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컵 축구대회 결승전(중국-일본)당시 중국 청년들 사이에선 사상최악의 반일감정이 폭발했다. 그러나 이런 ‘민족주의’적 감정폭발은 다른 대상을 향한 표출통로가 모두 차단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베이징/AFP 연합
‘일 UN안보리 반대’ 서명으로 본 ‘쪽수의 힘’ 위력은? 인구 13억명. 전세계 인구 다섯명 가운데 1명은 중국인이라는 얘기다. 오죽하면 ‘중국인이 동시에 펄쩍 뛰면, 지구가 흔들린다’는 말이 나왔을까. 중국인들이 한 번 맘 먹고 움직이면 ‘지구’를 뒤바꿀 만한 위력을 갖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최근 중국어 사용 네티즌들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서명을 진행하는가 하면 한 사이트에서 진행 중인 세계 7대 불가사의 선정에 ‘입김’을 넣었다. 지난해 8월 일본과의 축구경기에서는 일본 네티즌과 설전을 벌였는가 하면 미국프로농구 올스타 선발에 있어서도 ‘야오밍’을 국제적 스타로 만드는 ‘극성’을 보였다. 이밖에 일본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갈등, 일본의 역사왜곡이나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한국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분쟁에 있어서도 적극적 목소리를 내왔다. 급속한 인터넷 사용자수 증가에 따라 온라인에서도 중국인들의 입김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1997년 62만명에 불과했던 중국 네티즌 수는 지난해 말 9400만명까지 늘었다. 올해 말엔 28% 늘어난 1억2천만~1억4천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세계 인터넷 이용자가 7억 명임을 감안할 때 14% 가량이 중국인이라는 얘기다. 한국 전체 인구의 3배에 달한다. 특히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인터넷 접속 컴퓨터수는 4160만대이며, 등록 도메인과 웹사이트 수가 43만개와 67만개로 조사되는 등 인터넷이용률 세계3위인 한국을 뛰어넘은 상태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인 중국 네티즌의 ‘극성’은 한국 네티즌의 ‘뺨’을 칠 정도다.
중국 네티즌 ‘반일감정’ 표출 적극적 중국 네티즌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반일감정’을 표현하는 데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난징대학살 등 일본 제국주의 만행을 직접 경험한 데다 동중국해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영유권 갈등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네티즌과 한국 네티즌은 ‘반일’에 있어서만큼은 유사한 행동을 보인다. 한일간 영유권 분쟁이 일고 있는 독도문제에 대해서도 중국 네티즌은 전적으로 한국 편이다. 특히 지난 2월9일 일본 정부가 댜오위다오의 민간등대를 사들여 국유화한 후 중국 네티즌의 반일감정이 극도로 높아졌다. 중국 최대의 포털사이트 신랑(www.sina.com·新浪)과 소후(搜狐) 등 중국의 포털사이트와 항일 의지를 다지는 인터넷 애국망 등에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토를 지켜야 한다” “애국인사는 단결하자”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중국 공산당, 마음은 있지만 힘이 없다”는 내부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일본의 × 같은 행동을 참아야 하는가”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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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네티즌, 한국인 독도대응 “잘한다” 최근 한일간 논란이 되고 있는 독도문제에 대해서도 중국 네티즌은 적극적으로 한국을 옹호한다. “일본이 망하지 않으면 세계에 평안한 날이 없다”, “한국 공군이여 일본 기를 격추하라, 중국인민은 너희를 지지한다”며 한국에 대한 격려를 쏟아내고 있다. 신랑망(新浪網)은 사태가 커지자, ‘한일독도문제’(日韓獨島(竹島)問題)‘라는 별도의 페이지(news.sina.com.cn)를 만들어 관심을 표시했다. 중국 네티즌들은 16~17일 이틀간 1200여건의 댓글을 올려 “한국인들을 배우자. 한국을 지지한다”, “댜오위다오 문제에 소극적인 중국인들에 비해 한국인들의 모습이 부럽다” 등의 글을 남겼다. 또 “일본이 망하지 않으면 세계에 평안한 날이 없다”, “일본은 공해다”와 같이 일본인들의 군국주의 부활을 걱정하는 글도 올리고 있다. 신화망(新華網:중국 신화사 인터넷신문)에도 “중국과 한국이 연맹관계를 만들자”, “(중국이) 한국을 도와야 한다”, “일본을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자”.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벌이자” 등의 글을 통해 반일감정을 확산하고 있다. 일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안돼” 40만명 서명 중국 네티즌의 위력은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여론을 주도하는 데서 확인된다. 세계항일전쟁역사보호회, 난징대학살배상추진연맹 등 중국 내지인과 재외 화교들이 운영하는 8개 사회단체가 이달 초부터 공동으로 시작한 일본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 온라인 서명운동에는 지난 20일 이미 40만1천556명의 네티즌이 참여했다. 