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철 국가기록원 원장(맨오른쪽)이 13일 오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에서 노 전 대통령쪽으로부터 대통령기록물의 회수와 열람편의 방안을 청취한 뒤 전해철 전 민정수석(오른쪽 두번째)과 함께 사저를 나서고 있다. 김해/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정부조사 받은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가기록원이 13일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자료 유출 논란의 진위와 자료열람권 보장 문제 등을 협의했다. 정부 쪽에서는 김영호 행정자치부 제1차관과 정진철 국가기록원장, 임상경 대통령기록관장 등 책임자들이 모두 출동해 이날 회동의 중요성을 더했다.
그러나 양쪽의 이견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다.
우선, 가장 관심을 모은 하드디스크 폐기 여부는 정부 쪽의 무대응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 쪽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 하드디스크는 국가기록원에 자료 진본을 넘겨준 뒤 적법한 절차에 따라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만든 뒤 폐기했다”며 “폐기 장소와 주체, 이들이 폐기 뒤 청와대 정보보안위원장인 총무비서관에게 구두보고 했다는 것을 모두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진철 원장은 “청와대의 (하드디스크) 시리얼 넘버를 가져오지 않아 짧은 시간에 (원본 여부) 확인을 못 했다”며 “대통령 기록을 관리하는 기록원은 하드 원본 확인이 주요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즉답을 피했다. 그동안 청와대가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가지고 갔다”며 불법성을 강조했던 데 비하면 김이 빠지는 대응인 셈이다.
기록원에 넘겨주지 않은 자료를 봉하마을로 유출했다는 의혹도 풀리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전 자료, 개인자료 등 이관 의무가 없는 것을 제외한 모든 국정 자료는 이미 국가기록원에 넘겼고, 인사 관련은 아예 봉하마을로 가져오지도 않았다”며 “국가기록원이 사저의 모든 자료를 직접 복사해 가서 확인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록원은 “복사에 10시간 이상 걸린다”며 사실상 거부했다.
‘유령회사’ 논란 등에 대해서는 아예 대화도 주고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쪽 사람들이 떠난 뒤 천호선 전 대변인의 주장만 나왔을 뿐이다.
천 전 대변인은 “청와대가 유령회사라 밝힌 디네드는 2004년 설립된 아이티 업체로 청와대 시스템 유지·보수 사업에 관여해 왔다”며 “이지원을 개발한 삼성에스디에스에서 법인과만 계약할 수 있다고 밝혀, 관리 실적이 있는 디네드를 통해 계약했다”고 말했다. 천 전 대변인은 여기에 측근의 뒷돈 30억원이 들어갔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부가세를 빼고 모두 9천만원을 지불했을 뿐이며, 지인에게 적절한 절차를 거쳐 빌린 돈”이라고 해명했다.
그래도 ‘열람 방식’ 문제에서는 한발 진전이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현재 군사기밀 통신 및 정부 행정전산망으로 쓰이는 케이티 전용망을 통한 온라인 열람이나 국가기록원 직원이 직접 봉하마을 자료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사저에서 자료 열람이 가능해지면 즉시 자료를 반환하겠다”고 요구사항을 구체화시켰다. 이에 대해 정 원장은 “열람 서비스에 여러 대안이 있지만 국가기록원 단독으로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라면서도 “열람 편의 방식을 관련기관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또 쟁점 중 하나인 봉하마을 자료의 해킹 우려도 일정 부분 해소됐다. 정 원장은 “현장 확인 결과 열람을 위한 별도의 이지원 서버가 존재하고, 현재 외부 전산망과는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다 보니, 이 문제는 검찰 수사로 넘어갈 가능성이 더 커지고 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 조사 뒤 “이 사건은 국가의 안위와 관련된 중요 기록물이 불법 유출돼서 사적으로 보관·관리되고 있는 국가기록물 불법 반출 사건으로, 여러 차례 밝혔듯이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더욱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봉하/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그래도 ‘열람 방식’ 문제에서는 한발 진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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