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한ㆍ말레이시아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나집 말레이시아 총리를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건 작성·유출 진실공방 격화
청, 박지만 측근 전아무개씨도 지목
조응천쪽 “별도 모임 없었다”
3인방 집중 견제 부각
청, 박지만 측근 전아무개씨도 지목
조응천쪽 “별도 모임 없었다”
3인방 집중 견제 부각
청와대가 ‘정윤회씨 국정개입’ 보고서 작성과 유출 책임자로 이른바 ‘조응천 그룹’을 지목하고,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조작된 시나리오”라며 반박하고 나서면서 문건 작성 배경과 사후 책임을 둘러싼 양쪽의 진실공방도 한층 거세지는 형국으로 흘러가고 있다.
양쪽의 주장을 종합하면 ‘정윤회-3인방’ 대 ‘박지만-조응천’이라는 대략의 구도가 그려진다. 다만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작성한 문건에 언급된 정윤회씨와 청와대 3인방을 포함한 ‘십상시’ 모임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하고, 또 청와대가 최근 진행한 특별감찰을 통해 파악됐다는 이른바 ‘조응천 그룹’도 구체적인 실체가 확인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청와대는 조 전 비서관이 ‘불순한 의도’로 사실이 아닌 내용을 담은 문건을 작성한 뒤 이를 외부에 유출해 청와대 참모들을 흔들려고 했다고 보지만, 조 전 비서관 쪽은 ‘정윤회씨 국정개입’ 보고서가 제출된 뒤로 청와대에서 자신들에 대한 ‘찍어내기’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박지만-조응천’ 라인 존재하나?
청와대는 지난 1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윤회씨 국정개입’ 문건과 관련해 “근거 없는 일로 나라를 흔든다”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고 검찰 수사를 촉구한 이후, 지난 4월부터 진행됐던 특별감찰과는 별도의 감찰을 진행했다. 청와대 참모들 입장에선 박지만 이지(EG) 회장이 관련돼 있더라도 강경한 대응을 하라는 일종의 명확한 ‘지침’을 받은 셈이다. 이후 청와대는 이번 감찰을 통해 이른바 ‘조응천 그룹’이 문건 유출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이런 내용을 검찰에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감찰 결과 ‘조응천 그룹’으로 지목된 이들은 조 전 비서관과 문서 작성자인 박관천 경정 외에 오아무개, 최아무개 전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과 박지만 회장 측근 전아무개씨, 검찰의 박아무개 수사관, 전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 고아무개씨 등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박 경정 외에는 이들에 대한 수사 의뢰를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쪽은 “청와대 감찰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한 바는 없다”고 밝혔다.
주목되는 부분은 이번 청와대 감찰에서 박지만 회장 측근인 전아무개씨를 지목했다는 점이다. 박 회장과 조 전 비서관의 친분관계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청와대가 이번에 전씨를 언급한 것은 그를 박 회장과 조 전 회장 사이의 일종의 연결책으로 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주 일부 언론에서 박 회장이 국가정보원 직원에게 ‘자신을 음해하는 청와대 내부 보고서가 유출됐다’며 조사를 부탁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당시 박 회장이 부탁했다는 국정원 관련자가 이번에 청와대가 지목한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인 고아무개씨인 것으로 여겨진다. 또다른 등장인물인 검찰 수사관 박아무개씨는 조 전 비서관이 검찰에 있을 때 함께 일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조응천 그룹’으로 지목받은 이들은 이번 문건 사건과 관련해 별도의 모임이나 논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일부는 서로의 친분관계 자체도 부정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박아무개 수사관은 과거 (내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가면서 같이 일하자고 제의했다가 승진 문제 등으로 시기가 안 맞아 무산된 뒤 연락을 한 적이 없다. 국정원 간부였던 고아무개씨도 존안자료 담당책임자로 일하고 있어 인사검증 때 수시로 연락했던 사이였을 뿐 다른 관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 측근인 전아무개씨 역시 과거 대선 때 조 전 비서관이 친인척 관리 담당이어서 알고 지내는 사이일 뿐이라는 게 조 전 비서관의 주장이다.
