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아직 답변 못받아”
정부가 지난달 중순 북쪽에 옥수수 5만t 지원 협의를 위한 실무 접촉을 제의해 북쪽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김하중 통일부 장관이 4일 밝혔다.
김 장관은 이날 취임 뒤 첫 공식 브리핑에서 “북한이 최근 춘궁기를 맞아 식량 사정이 어려워지는 점을 감안해, 북한이 우리에 대한 비난을 계속하지만 이미 합의됐던 옥수수 5만t 지원 문제를 다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며 “3주 전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옥수수 지원 협의 접촉을 제의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북한이 아직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고 있다”며 “북한이 우리의 제의에 조속히 호응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북쪽의 반응이 없으면 세계식량계획 같은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 첫 대북 공식 제안인 옥수수 5만t 지원을 위한 접촉 제의는 남쪽 정부가 주도적으로 내놓은 게 아니라, 최근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진전 등 외부 상황에 떠밀려 나온 측면이 강하다.
김 장관은 “북의 대남 비난에도 불구하고 접촉을 제안했다. 진정성으로 보면 (단순 접촉 제의가 아니라 옥수수 5만t 지원) 제의라고 해석해도 된다”고 적극적 의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접촉 제의는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고육지책 성격이 강하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대북 식량 지원과 관련해 정부의 태도는 단호했다. 정부는 “먼저 북한의 지원 요청이 있어야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북핵 문제의 진전과 함께 미국이 북한에 식량 50만t 지원을 결정하는 등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 지원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정부의 처지가 곤궁해졌다. 외교적 고립이 우려된 것이다. 여기에 야당은 물론 한나라당도 한목소리로 조건 없는 대북 식량 지원을 검토하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정부 내부에서도 기류 변화 조짐이 나타났다. 유명환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19일 “북한의 식량 사정이 매우 심각한 것 으로 확인되거나 심각한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북한의 요청이 없어도 식량 지원을 검토할 수 있다”며 대북 식량 지원 재개 쪽에 무게를 실었다.
정부가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정권 때 합의된 옥수수 5만t 지원 건을 끄집어낸 것은 명분과 실리를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옥수수 5만t 건은 지난해 12월 지원하려다 국제 곡물가 급등과 물량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늦춰졌다가 정권이 교체되면서 집행이 유보된 것이다. 현 정부로서는 큰 정치적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북쪽이 먼저 요청해야 지원한다”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남북관계 개선의 고리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쪽이 협의에 응할지는 알 수 없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식량과 비료 지원은 시기가 중요한데 정부가 정책 추진의 최적 시기를 놓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하지만 북쪽이 협의에 응할지는 알 수 없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식량과 비료 지원은 시기가 중요한데 정부가 정책 추진의 최적 시기를 놓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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