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0월 필자는 신병으로 중도 퇴임한 김찬국 총장의 뒤를 이어 원주 상지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김문기 전 재단이사장이 ‘비리사학의 백화점’으로 꼽히며 물러난 지 6년이 지났지만 상지대는 여전히 옛 재단 쪽의 저항으로 갈등을 빚고 있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36
1999년 9월28일. 김찬국 목사님 부부가 집으로 찾아왔다. 상지대 총장 사표를 냈다며, 내가 총장 자리를 맡게 될 것이라고 부인이 얘기를 전했는데, 김 목사님은 옆에서 그저 웃기만 했다. 아마도 이때 벌써 치매가 깊어진 것 같다.
사실 며칠 전 상지대 교수협의회 대표로 3명의 교수가 찾아와 총장 추대를 하겠다면서 나의 동의를 구했다. 93년 문민정부는 출범 초기 부정부패 일소 차원에서 당시 부패사학의 백화점으로 지탄받던 김문기 이사장을 현역 국회의원임에도 단호하게 사법처리했다. 이에 투명하고 원칙 있는 신학자요 민주투사인 김찬국 연세대 부총장이 새 총장으로 영입되었다. 하지만 최근까지 상지대는 김 전 이사장 쪽의 끈질긴 저항으로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김 총장에게 치매 증세가 나타나면서 집무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내게 총장을 맡으라 하니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상지대로 가면 최근 몇달 동안 시달려온 집권 여당의 정계입문 압력을 물리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대학을 사유물로 여기며 호시탐탐 재단 운영권을 탈환하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김 전 이사장 세력으로부터 상지대를 지키는 일은 사학비리 척결이라는 시대적 과업이기도 하지 않겠나. 그래서 나는 상지대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10월5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강원지부 원주·횡성지회에서 ‘상지대 신임 한완상 총장님을 환영하며’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아직 공식 선출 이전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성명 내용도 분에 넘치는 찬사와 기대를 담고 있어 부담스러웠다. 전교조가 이례적으로 대학 총장 선임에 관한 의견을 낸 데는 사연이 있었다. 김 전 이사장의 복귀를 요구하는 서명작업에 강제로 동원된 한 전교조 소속 여성 교사가 실적 부진을 걱정하다가 스스로 죽음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퍼진데다 옛 재단의 복귀를 바라는 일부 학생들이 비 오는 날 재단 비리를 비판해온 한 교수를 둘러메고 거리시위를 한 것이다. 이 사건을 전교조는 ‘백색테러’로 성토하고 나섰다.
10월12일 학교법인 상지학원의 관선 이사회는 나를 상지대 4대 총장으로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교수협의회 공동대표 3명, 총학생회장, 노조위원장, 총동문회장으로 구성된 총장후보 추대위원회가 나를 추천하고, 이를 이사회에서 제청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이른바 ‘상지대 용공조작 사건’이 터졌다. 지난 86년 당시 학생들이 재단 비리를 규탄하는 농성을 벌이자, 김 이사장이 금품으로 학교 보직자를 매수해 ‘가자 북의 낙원으로’ ‘김일성 수령님과 타협하여 통일하자’ 등의 전단을 뿌리게 하고는 마치 농성학생 100여명이 불온 전단을 만들어 뿌린 것처럼 조작했던 것이다. 그동안 묻혀 있던 이 사건은 당시 학생과 주임(김황일)이 양심선언을 하면서 일파만파가 되어 국회로까지 비화했다.
10월13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는 용공조작 사건과 관련된 대학 관계자들의 증언과 녹취 자료가 공개되었다. 의원들은 일제히 김덕중 교육부장관에게 진상규명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김 전 이사장이 소속된 자민련 일부 의원만 빼고 의원들 모두가 그에 대한 검찰 수사를 요구했다. 앞서 이날 오전 진행된 상지대 관련 청문회에서도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김 장관이 사학 설립자를 ‘사학의 주인’이라고 언급했다가 노무현 의원의 날카로운 지적을 받고 ‘잘못된 발언’이라며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마침내 10월15일 처음으로 원주 상지대 교정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일종의 혁명 열기 같은 뜨거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학교 본부 건물에는 엄청나게 큰 걸개그림이 휘날리고 있었다. 바로 내 초상화였다. 어깨가 그만큼 무거워지는 듯했다. 10월25일 체육관을 가득 메운 채 진행된 취임식에서도 나는 희망과 변화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취임 일주일쯤 뒤 학생회장단이 총장실을 방문했다. 나는 총학생회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러 온 것으로 짐작하고 내심 긴장했다. 총학생회장과 두 명의 학생회 간부가 함께 왔는데 모두들 키도 크고 몸집도 건장했다. 그런데 총학생회장은 수줍은 듯 주저하면서 안주머니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내 건네줬다. 봉투에는 뜻밖에도 100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나는 순간 깜짝 놀라 물었다. “이게 무슨 돈이지요?” 그러자 총학생회장은, 지난 취임식 때 내가 말한 ‘동고심(同苦心)의 큰 배움’을 실천하자는 뜻에서, 학생회 간부들이 봉사장학금의 일부를 모아 더 어려운 학생들을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는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20년 넘게 가르쳤던 서울대에서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가슴 따뜻한 울림이었다. 순간 나는 총장 집무실 창문 너머로 우람한 치악산의 모습을 보며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관악산 밑에는 일류대학이 있으나 일류인간은 없는데, 치악산 밑에는 일류대학은 없으나 참으로 아름다운 일류인간이 있구나!”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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