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청와대. 행정부의 인물난은 그 토대가 되는 여당(국회)의 인물난에서 비롯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박근혜 정부의 ‘비선 논란’ 와중에 이런 질문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근데,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는 그렇게 사람이 없나?” 정윤회라는 ‘그림자’가 10년 넘게 박근혜 대통령의 주변에 드리워질 수 있었던 것도, 박 대통령 주변에 그만큼 인물이 없었다는 말도 될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김대중 정부를 ‘마이너의 메이저 정권’, 노무현 정부를 ‘마이너의 마이너 정권’이라고, 그리고 이명박 정부를 다시 ‘메이저의 메이저 정권’, 박근혜 정부를 ‘메이저의 마이너 정권’이라고 부르곤 한다. 애초 이런 말이 나왔던 이유는 노무현 정부 때의 심각한 ‘인물난’ 때문이었다. ‘마이너의 마이너’니까 사람이 없다는 설명인 셈이었다. 그런데 이런 인물난은 이른바 우리 사회의 메이저(주류)들이 정권을 잡았다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행정부의 인물난은 그 토대가 되는 여당(국회)의 인물난에서 비롯된다. 사실 인물난은 지금의 국회가 더 심각하다. 1992년부터 여의도 정치를 해 왔던 야당의 한 중진은 “19대 국회에서 가장 우려스런 현상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초선 스타 의원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실세로 통했던 여당의 한 의원도 “앞으로는 (대기업에) 취직 못하는 이들이 정치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인 수준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여권보다 야권에 더 두드러진다.
정치권에서 이런 상황을 타개하자고 내놓는 대책 중의 하나가 이른바 혁신인 것 같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보수혁신’을 내세워 국회의원들의 기득권을 내려놓는다는 혁신안을 연일 내놓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새누리당에 선수를 빼앗기고 있다’며 나름 혁신안을 내놓고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혁신안에 대해 본질적으로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 혁신의 목적이 무엇인가. 정치권은 지금 더 나은 인재가, 더 좋은 인물이 들어올 수 있도록 경쟁하고 있는가? 내용을 보면 솔직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한겨레> 칼럼에서 우리 정치인들은 “정치가 혐오의 대상이 되도록 애를 쓴다”고 갈파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먹고 싶은 과자에 침 뱉어놓고 다른 아이들이 못 먹게 하는 것처럼, 정치인들도 진흙탕 싸움을 만들고 “이런데도 정치판에 뛰어들 거야?”라는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검찰이 하고 있는 정치인들 대상 수사를 겹쳐 보면, 점차 정치인, 국회의원은 ‘매력은 점차 없어지는, 위험도는 점점 높아지는 직업’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정치인들이 의도하는 결과는 아니겠지만, 지금 추세로 가면 정치와 국회의 힘은 더 약해질 것이다. 반비례해 인재가 몰리는 민간과 대기업은 더 강해질 것이다. 일본 국회의원들을 만나고 돌아온 우리 국회의원들이 가끔 “일본 국회의원들은 시의원들 같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의원들의 자질이 떨어진다고 얕보는 말이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정치인들의 질적 저하가 일어났기에 이런 말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일본 정치(인)의 질적 저하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국가의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결국 대기업이 아니라 국가 지도자, 바로 정치인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의 명언이다. 우리는 우리 수준보다 더 낮은 정부와 정치를 가질 위기 상황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 수준에 맞는 정부와 정치를 가질 권리가 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에게 물어야 한다. “당신은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정치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있는가?”
이태희 정치부 정치팀장 hermes@hani.co.kr
이태희 정치부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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