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4월10일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은 박재규 통일부 장관과 함께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오는 6월12~14일 열기로 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남북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39
2000년 4월 들어 청와대는 6월13~15일 평양에서 열기로 한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기도 했는데 나도 초청을 받았다. 그때 대통령께서 나를 지목해 도움말을 청하기에, 나는 몇가지를 간단하게 정리해 말씀드렸다.
첫째, 북한의 최고 지도자와 성공적인 회담을 위해서는 대통령께서 항상 역지사지, 역지감지하시라고 했다. 상대방의 처지에 서서 상황을 머리로 판단하고, 가슴으로 공감하시라고 했다. 이러한 자세로 소통하게 되면 상대방도 머리와 함께 가슴도 열 것이라고 했다.
둘째, 상대방과 소통을 위해서는 어떤 사안이든지 정치적 관점에서 고려하기보다는 역사적 관점에서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정치적 고려는 목전의 이익을 주로 보게 되지만, 역사적 고려는 장기적으로 민족의 공동이익과 공동선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셋째, 세계적으로 분쟁이 처참하고 치열할수록 그 분쟁을 해결하는 지도자에게는 세계와 역사가 높은 평가와 명예를 안겨다 준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남아프리카, 중동 사태, 북아일랜드 등과 함께 남북한도 대표적인 분쟁지역으로서, 지금 냉전의 고도로 남아 있는 한반도는 언제든지 열전으로 악화될 수 있는 위험지역이 아닌가.
넷째,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로 남북 연락사무소가 설치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앞으로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어진다면 남북간 국가연합이 이뤄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본격적인 통일 과정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의 소통을 좀더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분단 이래 깊이 축적된 불신에 의한 긴장을 배제하려면 서울과 평양에 각기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4월12일에는 박태준 총리가 각계 원로들 20여명을 총리관저로 초청해 오찬 겸 자유로운 대화를 나눴다. 박재규 통일부 장관과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도 참석했다. 총리께서는 먼저 얼마 전 베이징에서 남북 특사 회담을 하고 온 박 장관에게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과정을 설명하도록 했다. 박 장관이 ‘비사’를 흥미 있게 설명해나갔다. 그런데 주무장관인 박 장관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기만 했다.
그래서 내 얘기 차례가 왔을 때 정상회담 성사 과정에 청와대 수석이나 주무인 통일부 장관이 직접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일말의 불편함을 표시했다. 그러자 박지원 장관은 정상회담에 대한 홍보업무는 문화부 소관이 아니라, 총리실에 정부 홍보를 맡은 부서가 따로 있다고 했다. 바로 그때 박 총리가 그다운 부드러움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바로잡아 나갔다. “총리가 된 지 얼마 안 돼 총리실 내 언론담당 관료가 누군지도 아직 모르고 있다. 내 불찰이다.” 그 덕분에 다시 의견들이 자연스럽게 교환되기 시작했다. 여하튼 나는 이번 정상회담이 디제이피(DJP)에서 디제이티(김대중·박태준 연합)로 옮겨진 상황에서 더 좋은 결실을 맺게 되기를 바랐다.
5월18일 한국대학총장협의회에서 금강산 관광을 추진하면서 나를 초청했다. 동해시에서 금강산으로 가는 금강호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남북관계의 전망과 통일대비 교육’을 주제로 선상토론회를 했다. 내가 먼저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의 전망’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최완규 경남대 교수가 통일교육에 대해 발제했다. 진지한 토론회였다. 발제를 마무리하며 나는 “이번 정상회담이 정례화되기를 바란다. 다음 정부도 그 길을 따를 수밖에 없는 그러한 평화의 길을 다지는 정상회담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나의 발제에 대해 상당수 회원들은 불편해하는 듯하다. 전·현직 대학 총장인 회원들은 대체로 북한에 대해 보수적 시각을 지닌 이들이다. 그러나 모두가 지성인이기에 첫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도 갖고 있었다. 협의회는 마침 경남대 총장 출신인 박 통일부 장관이 조직한 기구여서, 그의 배려로 회원들은 ‘꿈에 그리던 금강산’을 보게 된 것이다.
5월19일 아침 우리는 북한 장전항에 도착했다. 날은 흐렸으나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한눈에 들어왔다. 북녘 산하는 인간의 더러운 탐욕의 손에서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는 듯, 흐르는 냇물은 처녀수처럼 맑았다. 구룡폭포 올라가는 길에 북한의 환경보호원 여성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93년 봄 리인모 노인을 북의 가족 품으로 보낸 분’이라고 나를 소개하자, 그는 감사의 뜻으로 즉석에서 노래를 불러주었다. 리인모 노인을 칭송하는 노래였다. 그 여성은 헤어질 때 몹시 아쉬워했다. 우리는 세대도 다르고, 이념과 사고도 다르다. 서로 미워하며 분단의 반세기가 흘렀지만, 그것이 우리가 한 핏줄임을 상기시키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반세기 분단의 장벽, 마음의 장벽이 노래하고 박수치는 가운데 저절로 녹아내리는 듯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겨레 인기기사>
■ 새누리의 웃음 “여론조사 박근혜에 유리한 상황”
■ 42년 산 식물인간 딸 곁에서 엄마는 그렇게…
■ 박근혜 앗! 실수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
■ 최소 2500명 죽인 ‘드론’ 이제부터는…
■ ‘야수’는 미녀를 좋아해
■ 성향응? 성폭행? 성추문 검사사건 속살은…
■ [화보] 후보사퇴 안철수 ‘눈물’
한완상 전 부총리
■ 새누리의 웃음 “여론조사 박근혜에 유리한 상황”
■ 42년 산 식물인간 딸 곁에서 엄마는 그렇게…
■ 박근혜 앗! 실수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
■ 최소 2500명 죽인 ‘드론’ 이제부터는…
■ ‘야수’는 미녀를 좋아해
■ 성향응? 성폭행? 성추문 검사사건 속살은…
■ [화보] 후보사퇴 안철수 ‘눈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