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9~14일 ‘북한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 남쪽 참관단으로 두번째 평양을 방문한 필자는 단장으로서 갖가지 돌발사태를 겪으며 노심초사했다. 특히 10월13일 평양에서 55년 만에 이뤄진 백기완(왼쪽)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누님 상봉에는 밝힐 수 없었던 곡절이 많았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46
2000년 10월9~14일 ‘조선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에 초청받은 남쪽 참관단의 대표를 맡은 나는 5박6일간 평양에서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때 방북기는 시사월간지 <신동아>의 그해 11월호에 실리기도 했다. 동아일보사 신동아부의 이아무개 기자가 평양에서 돌아온 당일인 10월14일 원주 상지대까지 나를 찾아와 인터뷰한 것이어서 비교적 내용이 생생했다.
그런데 ‘신동아’의 기자는 대뜸 ‘북한이 남한 내부를 교란시키려는 통일전선전략 차원에서 이번 참관단을 이용하지 않았느냐’며 처음부터 공격적인 질문을 했다.
“전혀 그러지 않았습니다. 남북 정상의 6·15 공동선언을 계기로 북한은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최고 지도부의 결정이 인민들에게 일사불란하게 미치는 곳이지만, 다원체제인 남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이 이런 남한의 사정까지 배려하는 것은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참관 내내 6·15 남북공동선언을 반드시 이행하겠다는 북한 당국의 의지를 확인했습니다.”
나는 북쪽 민화협에서 이번 초청에 앞서 ‘참관이 당국 대 비당국 간의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을 우리 정부에 밝힌 점, 실제로 참관단에게 ‘정치적인 행사’로 지적될 만한 일정은 전혀 권하지 않아 만경대조차 가지 않았다는 점 등을 강조하며 이렇게 답했다.
남북정상회담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북한의 실상은 곳곳에서 엿보였다. 10월10일 인민문화궁전의 세 곳에서 노동당 창건 55돌 축하 만찬이 열렸는데 우리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주관한 메인홀에 참석했다. 김 상임위원장을 비롯해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인민군 참모장 김영춘 차수, 김용순 노동당 비서 등이 주석에 앉았는데, 김 위원장과 김 비서는 “참배는 말고 참관만 하시라”며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남으로 돌아간 뒤에 곤란한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참관단 대부분이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장수들로서 누구보다 신념과 개성이 강한 분들이어서 나는 다소 염려스러웠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김일성 주석의 주검을 안치한 금수산기념궁전에 가자고도 했지만 나는 이번에 우리가 참배를 하게 되면 남북 당국 모두가 곤란해진다는 점을 상기시켜 만류했다.
이번 기념행사는 크게 3가지였다. 창건일인 10월10일에는 김일성광장에서 군인과 학생이 열병식과 행진을 했고 대규모 군중 행사도 있었는데 미사일이나 탱크 같은 무기는 등장하지 않았다. 10월11일 예정이었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다음날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횃불행진도 장관이었다. 13일 오후에는 최대 15만명까지 수용한다는 능라도의 5·1경기장에서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봤는데 대형 카드섹션이 압권이었다. 전체 4장으로 구성된 공연 중 3장에서는 ‘6·15 공동선언’을 상징하는 행군도 있었다.
앞서 10월13일 오전 나는 백기완 선생의 누님 상봉으로 일행과 헤어져 분주했다. 백 선생은 평양 도착 이래 내내 황해도 은율 고향에 있는 누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단장으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수고라 생각하고 나는 여러번 그 뜻을 북쪽 대표에게 전했다. 그런데 북쪽에서는 지금 노동당 창건 기념행사로 온 나라의 행정력이 평양에 집중돼 있어서, 지역에 가서 사사롭게 특정인을 찾아올 겨를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렇게 진척이 없자 백 선생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혹여 불상사라도 터질까봐 불안불안했다. 11일이던가, 새벽 1시쯤 누군가 깨워 숙소 밖으로 나가니 국가보위부 요원들로 짐작되는 이들이 왔다. ‘내일 인민들이 백 선생에게 돌을 던질 수도 있다’며 단장이 책임지고 백 선생을 자제시키라고 위협했다. 나는 화가 치밀어 항의했다. “지금이라도 그의 누님과 상봉하게 해주시오. 잘못되면 내가 아니라 그를 특별히 초청한 평양 당국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10월12일에는 때마침 미국을 방문중인 북한 인민군 조명록 차수가 북-미 공동코뮈니케를 발표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 방문도 포함된 세계적인 뉴스이자 희소식이었다. 그래서 내 요청으로 김영성 부위원장이 초대소에 도착하자마자 참관단에게 공동코뮈니케의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끈 내용은 북-미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했다는 점이었다. 북의 미사일 발사 계획 유보 등 획기적인 대미정책 전환도 놀라웠다. 그런데 그 순간 뒤늦게 들어온 백 선생이 ‘배가 고프니 밥 먼저 먹고 듣자’고 외쳤다. 당황을 넘어 화가 난 김 부위원장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계속 낭독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 소동 끝에 10월13일 마침내 그의 누님이 평양에 도착했다. 오전 10시께 시내의 단고기 식당에서 55년 만에 재회한 백 선생과 칠순이 넘은 누님(백인숙)은 서로 껴안고 어린아이들처럼 엉엉 울었다. 감격에 겨워 함께 눈물을 흘리고 서 있던 나는 백 선생이 “한 박사, 좀 나가주세요”라고 할 때에야 깜짝 놀라 급히 방에서 나왔다. 그 뒤부터 백 선생은 순하디순한 어린 양처럼 차분해졌다.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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