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후보가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선거사무실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4·11 격전지 르포] FTA·재건축 두고 주민들 호불호 확연
“정동영 FTA 말바꾸기 싫어”…“새누리당 심판 받아야”
“정동영 FTA 말바꾸기 싫어”…“새누리당 심판 받아야”
“정동영은 FTA에 대한 입장을 자주 바꾸어서 싫어요.” (서울시 강남구 대치2동 이정애·56)
“FTA 날치기 통과시킨 새누리당을 심판하려면 정동영이 당선되어야 해요.” (서울시 강남구 일원1동 배아무개·35)
‘한미FTA 협상주역’ 김종훈 새누리당 후보와 ‘한미FTA 반대파’ 정동영 민주통합당 후보가 맞붙은 강남을 지역구. 이곳 주민들은 지지여부를 떠나 정동영 후보에게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관심도로 따지면 김 후보보다 정 후보 쪽이 훨씬 높다. 그러나 정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호불호는 확연히 갈린다.
정동영 후보는 ‘강남의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11일 아침 강남을 지역구 투표장 분위기를 훓어보았다.
아침 8시. 서울 강남구 대치2동 제2투표소 앞. 강남의 대표적인 아파트 단지의 하나인 은마아파트 주민들이 투표를 하는 곳이다. 우산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약한 보슬비가 내리던 이날 아침 주민들은 일찍이 투표장을 찾는 모습이었다. 이 지역 민심은 대체로 김종훈 후보 쪽에 기울어 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온 이아무개(59)씨는 “누구에게 투표했냐”는 질문에 “강남은 안보를 먼저 생각하는 곳”이라고 에둘러 대답했다. 그는 “민주당은 정체성이 모호해 신뢰가 가지 않는다”며 새누리당을 옹호했다. 이정애(56)씨는 정동영 후보가 싫어서 투표하러 온 유권자였다. 그는 “정동영은 FTA에 대해 말바꾸기를 했다. 반면 김종훈은 일관 되게 FTA를 추진했다. 나는 일관된 사람이 좋다”고 말했다.
은마아파트에는 집소유주보다 세입자들이 많이 살아 젊은 사람들이 많다. 일부 야권 성향 유권자도 눈에 띄었다. 김태용(40)씨는 “정동영이 말을 바꾸긴 했지만 잘 바꾼 것이다. 당선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정동영을 격려하고 싶어 2번에 표를 주었다”고 말했다.
강남구 개포1동 개포중학교에는 ‘제4투표소’가 설치되어 있다. 학교 앞에는 ‘박원순 재직동안 재건축을 중단한다’, ‘주민 바람 정비 계획 즉각 통과시켜라’ 같은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 지역은 수십년 전 지은 5층짜리 낡은 아파트 단지가 대부분이라 재건축 문제가 유권자의 주요 관심사다. 투표하고 나오는 주민들은 재건축에 대한 관심을 적극 표현했다.
임아무개(29)씨는 “15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데 낡은 아파트에 사느라 힘들다. 재건축을 도와줄 수 있는 정당에 투표하고 나오는 길”이라며 “새누리당이 좋다”고 답했다.
강남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 많이 사는 강남구 일원1동 주민들은 정동영 후보와 김종훈 후보에 대한 지지가 팽팽했다.
11일 아침 7시께 투표소 앞에서 만난 배아무개(35)씨는 정동영 후보에게 투표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배씨는 “새누리당이 FTA 날치기 통과하는 것을 보고 새누리당을 심판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했다.
반면, 김선길(62)씨는 “이곳은 무조건 1번”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강남 주민들이 왜 새누리당을 지지하는지 물을 필요도 없다는 취지로 보였다. 이광근(42)씨는 “무상급식 포퓰리즘이 싫어 새누리당을 찍고 나오는 길이다”고 했다.
강남구 개포1동 구룡마을은 1965명의 유권자가 사는 판자촌이다. 이곳 유권자들은 지난 해 처음으로 주민등록 이전이 받아들여져 올해 처음으로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른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주민들의 총선에 대한 관심은 무척 높아보였다. 8시 현재 13%의 투표율을 보였다.
마을 주민회 관계자들은 투표소로부터 50여m 떨어진 곳에 천막을 쳐놓고 투표하고 나오는 유권자들에게 커피를 나눠주었다. 주민들은 투표를 독려하려고 커피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유귀범 구룡마을회장은 “오세훈, 공성진 등이 모두 강남을에서 당선되어 유명해졌지만 단 한번도 구룡마을에 신경 쓰지 않았다”며 “이번 만큼은 구룡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정동영 후보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보였다. 이성순(53)씨는 “서민들을 위해 일할 사람은 정동영이라고 본다”며 “정동영은 구룡마을에 많은 관심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정동영 후보는 7년 전 판자촌인 구룡마을을 찾아 하룻밤 묶으며 지역 주민들의 고충을 듣고 가기도 했다.
아침 8시 20분께. 구룡마을 주민들은 선관위 직원들과 한 바탕 말싸움을 벌였다. 선관위 직원이 “투표소 앞에서 음료를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채증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선관위 직원을 둘러싸고 “투표율 높이려고 하는데 이렇게 방해할 수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정동영 후보는 아침 8시40분께 투표를 마쳤다. 정 후보는 “느낌이 좋다”는 말로 심정을 표현했다. “사실 강남을에 마음을 비우고 출마했다. 그러나 선거운동을 하다보니 젊은 사람들이 ‘꼭 이겨달라’고 말하는 걸 보고 유권자들이 오히려 나보다 더 간절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느낌은 1997년 김대중 대통령 선거 때 이후 처음이다”고 말했다. 정 후보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그러나 투표율이 예상보다 높지않다. 오전 9시께 투표율이 8.9%가 나오며 18대 총선 때보다도 낮게 나오자 정동영 후보 사무실 관계자들의 표정에는 초조함이 엿보였다. 정 후보 쪽은 투표율이 높아야 젊은층의 지지를 많이 받을 수 있다고 보고있다. 정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사무실에서 투표율 보도를 살펴본 뒤 “투표율이 너무 낮네”라고 탄식했다.
강남을 지역구의 오후 1시 현재 투표율은 다소 높아져 32.8%다. 서울에서는 네번 째로 높은 수치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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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지역별 투표율
역대 주요 선거 시간대별 투표율(14시 현재)
서울 강남구 대치2동 주민들이 11일 아침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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