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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새누리당은 품격을 저버렸는가

등록 2013-10-11 19:41수정 2013-10-11 21:45

10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경환(왼쪽) 원내대표는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 등을 ‘노동신문’에 비유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10일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경환(왼쪽) 원내대표는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 등을 ‘노동신문’에 비유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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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누리당에서 나오는 말이 참으로 거칠다. 정치가 본래 말로 이뤄지니 정치집단끼리 대립하다 보면 점점 발언 강도가 세지는 것은 흔한 일이긴 하다. 싸우기는 잘하나 유머는 부족한 한국 정치판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하다.

하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의 최근 언사는 그악스러울 정도로 독하다. 지난 8일 있었던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의 국회 대표연설에 대해 “적개심과 왜곡, 국론분열을 조장하는 운동권의 찌라시 같은 내용”(김태흠 원내대변인), “품격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증권가 찌라시 수준”(홍지만 원내대변인)이라고 표현했다. 이들 외에도 강은희 원내대변인과 민현주 당 대변인도 나서 전 원내대표의 연설을 비판했다. 한 사안에 대해 대변인 4명이 연거푸 논평하는 것도 드물지만, 상대방 교섭단체의 대표연설을 찌라시(광고 전단지)라고 규정한 것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당의 입인 대변인들만 표독한 게 아니다. 소속 의원 153명을 지휘하는 최경환 원내대표도 막말 대열에 가담했다. 최 원내대표는 전 원내대표의 연설과 “제2의 부마항쟁”을 언급한 천호선 정의당 대표를 싸잡아 “얼마 전 북한 노동신문이 현 집권세력을 유신독재의 후예라고 모독하며 ‘민주주의를 억누르는 파쇼적 폭압의 칼’이라고 했던 막말을 반복해서 듣는 듯했다”(10일 최고위원회의)고 말했다. 국회 운영위원장을 겸한 여당 원내대표가 대화 상대방의 국회 연설을 색깔론까지 꺼내 짓뭉갠 것도 전례가 없다.

민주당 대표연설이 정말로 ‘찌라시’ ‘노동신문’ 수준인가? 연설문을 다시 살펴봤다. “‘불통·불신·불안, 위기의 8개월’ 전면적 국정쇄신을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처럼 연설은 대부분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박근혜 정부 8개월은 ‘8대 불안’과 ‘8대 기만’으로 얼룩졌다”고 규정하면서 민주주의 불안, 인사 불안, 경제무능과 혼선 등(8대 불안)과 경제민주화 포기, 기초연금 약속 파기 등(8대 기만)을 꼽았다. 또 민주주의와 민생의 후퇴, 남북평화의 위기 등을 들어 “노태우와 전두환 군사독재 시대를 거쳐 막걸리 유신시대로까지 되돌아갔다”고 공격했다.

‘8대 불안’과 ‘8대 기만’이라는 규정은 정치적 용어인 만큼 어차피 자의적이다. 막걸리 유신시대로의 복귀라는 말도 과장됐다. 그러나 이 정도 표현이나 주장을 놓고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찌라시, 노동신문 복사판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국회 품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다. 이름 밝히길 거부한 새누리당의 한 중진의원조차 기자와의 대화에서 “우리가 야당 때는 더 심하게 정부를 비판했다. 야당이 그 정도 독설을 하는 것은 다반사인데 왜 갑자기 경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막가파식 말은 야당뿐 아니라 때로는 자기편에게도 날아간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홍원 국무총리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금 수정안 문제로 장관직을 사퇴했을 때는 “못된 행동, 못된 양반”(김태흠 원내대변인), “출당시켜야 한다”(이름 밝히길 거부한 의원) 등의 거친 말이 쏟아졌다. 같은 당 사람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여기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관련돼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 원내대표의 연설이나 천 대표의 발언은 모두 박 대통령에 대한 강한 비판 그 자체였다. 또 진 전 장관의 사퇴는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파기 논란과 불통 문제 등 아픈 곳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박 대통령 보호를 위해 여당이 총대를 멘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최전선에서 말폭탄을 던진 사람들은 모두 친박이다.

여당이 대통령과 정부를 옹호하고 뒷받침하는 것은 책임정치 차원에서 당연하다. 그러나 대통령 비판이 나올 때마다 여당이 앞장서 상대를 무지막지하게 공격하는 것은 ‘호위무사’는 몰라도 대화와 타협을 주도할 정당이 할 일이 아니다. 집권 여당일수록 말싸움을 하더라도 논리가 있어야 하며, 최소한의 금도를 지켜야 한다. ‘정치’를 잘 이끌 책임이 야당보다도 여당에 훨씬 더 있기 때문이다.

김종철 정치부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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