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 ‘야당 때리기’
경제·외교엔 자화자찬
윤석열 대통령은 1일 신년사에서 집권 3년차의 국정 운영 기조를 ‘따뜻한 정부’ ‘행동하는 정부’로 내세우면서 민생과 경제 회복을 부각하려 했다. 하지만 4월 총선을 100일 앞두고 개혁 과제의 전제 조건으로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 타파”를 제시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최근 국민의힘이 띄운 ‘86 운동권 특권 정치 청산’과 같은 맥락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겨냥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경제와 외교,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과제, 저출산 대책 등 정부의 주요 정책을 망라하면서, ‘이념 패거리 카르텔’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이 그간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을 겨냥해 ‘이권 카르텔’ ‘기득권 카르텔’을 말한 적은 있었으나, ‘이념’과 카르텔을 직접 연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이념에만 너무 초점을 둘 필요는 없는 것 같지만, 이념에 너무 경도돼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 자신의 이권만을 챙기려는 세력들이 있다면 그 또한 타파해야 된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패거리’가 누구를 지칭한 것이냐는 질문에는 “개혁을 방해하는, 자신의 이권에만 매몰된 세력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앞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86 운동권 특권 정치’를 척결 대상으로 언급한 터라, 윤 대통령 발언 또한 총선 앞 야당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5300여자(공백 포함)에 이른 윤 대통령의 신년사는 지난해 경제와 외교 결과물을 성과로 내세우고 올해 경제 회복에 대한 장밋빛 기대를 표현한 자화자찬 격 메시지로 빼곡했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교역이 회복되면서 우리 경제 전반의 활력이 나아지고 수출 개선이 경기 회복과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며 “물가도 지금보다 더욱 안정될 것”이라고 했다. 건설사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등 현안이 있었음에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가계부채와 같이 우리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리스크는 지난 한해 동안 잘 관리해왔고, 앞으로도 철저히 관리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잦은 순방으로 비판이 나온 외교 정책에 대해서도 “경제 외교, 세일즈 외교는 우리 국민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자리 외교”라며 “새해에도 일자리 외교에 온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갈등이 최고조로 치솟은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상대의 선의에 의존하는 굴종적 평화가 아닌, 힘에 의한 진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확고히 구축해 나아가고 있다”며 강경 기조를 재확인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이날 새해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방명록에 ‘국민만 바라보며 민생경제에 매진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내각, 참모들과 떡국 조찬을 하면서도 “올해는 문제가 생기면 즉각 해결하고 민생에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 발표 뒤 기자실을 찾아 “올해는 김치찌개도 같이 먹으며 여러분과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새해 기자회견 개최 여부에 대해 “(윤 대통령이) 여러가지로 국민 여러분과 어떻게 소통할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