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주의-경쟁력 상생 위한 사고전환 절실” 지적도
참석자들은 환경운동의 위기를 말했다. 환경운동 또는 생태주의가 ‘대중적’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서형원 정책위원은 “환경운동가가 우리 사회의 암세포처럼 취급받을 정도로, 생태적 입장이 여론을 움직이는 데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하는 씁쓸한 상황”이라고 자조했다. 이필렬 교수는 “개발주의가 판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까지 계속 문제제기만 할 수는 없고, 이제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녹색의 가치가 더욱 멀어지고 있다는 현실진단이었다.
토론회에서 김호기 연세대 교수가 악역을 맡았다. 보통 사람들에게 생태주의가 어떤 전망을 보여줄 수 있을지를 집요하게 따져 물었다. “국민들은 지금 생태 문제보다 고용 창출에 더 큰 관심을 둔다. 생태주의가 말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말은 여전히 모호하고 불투명하다. 그래서 경쟁력 강화가 삶의 질을 높인다는 설명이 대중적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김 교수는 환경운동 진영에 대해 “생태적 발전과 경쟁력을 양립시키는 것이 정말 불가능한지를 묻는 사고와 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조명래 교수는 환경운동에 거대한 지각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환경운동이 이에 걸맞은 전환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핵심은 국가를 상대로 한 싸움에서 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조 교수는 “시장의 힘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면서 환경운동의 대립이 ‘국가-시민사회’의 축에서 ‘시장-시민사회’의 축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환경운동에 대해 수많은 새로운 과제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를 상대로 한 환경운동의 경우, “새만금·천성산 터널 등 개별 정책과제 중심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 자체를 녹색화하는 것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공기가 나쁘면 공기청정기를 달거나 아예 전원주택으로 옮겨가는 식으로 개인화·파편화된 시민”들을 어떻게 환경운동의 주역으로 돌려세울지도 고민하자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혜정 사무총장도 “지금은 개발에 대한 개인의 욕망을 변화시켜야 하는 상황”이라며 “환경운동 진영이 전문성을 높여 미래 전망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형원 정책위원은 ‘멀티태스킹’을 주문했다. “잘못된 개발 사업에 대해 비타협적으로 싸우는 운동, 환경정책의 제도화를 위한 로비 운동, 그리고 풀뿌리 주민과 함께 하는 생활환경운동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서 정책위원은 풀뿌리 녹색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떤 사람들에겐 나라가 전체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에겐 자신이 사는 동네가 바로 세상의 전체”라고 말했다. “사회가 생태적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람들이 믿기 위해서라도 각 지역에서 하나의 전범을 만들어야 한다. 그 전범이 수평적으로 확산되면서 서로 연대하는 것 말고는 환경운동이 놓인 위기를 넘어설 방법이 없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새만금 이야기가 빠질 수는 없었다. 김혜정 사무총장은 “다시 방조제를 틔우겠다”고 말했다. 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끝났지만, “환경재앙이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결국엔 바닷물을 다시 들일 수밖에 없을테고 실제로 그렇게 되도록 앞으로 10년 이상 걸리더라도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새만금을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의 표상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태와 녹색의 가치, 개발과 토목의 질서 가운데 어느 편이 사람을 더 잘 살게 할 수 있을지 판가름지을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김 사무총장은 “새만금 갯벌이 지속가능한 경제적 보물창고로 제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시화호가 썩어가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지만, 새만금 사업은 누가 어떻게 추진했는지 낱낱이 밝히고 기록해서, 머지않아 그 책임을 묻게 될 때 중요한 증거로 사용하겠다”고 강조했다.
