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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길을 찾아서] 탈레반과 인질석방 협상, 적십자사가 큰힘 / 한완상

등록 2012-12-26 19:36

2007년 7월19일 아프가니스탄으로 단기선교 봉사를 간 분당 샘물교회 신자 23명이 탈레반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터지자, 필자는 대한적십자사 총재로서 국제적십자위원회를 통해 우리 정부와 탈레반 간의 직접협상을 주선했다. 사진은 42일 만인 8월30일 마지막 7명이 풀려나는 모습이다.
2007년 7월19일 아프가니스탄으로 단기선교 봉사를 간 분당 샘물교회 신자 23명이 탈레반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터지자, 필자는 대한적십자사 총재로서 국제적십자위원회를 통해 우리 정부와 탈레반 간의 직접협상을 주선했다. 사진은 42일 만인 8월30일 마지막 7명이 풀려나는 모습이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62
2007년 7월19일 한국의 분당 샘물교회 단기선교봉사단 23명(남자 7명, 여자 16명)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170㎞ 거리인 가즈니주 카라바그 지역을 통과하다 탈레반에 의해 납치되는 돌발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정부와 온 국민은 물론 전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애초 노무현 정부는 유엔을 통해 탈레반과 협상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테러리스트와는 절대로 협상하지 않는다는 부시 미국 행정부의 강경 방침을 한국인인 반기문 사무총장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아프가니스탄 정부 역시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보이지 않아 우리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요구한 탈레반 수감자 석방이 이뤄지지 않자 납치세력은 7월25일 봉사단을 이끈 배형규 목사를 살해한 데 이어 닷새 뒤에는 인질 1명(심성민)을 죽여 그 주검을 공개했다.

대한적십자사 총재로서 나는 정부와 별도로 구조활동에 나섰다. 사건 당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긴급 편지를 보내 인질들의 조속한 석방과 그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라고 요청했다. 7월30일 위원회는 총재 이름으로 한국 인질 석방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87년 이래 중동 전역에서 산하 1170명의 직원이 인도주의적 위기관리를 위한 중립적 촉매자로서 활약하고 있어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국제기구였다. 유엔 중재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나는 청와대 안보실장인 유희인 장군(공군)에게 위원회가 중재역을 할 수 있음을 알렸다.

8월5일 일요일 오후 3시 무렵 김만복 국정원장이 전화로 도움을 청했다. 위원회를 통해 우리 정부와 탈레반 사이의 직접협상 장소를 제공해줄 수 있는지, 탈레반에서 위원회에 우리 제안의 진의 여부를 확인할 때 적십자사가 접촉선을 연결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즉시 국제협력팀으로 하여금 아프간 현지의 적십자위원회 직원인 브루스와 소통하도록 지시했다. 캐나다 출신인 브루스는 언론에 절대로 누출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와 함께 위원회와 탈레반 간의 접촉선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전해왔다. 나는 카불 소재 국제적십자위원회 대표단장인 레토 스토커에게 우리 정부와 탈레반의 직접협상을 위한 중립적 장소를 제공해줄 수 있는지 문의했다. 이날 저녁 7시45분 스토커한테서 회신이 왔다. 위원회, 한국 정부, 탈레반 3자가 참여하는 조건에서 대화 장소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또 탈레반과의 접촉 결과와 내용을 카불 주재 한국대사관에 지속적으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었다.

드디어 8월11일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우리 정부와 탈레반의 직접대면협상 사실을 세계 언론에 공개했다. 가즈니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적신월사 지사 건물을 중립적 장소로 제공한 위원회는 양쪽의 협상이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 본협상에 앞서 관련 당사자들은 신변 보장에 사전 합의했다. 특히 인질들이 한국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할 수 있도록 우리 적십자사의 편지를 탈레반 쪽에서 수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8월13일 스토커는 대면협상의 진전에 따라 우선 여성 인질 2명이 석방된다고 알려왔다. 나는 즉시 제네바의 적십자위원회 본부와 스토커, 그리고 그의 동료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드디어 8월28일 협상이 타결됐다. 아프간 파견 한국군의 연내 철수와 이후 개신교 선교단 파견을 중지한다는 등 5개항의 합의를 조건으로 19명의 인질 전원 석방 결정이 공표됐다. 8월29일 3차에 걸쳐 12명이 풀려난 데 이어 8월30일 남은 7명도 두 그룹으로 나뉘어 모두 살아 돌아왔다.

이처럼 협상이 극적으로 성공하기까지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인도주의적 중재 결단이 가장 결정적인 힘이 됐다. 또 용기있게 직접 대화에 나서 자국민의 생명을 지켜낸 노무현 정부의 노력도 대단했다.

한완상 전 부총리
한완상 전 부총리
다만, 2명의 희생은 가슴 아픈 일이다. 이런 비극은 일부 대형교회의 무모하고 잘못된 선교정책, 또는 확장주의적 선교 경쟁에서 나온 것인 만큼 교회 스스로 철저하고 그리고 처절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 기회에 제국주의 확장에 편승해 제3세계로 뻗어갔던 구미 기독교 복음화 운동의 껍데기만을 모방하려는 한국 교회 전반의 선교 열풍을 이제는 차분히 참회해봐야 한다. 선교는 자기를 비우고, 탐욕을 내리고, 독선을 초극하면서 남에게 평화와 공의를 나눠주고 함께 키워가는 거룩한 일이다. 기독교가 아닌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전도 행위가 결코 아니어야 함을 교회 지도자들부터 깨달아야 한다.

생명은 이데올로기나 체제나 종교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아닌가. 언론에서는 우리 적십자사의 숨은 수고와 헌신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고 우리도 알리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그 알려지지 않음이 인도주의가 갖는 힘이라고 믿는다. 병든 세계와 사회를 조용하면서도 착실하게 치유하는 ‘사회의사’의 삶을 따르고자 애써온 내 삶이 오늘만큼은 스스로도 뿌듯하다. 그러나 평화를 향해 가는 순례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구나. <끝>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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