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선진대안포럼에 참석한 토론자들. 왼쪽부터 홍성태 상지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권용립 경성대 교수, 정세현 민화협 상임의장, 문정인 연세대 교수, 김명인 인하대 교수,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이종근 기자 root12@hani.co.kr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1부 대안을 향한 성찰 ⑧ 미국, 멀리할 수 없는 제국
친미-반미의 이분법을 넘어서려는 한국 진보세력이 가장 먼저 풀어야할 할 현안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국내에서는 그 칼자루를 정부가 쥐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면, 참여정부에 대한 마지막 기대조차 무너질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박명림 교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된다면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 한-미관계의 가장 커다란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체결됐다. 이 조약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 및 동북아 질서를 규정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딱 그런 비중의 일이라는 이야기다.
1953년 상호방위조약 버금가는 전환점
양극화·동북아정세까지 고려해 추진을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참석자들은 자유무역협정의 중요성을 결코 부정하지는 않았다. “일련의 개방지향을 무조건 반대할 순 없다”(박명림 교수) “동아시아 협력을 위한 제도건설이라는 차원에서 자유무역협정도 중요하다”(이남주 교수) “외교·국방 문제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복합적 사안이므로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홍성태 교수) “무조건 찬성-반대의 이분법으로 갈 일은 아니다”(권용립 교수) 등의 발언이 나왔다. 여러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일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의 구체적 과정과 성격이다. 이남주 교수는 “미국은 자유무역협정 체결 과정에서 자신들의 경제질서와 국가이익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며 “그동안 참여정부의 대미협상을 볼 때, 과연 미국의 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탈미’는커녕 지금까지의 ‘친미적 대응’의 관성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지 의심된다는 이야기다. 이 사안을 단순히 경제적 득실의 문제로 돌려선 안 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홍성태 교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성격을 총체적·전면적으로 바꾸는 문제”라며 “양극화 해결이라는 국정 후반기 과제와 양립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명림 교수는 “어떤 모습의 한국 사회를 만들어 어떤 국제적 좌표 속에 위치시킬 것인지를 반드시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용립 교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한국의 대중, 대일 관계에 대한 장기적 전망과 어떻게 부합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내적으론 양극화, 대외적으론 동북아 정세와 관련해 큰 그림을 갖고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추진해야 할 일이라는 이야기다. 김명인 교수는 이런 우려를 기회로 삼자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참여정부가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테고, 이를 잘 활용하면서 양극화 문제를 풀어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미국에 끌려다니지만 말고 오히려 국내·국제 문제를 한번에 푸는 계기로 ‘활용’하라는 주문이다. 우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참여정부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박명림 교수는 “만일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쪽을 참여정부가 끌어안지 못하고 배제한다면, 참여정부와 진보개혁세력은 서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널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진보세력의 지지로 탄생한 정권이 진보세력과 대결하는 상황은 한국 민주주의의 비극일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치명적 해악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지한파’ 늘려야 한미간 소통 트인다 미국, 한국 잘 몰라 잦은 불협화음
문화전파·언론접근 통해 이미지 바꿔야 미국내 ‘지한파’를 늘리자는 제안이 나온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한-미 사이의 소통이 중대한 체증을 일으키고 있음을 정책전문가나 강단에 서는 학자들 모두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었다. 이 분야의 대표적 진보지식인인 권용립 교수가 가장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권 교수는 우선 한-미 관계의 불협화음 대부분이 “미국적 세계관의 핵심인 인종간 위계질서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념”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제3세계 혈연 내셔널리즘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미국인들은 한국전쟁 때 황폐해진 한국을 기억하면서 남한을 도와 피흘려 싸웠다는 사실에서 강한 ‘채권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저변 정서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게 권 교수의 판단이다. 크게 세 가지 제안이 나왔다. 우선 ‘보수층 활용론’이다. 정세현 의장은 “미국과 지속적으로 대화했던 국내 보수 인사들이 미국에 가서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이들에게 영향받은 미국 네오콘은 참여정부가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일방향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이들을 어떤 식으로건 참여정부가 끌어안아야 했다”고 말했다. 문정인 교수도 “미국 보수층을 설득하는 데는 한국 보수층이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홍성태 교수는 ‘문화적 접근론’을 폈다. “미국의 지배층 및 대중을 향한 문화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일본과 이스라엘은 이 부분만큼은 최고의 모범”이라고 말했다. 19세기 말과 2차 대전 직후, 각종 문화 콘텐츠를 통해 미국인의 반감을 누그러뜨린 일본 사례를 인용한 홍 교수는 “미국인의 마음에 담긴 일본의 이미지가 ‘사무라이’라면, 한국의 이미지는 한국전쟁 참전 미군을 그린 텔레비전 드라마 <매시>”라고 말했다. 