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9일 독일을 국빈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자유대학에서 강연을 통해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약속하는 ‘베를린선언’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북한은 햇볕정책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바꿔 남북정상회담 논의에 적극 호응하기 시작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38
2000년 3월9일 김대중 대통령은 ‘베를린선언’을 발표했다. 독일을 국빈방문한 길에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독일 통일의 교훈과 한반도 문제’라는 제목으로 한 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대규모 경제지원을 제안했다.
디제이는 여기서 남북 당국자간 경제협력을 촉구했다. 당국자들이 직접 나서서 항만·철도 등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자고 했으며,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방지협정을 맺자고 제의했다. 북한 농업구조 개혁에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이처럼 구체적인 경제협력을 위해 남북 당국자들이 만나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 냉전종식과 더불어 평화정착에 대해 협의하고 협력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같은 인도주의 사업도 촉구했다. 이 모든 제안을 추진하기 위해, 특히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한 특사교환을 제의했다. 참 잘한 일이다.
그런데 3월15일 <평양방송>은 디제이의 베를린선언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염려했던 대로 북한 당국은 98년의 베이징 차관회담 결렬의 분노와 아쉬움을 아직도 씻어내지 못한 듯하다. 특히 베를린선언에 나오는 몇 가지 표현을 지적하며 ‘허튼소리’라고 폄하했다. 그러면서도 미묘하게 남북 당국자간 대화의 문을 닫지는 않았다. 남쪽이 실제 행동으로 긍정적 변화를 보인다면 민족의 운명 문제를 놓고 협상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정부가 북의 반응을 역지사지로 성찰한다면 남북 당국간 대화의 물꼬를 틀 수도 있을 것 같다.
북한은 아세안지역포럼(ARF)에 가입 신청을 했다. 이는 북한 외교의 개방 의지를 분명하게 표명한 것과 같다. 이미 지난해 9월 북한은 백남순 외무상의 유엔총회 참석을 기점으로 외교노선의 변화 조짐을 보여왔다. 올해 들어 북한은 이탈리아와 수교했다. 아세안지역포럼은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과 한국·미국·일본·중국·러시아 그리고 유럽연합의 의장국이 참여하는 포럼이다. 국가간 친목과 협력을 도모하고,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려는 다자간 지역안보협조기구다. 역내 정치와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기구다. 여기에 북한이 가입하는 것은 우리 정부로서는 반겨야 할 일이다. 북한은 5월 하순 일본과도 수교를 위한 대화를 재개하려는 것 같다. 이어 5월24일에는 로마에서 북-미 회담을 재개하려 한다.
그런데 야당에서는 김 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이 4월13일 총선을 겨냥했다며 ‘신북풍론’으로 몰아가고 있다. 정말 한심하고 부끄럽다. 허나 냉전의 찬바람은 결코 평화의 따뜻한 바람을 이길 수 없다. 꽃샘 찬바람같이 잠시 기승을 부리겠지만, 따뜻한 평화를 바라는 민족과 민중의 희망을 결코 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베를린선언 이후 국민의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추진 행보를 서두르고 있다. 3월17일에는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북의 송경호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남북 특사 자격으로 상하이에서 만났다. 이후 나흘 만에 디제이는 <와이티엔>(YTN) 회견을 통해 국민 다수가 희망한다면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3월22일 남북의 두 특사는 베이징에서 다시 만났다.
마침내 4월8일 남북 특사는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위한 남북합의서에 서명했다. 4월10일에는 정상회담이 6월12일 평양에서 열린다고 공식 발표했다. 분단 역사상 두 정상이 만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햇볕정책을 그토록 비판했던 북이 마침내 ‘봉남통미’의 정책에서 ‘통남통미’로 나아가는 정책변경을 한 셈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의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 낙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1972년 ‘7·4 공동성명’도 전형적인 이데올로기의 허구로 드러나 휴짓조각이 되지 않았던가. 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도 그 내용이나 뜻은 얼마나 훌륭했던가. 상대방을 주적으로 삼아 증오·능멸하지 않고 동반자로 본다는 인식의 전환은 곧 냉전해체와 평화통일도 성사될 듯한 부푼 꿈을 갖게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난 8년간 그 합의서는 남북의 냉전 대결을 조금도 해소하지 못했다.
다만, 나는 이번 정상회담은 지금까지 남북간 합의서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 유의하고 싶다. ‘7·4 공동성명’은 당시 박정희-김일성의 대리인들이 서명한 것이고, ‘남북기본합의서’는 총리들이 서명한 문건이다. 그러나 이번에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만나 합의문에 서명한다면, 그 역사적 상징성을 넘어 실효성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울 것이기 때문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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