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3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정보기관의 역할과 활동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며 탈레반에 납치됐던 한국인 피랍자 석방 과정에서 과다한 언론 노출과 자기홍보로 입길에 오른 김만복 국정원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정원 내부에서조차 김 원장의 행동을 두고 “처신을 잘못해 조직을 욕먹이고 있다”며 비판적인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이번 사안은 자국민을 테러 단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국정원장이 대테러활동 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사건 해결을) 지휘하는 건 공식적인 업무”라고 밝혔다. 그는 “과거 ‘정보기관 책임자의 활동을 무조건 공개해선 안 된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었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고 정보기관의 역할과 활동 방식도 바뀌고 있다”며 “산업비밀 보호, 피랍문제 관련 활동은 사후 공개가 부정적이라고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천 대변인은 또 ‘의도적인 언론 노출이 아니냐’는 의문에 “카불 현지에 안전한 호텔이 하나뿐이어서 불가피하게 노출 가능성이 있었다. 일이 급박하게 진행되면서 언론의 (현지) 취재가 허용됐고, (원장의 활동이) 공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리 판단하고 김 원장이 현지에서 조처를 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특히 ‘선글라스맨’으로 알려진 탈레반과 대면협상에 참여한 국정원 직원을 언론에 공개한 데 대해서도 “상대방(탈레반)의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합의과정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 안에서도 국정원 활동의 홍보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김 원장이 자화자찬성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등 일부 행동을 두고는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김 원장의 아프간 현지 파견은 이미 같은 호텔에 묶고 있는 외교부 직원들까지 알고 있어 보안 유지가 안 된다고 판단해, 오해 불식을 위해 공개하기로 한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협상 성공에 너무 기분이 좋아져 일부 과도하게 자신을 홍보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정원의 한 고위간부는 “김 원장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 줄 알았는데 상식 밖의 행동을 해 대부분 직원들이 내심 크게 실망하고 있다”며 “사실상 첫 국정원 출신 원장이 저런 행보를 보였으니 이제 또다시 원장 자리에 외부 인사가 ‘낙하산’으로 와도 할말이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 간부는 “피랍 초기 우리가 탈레반 체제, 탈레반 부족 지도자급 인맥, 협상 방향 등을 깊이있게 분석해 청와대에 보고해 인질 석방을 위한 협상 국면을 주도했다”며 “하지만 막판에 김 원장이 너무 공치사를 하는 바람에 국정원의 공로 자체가 묻혀 버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국정원 간부는 “내년 총선에 나서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게 대체적 평가”라고 말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4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국정원의 달라진 위상과 역할을 언급하는 방식으로 이번 논란에 대한 견해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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