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13~1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남북정상회담 합의 소식이 발표되면서 ‘햇볕정책’을 주창해온 필자는 어느때보다 분주해졌다. 사진은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와 과제’를 주제로 대담을 나눈 <통일시론> 여름호 표지(왼쪽)와 5월15일치 <한겨레> 창간 12돌 특집 대담(오른쪽)이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40
2000년 4월25일 <통일시론>(여름호)에서 나는 리영희 선생, 곽태환 통일연구원장, 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와 함께 ‘남북정상회담의 의의와 과제’를 두고 의미있는 토론을 했다.
여기서 나는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이 ‘한반도 탈냉전기획단’ 같은 기구의 구성에 합의할 것을 제안했다. 왜 이런 기구가 필요한가? 냉전체제의 해체 없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해체작업은 결코 간단치 않다. 국제적 차원에서, 남북 당국 간에, 남북의 각 체제 안에서 각각 풀어야 할 난제가 있다. 법 하나 고치거나 폐기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만약 이번 정상회담이 한반도 냉전 해체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된다면, 남북의 두 지도자가 나란히 노벨평화상을 받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출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온 민족의 광영이요 기쁨일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6월 정상회담이 가까워지면서 언론사나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있는 단체에서 강연이나 원고 부탁이 잦아지고 있다. 나는 이 기회를 적극 활용해 정상회담이 반드시 성공하기를 기원했고 성공할 수 있도록 촉구했다. 마침 5월15일 <한겨레> 창간 12돌을 맞아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서동만 교수와 함께 ‘냉전벨트를 깨자’는 주제로 나눈 대담에서도 이번 회담의 역사적 중요성을 역설했다.
서 교수는 북한 전문가로서 대학으로 초빙하고 싶은 젊은 학자다. 그는 한반도에서 냉전체제는 더이상 유지될 필요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북한은 세계적인 탈냉전의 흐름을 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경제적 고립의 역풍을 맞고 있고, 남한 역시 엄청난 냉전 유지 비용으로 낮은 복지와 노동생산성 저하를 감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제이 정부가 생산적 복지를 외칠 것만이 아니라 심각한 반성을 해야 할 대목이다. 그는 냉전의 지속은 결국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남북 모두에게 치명적인 전쟁을 부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북-미, 북-일 관계가 정상화되면 한반도 냉전벨트 역시 해체될 것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특히 군축을 포함한 평화체제의 구축 문제를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 교수는 상대방의 안보불안을 배려하면서 우리의 안보도 고려하는 ‘협력안보’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야만 공포의 균형으로 공포를 더 증가시키는 군비경쟁은 중단될 수 있다. 즉 강한 쪽에서 먼저 군축에 나서고, 교류협력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나와 서 교수는 그것이 바로 전향적 대북정책이요, 햇볕정책이 가장 적합하고 정당한 전향적 대북정책이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서 교수는 이어 남북정상회담까지 하면서 상대방을 반국가단체의 수괴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두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이 모순을 풀어가야 한다고 고언했다. 이는 바로 내가 말해온 ‘냉전의 탈제도화’ 가운데 첫 단계이기도 했다.
우리는 대담을 마치면서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주문을 한가지씩 했다. 서 교수는 정치·군사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야만 한반도가 분쟁의 근원지가 아니라 세계를 향한 평화의 발신지가 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번 회담을 통해 정상회담이 상례화된다면 남북은 국가연합 단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되고, 정권이 바뀌어도 남북이 함께 통일과 평화의 길로 계속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6월14일 김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한창 회담을 하고 있던 그날에도 나는 팍스코리아나21연구원이 주최한 개혁포럼에 초청받아 ‘남북정상회담의 전망’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나는 먼저 디제이 정부 초기 새로운 기대를 걸었다가 지난해 4월 베이징 비료회담의 결렬로 크게 실망했던 북한이 돌연 남북정상회담에 호응하게 된 변화의 사정을 나름대로 설명했다.
‘무엇보다 북한 경제의 3가지 난이 심각하다. 식량난, 에너지난, 사회간접시설의 낙후가 그러하다. 이런 어려움을 강성대국의 깃발 아래 극복하려고 노력해온 평양 당국은 사상강국·군사강국·경제강국의 3가지 목표를 내세웠다. 북한은 동유럽 공산권과 달리 사상적으로 강력한 군대가 남아 있었기에 쉽사리 붕괴하지 않았다고 자부하면서, 다만 경제대국의 목표는 총력을 기울
여 성취해야 할 과제로 보았다. 그래서 남북 경제협력의 길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전방위 외교 강화에 나서 이탈리아·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독일과 수교를 추진했다. 그런 와중에 디제이의 베를린선언에서 남북 경제협력의 단서와 신호를 확인한 것이다. 그간 고약한 위선적 흡수통일 전술로 폄하했던 햇볕정책을 평양 당국이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 정부의 영향력도 무시 못한다. 김 위원장은 중국 방문에서 경제협력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게 되었고, 남북 경제협력을 중국이 긍정적으로 권장했기에 더욱더 남북정상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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