■ 청와대의 ‘찍어내기’ 있었나?
조 전 비서관 쪽은 ‘정윤회씨 국정개입’ 문건이 통상적인 업무 프로세스를 통해 작성됐는데도, 보고서 제출 이후 이른바 ‘청와대 3인방’으로부터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고, 지난 3월 초 <세계일보>가 공직기강비서관실 내부 문건 내용을 보도한 것을 계기로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10명의 행정관이 모두 쫓겨났고, 국정원 간부였던 고아무개씨도 조 전 비서관과 가깝다는 이유로 옷을 벗었다는 게 조 비서관 쪽 주장이다. ‘조응천 그룹’으로 분류된 오아무개 전 민정수석실 행정관은 조 전 비서관이 청와대를 떠난 뒤인 지난 6월 초 문건 유출 관련 보고서와 유출된 문서 사본을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전달했던 인물이다. 그는 당시 ‘문건 유출 관련 보고서’에 있는 일부 내용의 출처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기발령을 받은 뒤 다른 수석실로 자리를 옮겼다가, 이번 문건 사건이 터진 뒤 사직서를 냈다. 청와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사정기관 고위 관계자는 “공직기강비서관실 문서 유출이 확인된 뒤 그 사건으로 (6월에) 10여명의 행정관들이 대거 바뀌었는데, 당시 청와대 핵심 참모들이 ‘민정은 티케이(TK·대구경북)로 해야 한다’고 해서 거의 대부분의 행정관들이 티케이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행정관뿐 아니라 당시 문건 유출 사태 뒤 김영한 민정수석은 물론 우병우 민정비서관, 권오창 공직기강비서관, 김종필 법무비서관 등 민정수석실 내 주요 보직 역시 모두 티케이로 채워졌다.
청와대가 이런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한 배경에는 박 회장을 비롯해 조 전 비서관 등이 ‘실체가 없는’ 정윤회씨와 3인방을 지렛대로 청와대 내부를 흔들려 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회장을 직접 겨냥하진 못하지만 그와 친분이 있는 이들을 철저히 잘라내는 방식으로 이른바 ‘엄격한 친인척 관리’를 하겠다는 방침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문서 작성 및 유출 파동을 보면, 청와대가 이런 강경한 ‘찍어내기’ 대응을 한 이유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박 회장이 국정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조 전 비서관이 ‘3인방’을 공격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얻는 실익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 유출 역시 결국 조 전 비서관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도, 조 전 비서관을 중심으로 한 조직적인 문건 유출이 있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분석이다.
■ 문건 유출 파악 뒤에도 왜 회수 노력 안 했나?
김기춘 비서실장이나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등 청와대 핵심들이 지난 6월 문건의 대량 유출 사실을 파악하고도 왜 이를 적극적으로 회수하려 하지 않았는지도 궁금증을 키우는 대목이다.
조 전 비서관은 정 비서관에게 유출된 문건 사본 100여장을 첨부해 ‘빨리 회수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전달했지만 청와대에선 별다른 후속 조처가 없었다. 조 전 비서관 쪽이 자신들의 문서 유출 잘못을 가리기 위해 ‘선수’를 치고 나왔다고 판단한 듯하다. 당시 정 비서관은 ‘문건 유출 경로’ 등을 조사한 조 전 비서관 쪽의 보고서를 본 뒤 “조 전 비서관(은 유출을 하지 않았다는) 해명을 해주는 내용밖에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며, 오히려 분명한 유출 경로를 밝히라는 주문을 했다고 한다.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유출 문건 회수에 나서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선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조 전 비서관 등을 통해 회수에 나설 경우 일이 더 커질 수도 있어 다른 경로로 회수하려 했거나, 회수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었다고 봤을 수 있다. 김 실장이 애초 지난 1월 조 전 비서관한테서 ‘정윤회씨 국정개입’ 보고서를 받아봤을 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문건에 등장하는 내용이나 인물의 민감성 탓에 별다른 조처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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