서형원 정책위원은 “지금은 방조제로 물길을 막는 게 (전북도민 등의) 정치적 지지를 얻는 결단일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이를 다시 틔우는 것이 정치적 지지를 받는 결단이 될 수 있다”며 “문제는 방조제를 허무는 과정에서 그 방식이 또다른 토목공사가 될 것인지 아니면 생태적 기획이 중심이 될 것인지에 있다”고 말했다. 생태기획의 상상력과 정책능력을 ‘방조제 물막이 공사 이후’의 시간까지 넓혀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필렬 교수는 물길을 틔운 뒤, 방조제 위에 대규모 풍력발전단지를 만들어 남북은 물론 동북아시아를 아우르는 풍력산업 중심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새만금 일대를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의 중심으로 만들자는 방안을 정부가 수용한다면, (구조개혁대상인) 현재의 농촌공사가 이 일을 맡을 수 있고, 이 사업을 통해 농촌공사 역시 개발주의가 아니라 생태적 전환을 주로 맡는 방향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도민이 바라는 지역 ‘개발’, 참여정부가 바라는 지역민의 ‘지지’, 개발공사가 바라는 ‘조직생존’ 등이 생태 기획 아래 함께 녹아드는 셈이다. 적어도 환경운동가들의 상상 속에서 새만금은 끝나지 않았다.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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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 주요 발언
김혜정= 기업들의 온갖 개발사업에 지방정부가 가세해서 전국적인 막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참여정부 개발정책의 본질은 박정희 시기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친자본적이다. 기업에게 더 많은 개발이익이 돌아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김호기= 세계화가 우리에게 던진 객관적 조건이 있다. 국민들은 생태적 쟁점보다 고용창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환경운동이 국민들의 시선에서 멀어지는 것은 지속가능한 대안의 구체적 모습이 잘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생태적 발전과 경쟁력을 양립시키는 것이 정말 불가능한 것인가를 묻는 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
서형원= 사람들이 예전보다 피곤하게 살고 있다. 체계에 순응하면서도 거기서 빨리 탈출하려고 한다. 어떤 사람들에겐 나라가 전체일 수 있지만, 또다른 이에겐 동네도 전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풀뿌리 지역정당을 만들어 생태적 발전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모델이 확산되고 연대하는 방식으로 환경운동의 그물을 짜야 한다.
이필렬= 지금까지 개발을 열심히 해온 사람과 이것과는 다른 가치를 지향해온 사람들 가운데 누가 7% 경제성장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겠나. 박정희식 개발 패러다임으로는 절대로 박정희 추종자, 박정희 신화를 이길 수 없다. 생태와 복지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세우고 박정희의 유산을 뛰어넘는 노력이 절실하다.
조명래= 한국의 환경문제는 근본적으로 개발행정과 관련돼 있다. 이를 녹색화하는 게 시급하다. 건교부의 국토기획기능을 환경부로 넘기고 대부분의 건설시행업무도 지방정부에 내줘야 한다. 개발공사를 자연스럽게 퇴장시키면서, 5년여 뒤에 건교부와 환경부를 합치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두는 유럽형 국가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홍성태= 개발공사들은 병적으로 과도한 건설업을 국가경제가 유지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주체다. 이들이야말로 부패와 파괴와 세금탕진의 주범이다. 자연을 파괴한 댓가로 복지로 가야할 국가예산을 챙기고 나라를 취약하게 만든다. 그래서 생태적 전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개발주의 정부와 개발공사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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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선진대안포럼에 지금까지 참여해주신 분들 (가나다순)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양극화연구팀장, 강원택 숭실대 교수, 고병권 수유+너머 공동대표, 권영근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장, 권용립 경성대 교수, 김근식 경남대 교수, 김명인 인하대 교수·실행위원, 김상조 한성대 교수, 김성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김수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실행위원, 김윤철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 김진방 인하대 교수,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김호기 연세대 교수·실행위원, 문정인 연세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실행위원, 박순성 동국대 교수,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진도 충남대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교수·실행위원, 서동만 상지대 교수, 서형원 초록정치연대 정책위원, 손호철 서강대 교수, 신광영 중앙대 교수,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 양현아 서울대 교수·실행위원,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윤석원 중앙대 교수, 윤형근 모심과살림 선임연구위원,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이병천 강원대 교수, 이상수 노동부 장관, 이수영 경총 회장,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이용범 한국노총 기획조정본부장, 이일영 한신대 교수·실행위원, 이정우 경북대 교수,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필렬 방송대 교수, 임지봉 서강대 교수·실행위원, 장상환 경상대 교수, 전기환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 정세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정승일 국민대 겸임교수,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 조명래 단국대 교수, 조영철 국회 산업예산분석팀장,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 조형제 울산대 교수,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실행위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실행위원, 황인성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홍성태 상지대 교수·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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