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만에 민주당에 복당한 정동영 의원은 “우리 당의 40대가 분발해야 한다. 내가 대선후보 경선에 처음 나간 게 49살 때였다. 지금 40대들은 왜 그렇게 겁을 내나? 용기와 패기를 갖고 (큰 선거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만난 사람 정동영 의원
1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 들어서는 정동영(57) 의원의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그는 “가는 세월을 어떻게 막아요? 이젠 나도 젊지 않아요”라고 했다. 명앵커로 이름을 날리다 마흔셋에 정치권에 들어와,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맞붙었을 때 그의 나이가 마흔아홉이었다. 항상 젊을 것만 같던 그도 이순을 바라본다. 2년여 만에 다시 본 그의 얼굴에서 변화가 느껴지는 건 단순히 세월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2007년 대선 패배 뒤 그는 미국에 연수를 갔고, 민주당을 떠나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고, 지난주에 민주당으로 돌아왔다. 순탄하진 않았고, 비판도 많았다. 다시 정치의 전면에 선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2년의 세월은 정동영을 얼마나 변화시켰을까? 인터뷰/박찬수 부국장 pcs@hani.co.kr -오늘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이상화 선수가 금메달 따는 거 보셨습니까? “아, 또 땄어요? 금을 땄다고? 와, 대단하네. 요즘 젊은이들 보면 주눅드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축구도 우리가 유럽 사람한테 안된다는 게 있었잖아요. 그게 한-일 월드컵 때 깨져서 신기했는데, 스케이트도 시설이나 환경이 열악하고 체격도 안되는 것 아니냐는 게 있었죠. 그것도 일종의 패배주의인데, 요즘 젊은이들한테는 겁나는 게 없는 거죠. 좀 갖다붙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민주주의의 성과라고 봅니다. 국민 주눅들지 않게 하는 거….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권위주의가 타파되고 자신감이 부상한 것이지요. 스포츠에 딱 갖다붙일 수는 없겠지만, 그런 분위기와 맥을 같이한다고 봅니다.” -주눅들지 않고 자신감을 갖는 게 요즘 민주당에도 필요한 거 같습니다.(웃음) “민주당도 좀 주눅이 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 “(웃음) 그게 쉬우면 여기 앉아 있겠습니까? 어렵죠…, 하지만 같이 고민해야죠. 뭐, 어렵지만 답은 쉬운 데 있습니다. 국민 속에서 관심을 키우는 겁니다. 국민의 관심을 먹고 사는 게 정당이고, 그래서 집권하는 건데, 지금 민주당이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졌어요. 그렇다고 국민을 탓하면 안 되고, 국민의 관심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스마트폰도 젊은 세대 중심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자신의 아이폰을 보여주며) 트위터를 선관위가 묶으려고 합니다. 1995년에 공직선거법을 만들었는데, 온라인 이해가 없을 때 만든 법으로 묶으려는 건 난센스죠. 우주선 발사해놓고 도로교통법을 들이대는 것과 같습니다. 트위터같이 젊은 사람들의 관심 속으로 파고들어야죠. 작은 예이지만 상징성이 있죠.” 민주정부 10년동안 양극화 벌어져 서민층 이반
“복지국가·평화체제 대안…더 진보적인 색깔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지지층 열정에 불을 붙여야 한다”는 얘기를 하셨는데요, 그 부분이 민주당이 약한 부분인데, 복당했으니까 불을 붙일 자신이 있습니까? “같이 해야 할 일이죠. 미국에 있을 때 보니까 (2008년 대선 때) 오바마 지지층에 불이 붙더라구요. 제가 시골(노스캐롤라이나 듀크대)에 있었는데도 알겠더라구요. 그런데 공화당은 죽어 있었어요. 그 온도차가 느껴지더군요. 민주당도 지금 환경은 좋죠. 국민 마음이 현 정부한테서 떠나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정치하는 이유, 집권해야 하는 이유, 또 잘못한 것에 대한 철저한 성찰과 참회, 반성, 확고한 대안, 이런 것들이 (불을 붙이는) 조건이 되겠죠. 특히 젊은층에 다가가야 합니다. 가령 대학 캠퍼스에서 민주당 티셔츠를 당당하게 입고 다니게 해야 하는 거죠. 