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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21세기 북한 첫 신년사서 ‘햇볕’ 가능성 찾다 / 한완상

등록 2012-11-21 19:48수정 2012-11-21 22:36

2000년 1월1일 북한 당국은 신년사를 대신하는 공동사설을 통해 ‘강성대국 건설 총진격해’를 내걸었으나 대남·대미 비난은 자제함으로써 경제 교류협력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이래 신년사 대신 <로동신문>(사진) 등 기관지에 ‘공동사설’을 연재했다.
2000년 1월1일 북한 당국은 신년사를 대신하는 공동사설을 통해 ‘강성대국 건설 총진격해’를 내걸었으나 대남·대미 비난은 자제함으로써 경제 교류협력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이래 신년사 대신 <로동신문>(사진) 등 기관지에 ‘공동사설’을 연재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37
2000년 1월1일. 마침내 크로노스의 시간으로는 21세기 첫달 첫날이다. 오늘의 의미를 좀더 깊고 넓게 성찰하려면 카이로스의 시각에서 우리의 위치를 음미해야 한다. 나와 우리의 삶을 옥죄어온 두 가지 역사적 가위눌림, 바로 식민과 분단의 아픔이 지금도 옥죄고 있다. 21세기가 우리 민족에게 던져주는 역사적 의미는 이 가위눌림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카이로스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리라.

나는 21세기의 역사 명령으로 한반도에서 냉전종식운동이 활기차게 펼쳐져서 평화와 통일의 길이 마침내 훤하게 뚫리기를 기대하고 고대한다. 또 21세기 역사 호명이 정치민주화의 성숙, 경제민주화의 촉진, 사회민주화의 실천으로 이어지면서 명실공히 정치·경제·사회 선진국으로 우리가 발돋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올해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기를 갈구한다. 이른바 산업화세력을 의식해 지나치게 양보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마침 북한에서 신년사인 ‘공동사설’을 발표했다. 나는 북한의 권력 상층부도 21세기의 의미를 깊이 성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공동사설은 다소 실망스럽다. “당의 영도에 따라 강성대국 건설에서 결정적 전진을 이룩해 나가는 총진격해”로 2000년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 바로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3가지 중요한 기둥이 있다고 했다. 첫째가 사상이요, 둘째가 총대요, 셋째가 과학이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그동안 경제적 궁핍으로인한 ‘고난의 행군’에서 벗어나서 ‘구보 행군’으로 나아가자고 했다. 이것은 극단적 대결 자세에서 숨고르기 자세로 바꾸는 것 같기도 하다. 경제 건설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겠다는 의지로 이어지고 있다. “모든 부분에서 실리를 철저히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는 이미 1998년 9월 헌법 개정을 통해 부분적으로 허용했던 자본주의 시장경제 개념의 도입이 지속될 것임을 뜻하기도 한다. 이는 남북간 경제교류와 협력의 물꼬를 틀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올해는 노동당 창건 55돌의 해임을 강조하면서, 통일정책에서 ‘선결조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대미, 대일 비난도 자제하고 있어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는 신호로 풀이된다. 나는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북의 메시지에 주목해 김대중 정부가 냉정하고도 합리적으로 햇볕정책을 실천해내기를 바란다. 특히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려는 북한과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다.

1월25일. 올해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다. 그런데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지만 쌍방향 통신매체를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시민들이 날로 늘어나면서 정치 불신과 무관심에서 깨어나 적극적 정치 참여 쪽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마침 한 신문사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낙천운동과 낙선운동에 대해 시론을 청탁해왔기에 나는 이를 격려하는 글을 써주었다.

“시민혁명의 열기가 크게 번지고 있다. 이것이 평화적 국민혁명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4·19의 감격과 6월항쟁의 감동 못지않은 희열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도대체 왜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이 지금 일어날 수밖에 없는가.”

나는 긴 무관심의 잠에서 깨어난 국민들의 각성이 분노로 이어져 마침내 국가 사회에는 민주화를, 조국에는 평화와 번영을, 국민에게는 기본권 신장을 담보해내는 시민운동으로 성공하기를 기원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3월5일. 마침 내 생일인 오늘, 교황청의 참회 기사를 읽고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교황청은 ‘회상과 화해-교회의 과거 범죄’라는 문건을 발표했다. 3월12일 바티칸 미사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직접 전세계 앞에 지난날 가톨릭교회가 저질렀던 4가지 잘못과 범죄를 고해한다고 한다. ‘첫째, 1095년 교황 우르반의 칙령에 따른 십자군전쟁의 죄악, 1차 원정 때만 유대인과 회교도 7만명을 학살했던 범죄. 둘째, 중세 종교재판과 고문형, 마녀사냥식 징벌의 죄악. 셋째, 16세기 신대륙에서 자행한 멕시코 원주민 학살의 범죄. 넷째,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침묵했던 잘못’이 그것이다. 그간 서구제국들이 피비린내 나는 침략의 역사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해준 잘못을 교황이 공식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교황의 용기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한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개신교 지도자들은 무얼 하고 있나 생각하면서 나 자신 개신교 신자로서 새삼 부끄러웠다. 특히 서구제국주의 확장의 논리와 십자군식 전도운동의 깃발을 높이 들며 무리하게 독선적으로 선교활동을 밀어붙이고 있는 한국 개신교 근본주의 지도자들이 이번 교황의 고백과 회개에서 배울 수 있기를 나는 진심으로 기도한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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