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권력 일당 독주…한나라당 빼곤 교섭단체도 못만들판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호남과 제주도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광역·기초단체장은 물론 지방의회까지 장악해 풀뿌리 지방자치에 사실상의 ‘일당 지배’가 우려된다.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6곳 가운데 12곳, 기초단체장 230곳 가운데 155곳을 장악했다. 문제는 지방의회까지 한나라당이 장악하는 바람에 단체장 견제장치가 사실상 없어졌다는 데 있다. 서울 광역의원 106명 가운데 102명(96.2%), 경기 119명 중 115명(96.6%), 인천 33명 중 32명(97%)을 한나라당이 차지해 사실상 의석을 싹쓸이했다. 광역의회 교섭단체 구성에 10명이 필요한 서울·경기·강원·경남 등은 물론, 교섭단체 구성 인원이 5명인 부산에서도 한나라당이 유일한 교섭단체가 됐다. 광주와 전남에서는 민주당만이 교섭단체를 만들 수 있다. 이럴 때 의회는 지자체를 감시·견제하지 못하고 ‘거수기’로 전락하기 일쑤다. 서울시의회의 경우, 한나라당이 102명 가운데 86명을 차지했던 3기(2002~2006년) 4년 동안 서울시가 제출한 의안을 원안 그대로 통과시킨 사례가 90%에 이른다. 또 2004년 ‘행정수도 이전 반대 특별위원회’를 꾸릴 때는 16명의 열린우리당·민주당·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102명의 시의원 전원이 특위에 참석하는 안건을 통과시킨 적도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왼쪽)와 김범일 대구시장 당선자(오른쪽)가 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의 ‘당선자 약속실천 다짐대회’에 참석해 악수를 하고 있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이에 대해 김상철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의정지원부장은 “한나라당을 뺀 시의원이 4명밖에 안 돼 교섭단체조차 구성할 수 없다”며 “지난 4년의 ‘독주’에 이어 시의회의 파행 운영이 더 심각해지게 됐다”고 우려했다. 김민영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도 “시청과 시의회를 한나라당이 모두 장악해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기도 어렵고, 행정에 대한 감시·견제도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도의회도 지난 3기에는 104명 중 한나라당이 92명, 민주당 10명, 민노당 1명, 무소속 1명이었으나, 이번에는 119명 중 한나라당이 115명이고 나머지를 열린우리·민노·민주당이 나눠 가졌다. 경기도의회는 2004년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이라고 언급한 이해찬 총리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한나라당 의원들 주도로 처리하기도 했다. 도의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닌데도 당의 정치적 태도를 고려해 ‘정치 쇼’를 벌인 것이다. 지난 3기 지방정부에서 광역의원 27명 가운데 한나라당이 24명을 차지한 대구시의회에서는 시민들 다수가 환경 파괴를 이유로 반대한 앞산 관통 터널 공사를 두고 한나라당 시의원들이 조해녕 대구시장의 뜻에 따라 지난 2월 터널 공사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또 검찰이 지난해 9월 이덕천 대구시의회 의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해 시민단체·노조 등에서 사퇴를 요구했으나, 한나라당 의원들의 침묵으로 의장직을 그대로 유지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장악한 영남은 물론 호남 지역도 쏠림의 정도만 덜할 뿐 비슷한 상황이다. 광주·전남 지역에선 민주당이 광역단체장과 의회 과반수를 차지했고, 전북에선 열린우리당이 광역단체장과 의회 과반수를 차지했다. 16개 시도 가운데 15곳에서 단체장과 의회가 같은 당 일색이 돼 견제와 균형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2일 한나라당 지방선거 당선자대회가 열린 국회 의원회관에서 장애인을 모욕하는 발언을 한 김범일 대구시장 당선자의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이런 사정은 기초의회도 마찬가지다. 의원 14명 중 13명이 한나라당인 울산 중구의회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4월 중구가 거주자 우선 주차제와 관련해 의회에 보고도 않고 동 직원 3명을 임의로 교통행정과로 발령하는 편법 운영을 했는데도 문제삼지 않고 오히려 직원 2명을 증원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그대로 가결했다. 홍덕률 대구대 교수는 “특정 정당이 지방의회를 싹쓸이하면서 부패, 권한 남용, 오만 등 많은 부작용이 예상되지만 마땅한 견제 장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며 “언론과 시민단체가 적극 감시하고 주민소환제나 주민감사 청구제 등을 활용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방분권 국민운동’ 초대 의장을 지낸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지방선거에서 중앙 정치와 일당의 지배와 같은 폐해를 막으려면 광역단체장을 빼고 기초단체장이나 광역·기초 의원들에 대해 정당 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진식 손원제 임인택, 대구 수원 울산/구대선 홍용덕 김광수 기자 seek16@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