미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왜곡된 한국 또는 한반도에 대한 이미지를 문화적 차원에서 무너뜨리지 않으면, 국가간 관계도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권용립 교수는 ‘여론 장악론’을 말했다.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워싱턴의 여론이다. 이 여론을 주도하는 주요 언론에 한국의 상황과 입장을 설명하고 전달하는 글이 자주 나와야 한다. 주요 매체의 편집자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양극화·동북아정세까지 고려해 추진을 <한겨레> 선진대안포럼 참석자들은 자유무역협정의 중요성을 결코 부정하지는 않았다. “일련의 개방지향을 무조건 반대할 순 없다”(박명림 교수) “동아시아 협력을 위한 제도건설이라는 차원에서 자유무역협정도 중요하다”(이남주 교수) “외교·국방 문제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복합적 사안이므로 일률적으로 말하기 어렵다”(홍성태 교수) “무조건 찬성-반대의 이분법으로 갈 일은 아니다”(권용립 교수) 등의 발언이 나왔다. 여러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일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문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의 구체적 과정과 성격이다. 이남주 교수는 “미국은 자유무역협정 체결 과정에서 자신들의 경제질서와 국가이익을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며 “그동안 참여정부의 대미협상을 볼 때, 과연 미국의 압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탈미’는커녕 지금까지의 ‘친미적 대응’의 관성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을지 의심된다는 이야기다. 이 사안을 단순히 경제적 득실의 문제로 돌려선 안 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홍성태 교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성격을 총체적·전면적으로 바꾸는 문제”라며 “양극화 해결이라는 국정 후반기 과제와 양립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명림 교수는 “어떤 모습의 한국 사회를 만들어 어떤 국제적 좌표 속에 위치시킬 것인지를 반드시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용립 교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한국의 대중, 대일 관계에 대한 장기적 전망과 어떻게 부합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내적으론 양극화, 대외적으론 동북아 정세와 관련해 큰 그림을 갖고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추진해야 할 일이라는 이야기다. 김명인 교수는 이런 우려를 기회로 삼자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참여정부가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테고, 이를 잘 활용하면서 양극화 문제를 풀어가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미국에 끌려다니지만 말고 오히려 국내·국제 문제를 한번에 푸는 계기로 ‘활용’하라는 주문이다. 우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참여정부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박명림 교수는 “만일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반대하는 쪽을 참여정부가 끌어안지 못하고 배제한다면, 참여정부와 진보개혁세력은 서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널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진보세력의 지지로 탄생한 정권이 진보세력과 대결하는 상황은 한국 민주주의의 비극일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치명적 해악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지한파’ 늘려야 한미간 소통 트인다 미국, 한국 잘 몰라 잦은 불협화음
문화전파·언론접근 통해 이미지 바꿔야 미국내 ‘지한파’를 늘리자는 제안이 나온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한-미 사이의 소통이 중대한 체증을 일으키고 있음을 정책전문가나 강단에 서는 학자들 모두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었다. 이 분야의 대표적 진보지식인인 권용립 교수가 가장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권 교수는 우선 한-미 관계의 불협화음 대부분이 “미국적 세계관의 핵심인 인종간 위계질서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념”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제3세계 혈연 내셔널리즘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미국인들은 한국전쟁 때 황폐해진 한국을 기억하면서 남한을 도와 피흘려 싸웠다는 사실에서 강한 ‘채권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저변 정서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게 권 교수의 판단이다. 크게 세 가지 제안이 나왔다. 우선 ‘보수층 활용론’이다. 정세현 의장은 “미국과 지속적으로 대화했던 국내 보수 인사들이 미국에 가서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이들에게 영향받은 미국 네오콘은 참여정부가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일방향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며 “이들을 어떤 식으로건 참여정부가 끌어안아야 했다”고 말했다. 문정인 교수도 “미국 보수층을 설득하는 데는 한국 보수층이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홍성태 교수는 ‘문화적 접근론’을 폈다. “미국의 지배층 및 대중을 향한 문화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일본과 이스라엘은 이 부분만큼은 최고의 모범”이라고 말했다. 19세기 말과 2차 대전 직후, 각종 문화 콘텐츠를 통해 미국인의 반감을 누그러뜨린 일본 사례를 인용한 홍 교수는 “미국인의 마음에 담긴 일본의 이미지가 ‘사무라이’라면, 한국의 이미지는 한국전쟁 참전 미군을 그린 텔레비전 드라마 <매시>”라고 말했다. 미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왜곡된 한국 또는 한반도에 대한 이미지를 문화적 차원에서 무너뜨리지 않으면, 국가간 관계도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권용립 교수는 ‘여론 장악론’을 말했다.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워싱턴의 여론이다. 이 여론을 주도하는 주요 언론에 한국의 상황과 입장을 설명하고 전달하는 글이 자주 나와야 한다. 주요 매체의 편집자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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