과 뒤 기자들과 만나 “노동자의 삶과 인권이 상당 부분 보장되는 중요한 법안이 통과됐고, 공영방송의 투명성과 언론 자유를 지킬 방송3법이 어렵게 본회의장에서 통과됐다”며 “윤 대통령도 오늘 국회에서 처리된 4개의 법안을 국민의 뜻으로 존중하고 수용할 것을 다시 한번 촉구드린다”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들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방송3법 개정을 통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은 시대적 과제였다. 정치적 후견주의를 배격하고, 공영방송을 권력의 품이 아닌 국민의 품으로 돌려달라는 요구가 오래전부터 있었다”며 “앞으로도 공영방송 독립을 향해 꿋꿋이 나아가는 동시에, 방송장악 시도에도 단호히 맞서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제기될 수 있는 ‘거대 야당(168석)의 입법 독주’ 비판을 무릅쓰고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을 통과시킨 것은 명분과 실리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노동계로부터 지속적으로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아왔으나 국민의힘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쳤다. 민주당은 결국 지난 5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유 없이 회부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은 경우 소관 상임위원회 위원장이 국회의장에게 법률안의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는 국회법 86조 3항에 따라 노란봉투법을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민주당은 앞서 지난 3월 방송3법도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민주당은 여당 시절에는 방송3법 입법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나, 윤석열 정부 들어 태도를 바꿨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의 전횡과 총선을 앞두고 ‘기울어진 여론 지형’을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겹쳤다.
여기에 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가 국민의힘이 민주당과 국회의장을 상대로 ‘본회의 직회부 탓에 법안 심사권을 침해당했다’며 낸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기각한 것도 명분을 실어줬다. 헌재는 ‘법사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기 어려운 절차를 반복하며 심사 절차를 지연시키고 있었다’고 했다.
과거 원내지도부를 지낸 한 민주당 의원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우리로선 앞으로 다시 얻기 어려울 수 있는 180석(21대 총선 결과 기준)으로 최소한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의원들 사이에 두루 공유돼 있었다”며 “180석을 줘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다음 총선에서 표를 달라 하겠나”라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우리가 (법안 처리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라며 “그러나 최근 (노란봉투법 관련) 대법원 판결로 입법 명분이 상당히 커졌고 당내 여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개별 노동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판결을 내놨다.
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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