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애 토요판팀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토요판팀에서 전공 없이 이 분야 찔금, 저 분야 찔금 기사를 써왔던 이정애 기자라고 합니다. 꾸벅. 그간 이 코너의 담당자로 선후배·동료 기자들에게 ‘친절하게’ 기사를 써달라고 ‘불친절하게’ 부탁하던 제가 오늘 이렇게 데뷔를 하자니 무척 떨리네요. 흠흠, 잘 부탁드린다는 차원에서 다시 한번 정중히 ‘배꼽 인사’ 올립니다, 꾸~벅.
오늘은 39일 앞으로 다가온 4·24 재보궐선거, 그중에서도 서울 노원병 지역 얘길 해볼까 해요.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출마 선언 이후 세간의 관심은 온통 향후 정계 개편 방향에 쏠려 있는 듯해요. 그 전까지만 해도 이곳 선거의 핵심 이슈는 재보궐선거를 하게 만든 ‘삼성 엑스파일 판결’에 대해 유권자들이 어떤 심판을 내릴 것이냐였죠. 진보정의당은 의원직을 잃은 노회찬 전 의원(대표)을 대신해 선거에 나설 경쟁력 있는 인물로 김지선 후보를 전략공천했습니다. 낯선 이름의 정치 신인이 바로 노회찬 대표의 ‘부인’이란 점을 두고 논란이 촉발됐어요. 억울한 심정이야 이해하지만 ‘왜 하필 부인이냐’ ‘지역구를 세습하려는 거냐’는 거죠.
사실 남편의 지역구에 부인이 대리 출마하는 일은 많진 않아도 선거 때마다 꾸준히 있었어요. 한 새누리당 관계자의 말마따나 “동정심만큼 수치로 계량화하기 힘든 무기가 없어서”죠. 대를 이은 정치 가문이 많은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선 지역구 세습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사실이에요. 특히나 남편을 대신해 부인이 당선된 사례는 매우 드물답니다. 남편의 지역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된 사람은 고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부인 인재근 의원(서울 도봉갑)과 고 심규섭 전 의원(경기 안성)의 부인 김선미 전 의원, 박철언 전 의원(대구 수성갑)의 부인 현경자 전 의원 등 3명뿐이에요. 사회활동 경력이 풍부한 인재근 의원과 김선미 전 의원의 경우,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지역구에서 당선한 사례입니다. 현경자 전 의원은 남편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투옥된 뒤,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대리 출마’한 경우였고요. 그는 2년 뒤 치러진 15대 총선 때 남편에게 지역구를 ‘반환’했었죠.
남편의 ‘명예회복’을 명분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 부인들은 또 있어요. 박성범 전 의원(서울 중구)이 한나라당의 공천에서 탈락한 뒤 ‘계파 나눠먹기의 산물’이라고 비난하며 자유선진당 후보로 출마했던 신은경 전 한국방송 아나운서가 대표적이죠. 전업주부였던 조은희씨는 이신행 전 의원(서울 구로을)이 ‘여당 입당 제의를 거절하다 감옥에 갔다’며 출마했고요. 아시다시피 두 사람은 모두 ‘설욕’에 실패했답니다. 민주당의 한 의원 얘기처럼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관대한 유권자들이 일단 ‘아웃’된 이들의 명예회복에는 별 관심이 없는 탓”인 모양이에요. 만약 부산 쪽 출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구·경북(TK)을 홀대했다’는 지역정서가 없었다면, 현경자 전 의원의 당선도 어려웠을 거란 말도 있어요.
남편이 살아 있는데다 남편의 명예회복이 선거 결과에 달려 있다는 점만 보면, 김지선 후보도 ‘대리 출마’의 범주에 속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노회찬 대표가 저의 삶을 대신 살 수 없는 것처럼, 저 역시 노회찬 대표의 대리인으로 이번 선거에 출마할 생각은 없다”는 김지선 후보는 좀 억울하겠다 싶은 구석이 있습니다. 그가 단순히 ‘정치인의 안사람’이 아니라 지난 40년 동안 노동·여성인권·지역공동체 운동을 하는 ‘활동가’로 살아왔기 때문이죠. 최근 트위터 등에서 회자되는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의 2002년 칼럼은 김지선 후보가 오히려 ‘노회찬 대표보다 먼저 유명했던, 1970~80년대 노동운동의 산증인’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진보정의당 안에서 “(비슷한 경력의) 인재근 후보가 출마했을 땐 별말 없다가 왜 다른 잣대를 가져다 대느냐”고 항변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죠.
다만 ‘진보의 도덕적 감수성으로 어떻게 지역구를 세습하냐’는 불필요한 비판을 촉발하는 그 선택밖에 없었는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자, 이 대목에서 따져볼 건 진보정의당에서도 강조한 ‘경쟁력’입니다. 우리네 유권자들이 좋은 직업과 학벌을 가진 명망가를 선호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과연 ‘노회찬 부인’이라는 수식이 먼저 붙을 수밖에 없는 정치 신인에게 유권자들이 기꺼이 표를 내줄 수 있겠느냐는 거죠. “세습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서도 선거를 이끌고 나갈 만한 인재가 그렇게 없느냐”는 또다른 진보 정당 관계자의 말은 정당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도 해요. 뭐,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노원병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릴 수밖에요.
<한겨레 인기기사>
■ 파출소장 딸 성폭행살인 사건, 만화방주인이 붙잡혔지만…
■ 지역안배는? 윤창중, 채동욱 검찰총장 후보 선산이 군산이라며…
■ [단독] 법원, 성전환자 성기수술 안해도 성별 전환 첫 허가
■ 봄, ‘음란한’ 대학가…소개팅 실습도 있다고?
■ 남편과 딸은 서로 좋아 죽는데 나는 미워 죽겠어
■ 파출소장 딸 성폭행살인 사건, 만화방주인이 붙잡혔지만…
■ 지역안배는? 윤창중, 채동욱 검찰총장 후보 선산이 군산이라며…
■ [단독] 법원, 성전환자 성기수술 안해도 성별 전환 첫 허가
■ 봄, ‘음란한’ 대학가…소개팅 실습도 있다고?
■ 남편과 딸은 서로 좋아 죽는데 나는 미워 죽겠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