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불법대선자금 재판때
현금출처는 명확히 안밝혀져
현금출처는 명확히 안밝혀져
‘차떼기’ 돈 실어온 곳?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글로비스의 비밀금고에서 발견된 60여억원은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쪽에 주고 남은 ‘대선잔금’이라는 한나라당 내부보고서 내용이 공개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검찰은 “처음 듣는 얘기”라며 부인하고 있지만, 대선자금 수사 당시 돈의 출처조사가 미진했다는 점에서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현대차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쪽에 정치자금으로 건넨 돈은 100억원이다. 검찰은 당시 현대차가 서울 여의도 현대캐피탈 지하창고에 보관하던 현금 100억원을 승합차에 실어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서 ‘차떼기’로 넘겼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 돈 가운데 80억원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개인재산과 비자금이고, 20억원만 현대캐피탈을 통해서 만든 비자금이라고 결론 냈다. 그러나 돈의 출처에 대한 검찰의 결론은 명쾌하지 못했다. 애초 “100억원 모두 정 명예회장의 돈”이라고 주장하다 이내 말을 바꾼 현대차의 주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서 검찰은 “20억원만 그룹 자체 비자금”이라는 현대차 쪽 해명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100억원 대부분이 현대차가 자체적으로 조성한 비자금으로 보고 있음을 강하게 내비치기도 했다.
현대차 100억원의 출처를 둘러싼 의문은 법정으로까지 이어졌다. 불법 대선자금을 건넨 모든 책임을 지고 불구속 기소된 김동진 현대차 총괄부회장은 재판에서, “100억원 가운데 80억원이 정 명예회장의 돈이라는데, 상속인인 정몽구 회장이 이 돈의 존재를 모르고, 김 부회장이 이 돈을 사용할 때 정 회장에게 보고도 안 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재판장의 질문에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린 것이다.
이런 결과는 검찰이 수사 협조를 이끌어내고자 총수들의 불기소를 조건으로 기업과 ‘협상’을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재벌이 천문학적인 돈을 정치권에 건넸다는 점만 확인됐을 뿐, 돈의 출처나 조성 방법 등은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글로비스의 비밀금고에 남아있는 60여억원이 대선자금으로 쓰고 남은 비자금일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글로비스가 현대차그룹 비자금의 ‘저수지’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내부 보고서 내용은 설득력을 갖는다. 현대차가 지난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건넨 돈이 현대차 자체 비자금이라면, 그 돈이 ‘저수지’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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