반대서명을 추진하고 있는 항일전사보호회 리징펀 회장은 “100만명 서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서명을 첨부한 청원서를 올 가을 개최되는 유엔 총회에 제출하고 미국 의회와 백악관에도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이들은 중국 네티즌 뿐 아니라 전 세계 네티즌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확대하고 있다. 중-일 ‘축구전쟁’?…7일 아시안컵 결승 앞두고 신경전 앞서 지난해 8월 중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대회 때는 중국 네티즌들은 일본 네티즌들과 온-오프라인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대회기간 내내 일본팀은 중국 관중의 야유와 폭언에 시달려야만 했다. 일부 관중은 일본이 중국과 결승에서 맞붙자 일본 국가가 연주될 때 야유를 보내거나 일본 응원단에 폭언과 함께 쓰레기봉지를 내던졌다. 경기장 곳곳에는 ‘일본인은 아시아 인민에 사죄하라’ ‘일본은 댜오위다오를 중국에 반환하라’는 등 정치적 주장을 담은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중국 네티즌들은 일본과의 결승전을 ‘항일’ 혹은 ‘전쟁’으로 표현하며 반일감정을 부추겼다. 일부 네티즌은 “일본에서 경기가 열리면 일본인도 (우리처럼) 응원하지 않느냐”며 과잉반응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양국은 지난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옛 일본군의 중국 동북지방 화학무기 유기, 일본 관광객 집단매춘 사건 등으로 첨예한 신경전을 벌여왔다. 미국프로농구(NBA) 올스타전 야오밍 ‘왕별’ 등극의 숨은 주역 중국 네티즌의 위력은 스포츠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들은 ‘걸어 다니는 만리장성’으로 불리는 야오밍(25·휴스턴 로키츠)을 미국프로농구(NBA) 2005올스타전 ‘베스트5’ 팬 투표에서 역대 최고득표를 몰아주어 ’최고스타’로 만들었다. ‘공룡 센터’ 샤킬 오닐(마이애미 히트)도 종전 최다득표 기록인 1997년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245만1136표를 뛰어넘어 248만8089표를 얻었으나 인터넷 등을 통해 실시된 팬 투표에서 중국 누리꾼(네티즌)의 몰표가 쏟아진 야오밍에게 뒤졌다. 호나우디뉴 온라인 채팅에 중국팬 140만명 접속 지난해 8월에는 스페인 FC 바르셀로나의 간판 스타인 브라질 출신 호나우디뉴가 온라인상에서 중국 축구팬들과 채팅하는 이벤트에 무려 140만명의 네티즌들이 몰려 중국 네티즌의 위력을 과시했다. 호나우디뉴는 중국과 일본이 아시안컵 결승전을 치르던 지난해 8월7일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뉴스 및 연예 사이트 가운데 하나인 ‘신랑망’이 주최한 팬들과의 채팅 이벤트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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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대 불가사의’ 선정 투표에 중국 네티즌 세몰이 ‘세계7대 불가사의(New Seven Wonders, www.n7w.com)’라는 웹사이트에서 진행 중인 이 투표에서 24일 현재 중국 만리장성이 10.93%로 1위이고, 중국 지배 아래 있는 티베트 라사의 포탈라 궁전(8.46%)이 2위를 차지했다. 국가별 투표율에서 중국이 40.78%로 1위를 차지한 것에서 보듯, 중국 네티즌의 집중투표가 크게 작용했다. ‘구룡쟁패’ 중국 네티즌이 해킹 공격? 그렇다 해도 중국 네티즌이 항상 한국 네티즌과 보조를 맞추는 것은 아니다. 중국 네티즌의 조직적 움직임은 세계평화라는 공동선보다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중화주의’에 기인하는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유명 온라인게임 ‘구룡쟁패(www.ninedragons.co.kr)’는 지난 2월16일 오전 9시께 중국 네티즌의 해킹 공격으로 서비스가 중단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특히 해킹 화면에 중국의 오성홍기가 등장하고, 한국산 게임을 보이콧하자는 살벌한 경고문까지 실어 국내 게임 관계자들을 긴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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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공한증’ 넘어 ‘중화주의’ 우려해야 때문에 중국 네티즌의 ‘반일’시위에 대해서도 한국 네티즌은 긴장을 풀지 않으면 안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중-일간 축구전이 양국의 외교문제로 비화됐던 전례를 감안할 때, 중국 네티즌의 일본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서명을 적극 환영할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중국과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는 고구려사 왜곡이나 동북공정에 있어 주체적인 자세가 요구되며, 중국과 일본의 기싸움에 한국이 말려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의 박기태 단장은 “중국과 일본 네티즌의 싸움에 한국 네티즌까지 가세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 한국편을 들 뿐 실질적으로는 양국 모두 한국의 역사와 영토를 왜곡하고 있는 장본인”이라며 “한국 네티즌은 중국과 일본에 가려진 한국의 역사와 영토찾기에 매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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