캠퍼스에서 민주당 티셔츠가 불티가 나게 하면 집권할 수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과 우리 민주당의 같은 점, 다른 점은 뭐라고 느꼈습니까? “지지층이나 정치 성향, 이런 것은 같죠. 또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정부의 역할, 정부의 개입을 강조하는 것, 사회복지에 대한 역할, 이런 건 유사하죠. 그런데 미국 민주당은 서민·중산층과 일치하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우리 민주당은 서민·중산층이 이반되어 있어요. 참여정부 말기엔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이 우리보다 앞선 결과가 나온 적도 있습니다. 정말 안타깝고 반성하는 건데, 원죄는 한나라당 정권이 국가를 부도내서 물려준 데 있지만 민주정부 10년 동안 빈부격차가 벌어졌습니다. 우리가 두번째 집권했을 때, 우리한테 정권을 맡겨준 소명, 시대의 요구를 우리가 제대로 붙들지 못했어요. 참여정부 5년차가 되었을 때야 양극화를 화두로 내세웠습니다. 너무 안타까워요.”
정동영 민주당 의원.
지방선거 단일후보 내는 ‘지지자 연합정당’ 제안 -지방선거에서 이기려면 국민참여당과 창조한국당뿐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까지 아우르는 진보대연합 또는 민주대연합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습니다. 연대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반반 아닐까요?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거죠. 구성원들이 얼마나 절박한가 하는 게 중요하고, 그 속에서 내 몫을 챙기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죠. 1 대 1 구도를 만들면 이기는 겁니다. 호남도 있고 영남도 있고 제주도 있지만 핵심은 수도권입니다. 수도권은 단체장이 다 한나라당입니다. 현역 프리미엄이 있죠. 인지도가 높고 다 젊잖아요? 간단치 않습니다. 상처받은 민심, 분노하는 민심에 비추어서 보는 막연한 낙관론이 민주당 내엔 있습니다. 저는 아주 위험하다고 봅니다. 다자 구도면 어렵습니다. 그럼 1 대 1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심지 뽑기를 할 순 없죠. 후보 선출 과정에서 관심을 모으려면 단일후보를 내는 정당이 필요합니다. 일종의 가교정당이죠. 당과 당의 다리를 놓는 정당을 만들어서, 완전 개방형 국민참여 경선을 실현하면 서울시장은 우리가 이깁니다.” -지방선거 이후엔 다시 원래의 정당으로 돌아가는 일종의 임시 정당인데, 그게 가능할까요? “그 문제를 갖고 토론회도 열고 그럴 생각입니다. 현행 정당법상 정당간 경쟁(경선)은 안 되니까, 가교정당을 만들자는 거죠.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기면 운영위원회를 설치해서 각 정당이 참여하도록 하구요, 또 서울시장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100개라면 정당 특성에 맞게 분점하는 연립정부를 하는 거죠. 정책연합도, 가령 민주노동당의 무상급식 정책이 좋다면 그것도 받아서 정책연합을 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합의문을 만들어서 ‘지지자 연합정당’을 만들자는 건데, 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얼마나 열정적으로, 절박함을 갖고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완전 개방형 국민경선은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 모바일(휴대전화)이 있습니다. 가령 서울을 동부, 서부, 남부, 북부로 나눠서 토요일과 일요일 투표를 하면, 이런 식으로 2주 (경선을) 하면 되죠. 4월에 우리가 이렇게 하면 서울은 이깁니다. 그렇게 하면 이명박 정부에 분명한 제동이 걸릴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경선을 하면 아무래도 제1당인 민주당 후보가 유리한 거 아닌가요? 진보정당이나 작은 정당이 그런 규정에 합의를 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시민사회 원로들에게 말씀을 드려보려고 합니다. 김상근 목사님에게 충분히 말씀드렸고, 백낙청 선생님도 찾아뵐 생각입니다. 