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 “정치재개 막으려는 의도서 시작”
“너무 오랫동안 끌면서 괴롭혔다.”
여권의 한 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자살을 두고 24일 이렇게 푸념했다. 지난해 7월말 국세청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상대로 세무조사에 착수해 11월 검찰 수사로 이어진 ‘사정 정국’이 10개월이나 지속되면서 전직 대통령을 필요 이상으로 압박했다는 자괴감이 섞인 말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국세청 세무조사나 검찰 수사와 연결짓는 해석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극도로 꺼린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정치권을 뒤흔드는 단초가 된 국세청의 박연차 세무조사가 청와대와 교감 없이 이뤄질 수 있었겠느냐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친이명박계의 한나라당 의원은 “여권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정치를 재개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가졌다”며 “박연차 회장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는 당시 이를 주저앉히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청와대의 압박은 지난해 5월 대통령 기록물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청와대는 “노 전 대통령 쪽이 대통령 기록물을 불법 유출했다”고 공개적으로 반납을 요구해 노 전 대통령의 ‘항복 선언’을 받아냈다. 그 뒤 세무조사가 시작된 지난해 7월말은 이 대통령이 쇠고기 촛불의 수렁에서 반전을 도모하던 때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로 귀향해 인기를 얻으며 인터넷 토론사이트인 ‘민주주의 2.0’을 구축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노 전 대통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며 노 전 대통령이 ‘반이명박’의 구심점이 될 가능성을 경계했다. 여권의 한 인사는 “대선 직후 인수위 시절까지만 해도 노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에 대해 ‘겁’만 주되 직접적인 타깃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기조가 강했다”며 “그러나 정권 출범 직후 ‘잃어버린 10년’이니 ‘좌파 척결’ 등의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노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는 흐름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은 연임을 노리고 박연차 세무조사를 기획했고, 노 전 대통령을 약화시키고 싶은 청와대의 의도가 맞아떨어져 세무조사가 이뤄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 전 청장은 지난해 11월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청와대가 ‘박연차 리스트’의 폭발력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우리 쪽 사람 중에도 관련되는 사람이 있겠지만 원칙대로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안다”며 “특정인을 겨냥하거나 보호할 의도 없이 법과 원칙대로 진행된 일”이라고 국세청과의 교감설에 선을 그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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