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라산-백두산 교차관광’ 합의에 따라 필자는 9월22~28일 6박 7일간 110명의 남쪽 여행단에 합류해 북한을 처음 방문했다. 여행단의 자문위원장을 맡은 필자(오른쪽)와 단장인 김재기 관광협의회장(왼쪽 둘째), 조홍규 관광공사 사장(뒤쪽 가운데) 등 3명은 9월23일 백두산 정상에서 북쪽 민화협의 특별배려로 고무보트를 타고 천지를 둘러보기도 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43
2000년 8월15~18일, 사흘 내내 온나라가 울었다.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장면을 지켜보면서 나 역시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혈육이 살아 돌아온 기적에 대한 진한 감동이다. 지난 50년간 제사까지 지냈던 아버지가, 6·25 때 사라졌던 아들이 시퍼렇게 살아 나타났으니 감동의 눈물이 쏟아지지 않을 수 있으랴! 그것은 한의 눈물이었다. 지난 50년간 너무나 억울하게 고통당했던 한이 흘러내린 것이었다. 이 눈물의 깊은 의미를 우리가 제대로 깨달아야만 사람 냄새가 나는 인간적인 민족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지난달 5일부터 7박8일간 우리 언론사 사장단 50명이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새벽까지 건배를 하며 화끈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도하 신문에 자세히 소개되었다. 그동안 남쪽 언론에서 낙인찍었던 폐쇄체제의 독선적인 김 위원장의 이미지가 왜곡·과장된 것임을 알리는 보도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자유분방하고, 소탈하며, 소통이 원활하게 잘되는 지도자라는 인식이 새롭게 생겨났다.
9월초 백두산-한라산 교차관광 합의에 따라 한국관광협의회 중앙회에서 김재기 회장 명의로 백두산 관광 초청장이 왔다. 관광·학술·문화예술·체육 등 각 분야의 주요 인사 110명씩으로 구성된 남북 여행단이 9월22~28일 6박7일간 서로 오가는 일정이다. 나는 통일부 박재규 장관과 통화하면서 전 통일원 부총리로서 이번 여행에 참가하되, 자문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물론 전체 여행단이 모인 자리에서 추인되었다.
드디어 9월22일 오후 1시 우리 비행기는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일행 중에는 지인들도 적지 않았다. 통일부의 신상언 정보분석국장, 조홍규 한국관광공사 사장,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나춘호 출판문화협회장, 고 문익환 목사의 장남인 문호근 예술의전당 본부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백도웅 부총무, 김상현·정진석 의원, 최충욱 한국청소년개발원장, 지은희 여성단체협의회장, 김숙희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회장, 이돈명 변호사, 황태연 교수 등등이 함께 왔다.
순안공항에 내리니 백발의 허혁필 북측 민화협 준비위 부위원장이 우리 일행을 맞았다. 그는 자기 대신 우리를 도와줄 새 일꾼이라며 김영성 부위원장을 소개했다. 호남형의 50대 장년인 그는 평양을 떠난 비행기가 백두산 삼지연으로 날아가는 동안 내 옆에 앉아 햇볕정책과 6·15공동선언의 실현 가능성 등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어느덧 삼지연 비행장에 도착한 우리는 버스에 나눠타고 소백수 초대소로 향했다.
둘째 날인 9월23일 우리는 새벽 일찍 일어나 해 뜨기 전에 정상까지 오르고자 백두산으로 향했다. 이미 세 번이나 가보았던 중국 쪽에 비해 경사가 완만했다. 마침내 정상에서 일출을 보며 우리는 만세를 불렀다. 북한 당국은 우리에게 꼭대기에서 삭도를 타고 천지로 내려가도록 특별한 호의를 베풀었다. 천지에는 이미 아침상이 차려져 있었다. 연못에서 잡은 물고기로 끓인 어죽이 별미였다. 우리는 마치 강강술래 하듯 모두 손에 손을 잡고 노래를 불렀다. 물론 ‘우리의 소원은 통일’도 불렀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뭉클함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자유시간에는 안내원의 배려로 조홍규 관광공사 사장 등과 고무보트를 타고 천지를 둘러보는 기쁨도 얻었다. 금강산의 만물상같이 웅장하고도 정교한 봉우리들이 어울려 빚은 전경은 호수 주변에서는 볼 수 없는 비경이었다.
9월24일, 김일성 주석의 항일유적지와 보천보지구 등 백두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제 파출소의 구치장소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날 가벼운(?) 불상사가 두 가지 있었다. 한나라당의 정진석 의원 등 3명이 귀국 이후를 염려한 듯, 이틀 동안 김 주석의 유적지 등 관광 일정에 불참했다. 또 하나는 남경필 의원(한나라당)이 압록강변으로 내려가 난데없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친 것이다. 김영성 부위원장은 이 사실이 최고지도자에게 보고되면 우리 모두 추방당하거나 연금될 수도 있는 큰일 날 일이라고 했다. 나는 자문위원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사과를 표시했고 당사자인 남 의원에게도 유감을 표명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 바람에 40분 남짓 일정이 지체되자 나는 옆에 있는 문호근 본부장에게 “아버님이 옥중에서 바로 여기 개마고원과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지은 시 ‘꿈을 비는 마음’을 낭송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눈을 지그시 감고 시를 읊자, 북쪽 안내원들이 특히 감격스러워했다.
이튿날 아침 초대소에서 나는 남 의원에게 조용히 따지듯 물었다. 그는 별생각 없이 한 행동이라고 했다. 나는 젊은 정치인의 가벼움에 적잖이 실망했다.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도 좋을지 불안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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