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원안 백지화 - 전문가들 수정 이유 비판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가 4일 행정도시(세종시) 원안 수정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힌 데 대해 전문가들은 “행정 기능을 빼고 어떻게 행정도시의 자족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국가경쟁력과 통일 이후의 상황을 위해서라도 행정도시 건설을 통한 국가 균형발전 정책은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행정도시건설추진위원을 지낸 황희연 충북대 교수(도시공학과)는 “자족도시로 성장하기 위해 중앙부처 이전은 기본적이고 필수적”이라며 “중앙부처를 보내지 않으면서 대학이나 연구소, 기업 등을 유치하겠다는 말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공허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또 “자족도시로 성장하기 어려우니 행정도시로서의 기능을 축소·백지화하겠다는 것은 전혀 앞뒤가 안 맞는다”고 주장했다.
서울·대전에 이어 또다른 행정도시가 건설돼 중앙부처가 분산되면 행정 비효율을 가져온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학자들은 과장됐다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지역계획학과)는 “행정의 효율성을 지리적 접근성으로 따지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행정 효율성에 대한 지적은 ‘최고권력 가까이 있어야 모든 일이 효율적으로 된다’는 식의 중앙집권적 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권용우 성신여대 교수(지리학과)는 “대의기구인 국회에서 통과된 정책에 대해 행정부가 나서 논란을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행정의 비효율”이라며 “행정도시 건설로 얻을 수 있는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토 균형발전 효과를 생각하면 부처 이전에 따른 비효율이란 극히 작은 부분”이라고 말했다.
통일 이후의 상황을 대비해 행정도시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과 정 총리의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왔다. 안성호 대전대 교수(행정학과)는 “통일이 됐을 때를 가정해 보면 북쪽 동포들이 이미 과밀한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들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며 “통일 이후를 대비한다면 행정도시와 혁신도시 정책을 통해 수도권의 인구와 기능을 지방으로 분산하는 일이 더욱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이 국가경쟁력을 위해 행정도시 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한 데 대해 조명래 교수는 “서울과 수도권의 과밀화로 교통과 환경 비용이 한해 수십조원에 이르고, 수도권의 땅값·집값도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라며 “국가나 수도권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수도권의 인구와 기능을 분산해 교통·환경·주거 수준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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