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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김정일 위원장에 직접 편지…묘향산도 구경 / 한완상

등록 2012-12-02 19:56수정 2012-12-02 21:15

2000년 9월22일부터 6박7일간 ‘한라산-백두산 교차관광’에 나선 필자(왼쪽)를 비롯한 남쪽 여행단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요청한 끝에 백두산은 물론 평양과 묘향산 일대도 둘러봤다. 특히 팔순을 바라보던 이돈명(오른쪽·2011년 작고) 변호사는 묘향산 계곡에 발을 담그며 “생전에 또다시 올 수 있겠느냐”며 감격했다.
2000년 9월22일부터 6박7일간 ‘한라산-백두산 교차관광’에 나선 필자(왼쪽)를 비롯한 남쪽 여행단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직접 요청한 끝에 백두산은 물론 평양과 묘향산 일대도 둘러봤다. 특히 팔순을 바라보던 이돈명(오른쪽·2011년 작고) 변호사는 묘향산 계곡에 발을 담그며 “생전에 또다시 올 수 있겠느냐”며 감격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44
2000년 9월22일 ‘백두산-한라산 교차관광 합의’에 따라 남쪽 여행단 110명의 자문위원장으로 동행한 나는 백두산 도착 이후 여러차례 김영성 북측 민화협 준비위 부위원장에게 평양과 묘향산도 들러 갈 수 있게 해줄 것을 요청했다. 특히 팔순에 가까운 이돈명 변호사를 비롯한 원로들은 ‘언제 다시 오겠느냐’며 당부를 해왔다. 김 부위원장은 나의 간곡한 부탁이 계속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께 우리 일행이 평양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을 글로 써달라고 했다. 나는 고민 끝에 모두의 바람을 담아 글을 완성했다. ‘6·15 남북공동성명으로 백두산 관광을 하게 된 남쪽 관광단원들이 남북 교류협력의 물꼬가 터져 마침내 한반도의 평화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하면서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보는 기쁨이 역사적인 도시 평양을 보는 기쁨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는 내용이었다. 25일쯤 편지가 무사히 전달된 듯했고 이윽고 김 위원장이 우리 일행의 평양과 묘향산행을 허락했다는 ‘낭보’가 우리쪽 대표인 김재기 관광협의회 중앙회장에게 전해졌다. 그는 무척 놀라는 듯했다.

이로써 백두산 일대만 둘러보고 삼지연 공항에서 돌아올 예정이었던 남쪽 여행단의 교차관광은 평양과 묘향산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즐거운 불편함’도 없지 않았다. 우리 일행 중에는 해방 직후나 6·25 때 남쪽으로 넘어온 실향민도 일부 있어서 버스가 달릴 때면 창밖 멀리 고향 쪽을 가리키며 남다른 감회에 젖곤 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누군가가 그 고향에 두고 온 토지 수만평을 찾을 수 있을까, 아쉬워하는 말을 했다. 버스에는 북쪽 안내일꾼이 서너명씩 동승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김일성대학을 나온 우수한 젊은 엘리트들로, 실향민 일행의 얘기를 듣고는 얼굴이 언뜻 분노로 붉어지는 듯했다. 나는 순간 부끄러웠다. 애써 참느라 주먹을 꼭 쥐는 한 젊은이의 손에 내 손을 얹고 개의치 말라는 뜻으로 다독거려주기도 했다. 앞으로 남북 사이에 갖가지 교류와 협력이 평화롭게 이뤄지려면 정말 남북 인사들 모두 성숙하게 역지사지의 이해력을 길러야겠다. 서로의 차이를 관용으로 대하는 수련도 해야 할 것 같다.

백두산 일대를 관광할 때는 간혹 주민들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삼삼오오 도보로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국회의원 출신인 조홍규 관광공사 사장이 버스 창문을 확 열고는 주민들을 향해 “기호 1번 조아무개!”라고 소리를 크게 질렀다. 우리 일행이야 그의 익살에 모두 웃었지만, 북쪽 안내일꾼들은 몹시 당황스러워했다. 북녘 주민들을 놀리는 짓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남쪽 국회의원들은 투표할 때 자기 기호를 기억해달라는 뜻으로 종종 그렇게 소리를 질러 선거 홍보를 한다고 설명해줬다. 조 사장은 재치있고 농담을 잘하는 분이라, 나중에 통일이 되면 좋은 뜻에서 이곳에 와서 출마하겠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 진심을 북녘 인사들은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하튼 남쪽 여행단은 6박7일간 3가지 소중한 빛을 보았다. 관광이란 문자 그대로 ‘빛을 본다’는 뜻이다. 그저 자연경관이나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이 아니다. 첫째로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의 웅장함 속에 또다른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둘째로 평양의 옛 모습과 새 모습, 단군릉, 묘향산의 향기 등을 맡고 그 빛을 보았다. 허나 가장 소중한 세번째 관광은 북한 주민들의 마음의 빛, 즉 같은 민족으로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따뜻한 마음을 본 것이다. 그러니 평화의 빛을 본 셈이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이 비로소 햇볕을 보게 되는 듯해서 기뻤다. 감개무량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이제 북쪽에서 한라산을 보러 제주도로 찾아오는 일이 남았다. 그들도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보고 서울에 와서 자연과 유적의 빛을 함께 보게 되길 바랐다. 무엇보다 그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남녘 동포들의 따뜻한 마음의 빛도 함께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는 9월28일 서울로 돌아왔다. 꿈같은 민족여행, 평화여행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북쪽 여행단의 한라단 교차관광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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