그런데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도 서울시장 후보로 나오셨는데, 스마트폰에 관심이 많으시던데, 모바일로 완전 개방 국민경선을 하면 노회찬 후보가 당선(경선 승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기술과 보안도 발전했으니 모바일 보안인증을 받아서 하면 됩니다. 온오프 병행해서 해도 되고요. 불이 붙을 거 같은데 어때요? 우리 정치를 확 뒤집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4월 민주당을 탈당해서 전주에서 국회의원 재보선에 출마하셨는데, 이것 때문에 당 안팎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때 그 결정에 대해 아쉬움은 없습니까? “아…, 뭐… 아쉬움 없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정치를 하려면 의회에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밖에 있는 건 운동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호남인 내 고향에 왜 가냐고 하는데, 오바마도 자신의 흑인 정체성을 부인한 적이 없어요. 자기 피부색깔을 희게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죠. 그리고 박근혜 전 대표에겐 왜 영남에서만 출마하냐고 묻지 않는데…, (나에게만 묻는 건) 명백한 차별입니다. 전주는 내가 정치를 시작한 모태입니다. 오바마가 흑인 정체성을 한번도 부정하지 않았듯이, 내가 전주 출신 국회의원임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왜 갔냐고 물으면, 나한테는 와닿지 않는 말입니다. 저는 전주에서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또 우연히 그 지역에서 재선거가 이뤄져서 출마한 것이지요. 부담이 있는 건 감수를 하겠습니다.” -정 의원을 보면 처음엔 그렇지 않았는데 점점 더 ‘호남색’이 강해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난해 전주에서 출마한 것도 그런 데 일조했을 거고요. 오바마는 흑인이면서도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아이오와주 코커스에서 1등을 했습니다. 정 의원의 그런 모습이 수도권의 지지층을 넓히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글쎄…, 유불리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자기정체성 문제인데…, 나의 정치적 뿌리는 전주입니다. 제가 오바마를 얘기한 것은, 오바마의 피부 색깔을 묻지 않았듯이, 미국 백인이 피부 색깔로 판단하지는 않았듯이, 정동영이 제주도건 전주이건 묻지 않는, 그 기준이 나한테도 똑같이 적용되기를 바라는 거죠. 나의 발언, 내가 말하는 내용으로 평가해야지 내 출신지역으로 평가하진 말아달라는 겁니다.” -2012년 대선에 다시 도전하실 생각인가요? “당 안팎의 엄중한 상황을 보면, 그런 생각 자체가 지금은 사치스럽습니다. (종이에 2012년이라고 연필로 쓰면서) 다만, 2012년 선거가 2007년처럼 해보기도 전에 결판나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선거다운 선거를 하기 위해선 지금부터 절박해야죠. 국민 속으로 파고들어가야죠. 2007년 선거 패배는 제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판은 선거 훨씬 전부터 끝나 있었습니다. 2012년도 그렇게 만들어선 안 됩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 사이엔 2012년이 2007년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그렇게 안 되도록 해야죠.” -그러려면 민주당에 기대를 걸 만한 사람들이 많이 보여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보입니다. “민주당도 40대가 분발해야 합니다. 제가 대선후보 경선에 처음 나간 게 49살 때입니다, 2002년 경선에서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40대들이 왜 그렇게 겁을 내는 겁니까? 젊은 사람들이 용기와 패기를 갖고 도전해야죠. 뭐라고 해야 표현이 부드러울까요, 위축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요즘 젊은이들은 주눅이 안 들어 있는데, 우리 당의 40대는 너무 위축된 거 같습니다. 내가 젊은 사람 취급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저도 이제 젊지 않습니다.” 정리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