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 소환 앞두고
‘문건 떠돌면 안된다’ 내용 담긴
기자와의 녹취록 검찰에 제출
‘문건 떠돌면 안된다’ 내용 담긴
기자와의 녹취록 검찰에 제출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이지(EG) 회장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야 할 시간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정윤회씨 국정개입 동향’ 문건의 한쪽 당사자로 지목을 받고 있는데다, 문건을 둘러싼 의혹이 새로 불거질 때마다 박 회장을 직간접적으로 지목하는 증언 등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파문이 종착역에 이르기 위해선 박 회장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 회장은 ‘정윤회씨 국정개입’ 문건 파장으로 자신과 정윤회씨의 갈등 구도가 부각되는 상황에서도 “내가 나서면 (누나인) 대통령에게 폐가 된다”며 외부와 접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여기에 과거 ‘은둔’ 이미지까지 겹치면서 그의 침묵은 오래갈 듯했다. 하지만 최근 움직임을 보면, 그도 검찰 조사 등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을 단단히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예정된 해외여행도 취소했다. 변호사를 통해 이번 청와대 문건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에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녹취록 등을 제출(<한겨레> 12일치 1면)하는 등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도 이미 시작했다. 검찰은 다음주께 박 회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할 방침이며, 박 회장 쪽도 “필요하면 나가서 설명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 주변에선 박 회장이 이런저런 의혹이 제기되는 것에 대비해 여러 자료를 수집해놓은 것으로 전해져,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정국에 또 다른 파장이 일 가능성도 있다.
■ 박 회장 왜 직접 유출 문건 받으러 나갔을까?
박 회장이 최근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은 지난 5월12일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건을 갖고 있는 <세계일보>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녹음한 내용이다. 녹취록에는 박 회장이 당시 기자와 나눈 ‘청와대 보안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이런 게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등의 대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당시 보안 사고를 걱정하는 대화를 나눴던 자신이 청와대 문건을 유출하는 데 관여했을 리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녹취록을 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박 회장의 이런 뜻과 달리 당시 박 회장과 문건을 입수한 기자와의 만남 자체는 역설적으로 박 회장이 지금까지의 설명과 달리 이번 사건 및 여러 사안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무엇보다 박 회장이 기자에게 건네받은 A4 100장 분량의 청와대 문건 내용이 박 회장과 그 주변에 줄을 대려는 이들에 관한 내용이라고 한다. 이런 내용이 아니면 민간인 신분인 박 회장이 기자를 만나거나, 청와대 보안이 심각하다는 걱정을 굳이 할 이유가 없다. 당시 박 회장을 만난 <세계일보> 기자는 12일치 신문에 ‘박 회장이 당시 청와대(박 대통령)에 대대적인 보안점검을 요청하고, 남재준 국정원장에게도 (경위 파악 등) 도움을 부탁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박 회장이 청와대나 국정원에 직접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점을 스스로 밝힌 셈이다.
하지만 이후 박 회장은 무슨 일인지 직접 나서지 않고, 실제 <세계일보>가 박 회장에게 전달한 문서 100장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오아무개 전 행정관을 거쳐 ‘비서관 3인방’ 중 한 명인 정호성 제1부속실장에게 전달됐다. 국정원도 박 회장 쪽을 통해 문건 유출과 관련된 경위 파악 의사 타진을 받았으나 직접 나서지 않았다. 박 회장이 자신이 나서는 게 꺼려져 조 전 비서관을 통해 청와대에 알리는 ‘우회로’를 택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떤 방식이었든 결과적으로는 문건 유출에 대한 조사 요청은 박 회장 쪽을 경계하는 청와대 참모들에게 막혀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 박 회장에게 전달된 문서가 조 전 비서관에게 건너간 것으로 볼 때, 박 회장과 조 전 비서관이 매우 가까운 관계일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또 어찌됐든 청와대 참모들은 문서 대량 유출 사실을 파악하고도 후속 조처를 하지 않았는데, 당시 박 대통령에게 이런 상황이 제대로 보고됐는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 ‘정윤회씨의 박지만 미행설’…또 다른 파문의 ‘불씨’
이번 파문의 와중에 박 회장과 대립하는 구도가 형성된 정윤회씨가 검찰 조사에서 박 회장 등과 대질신문을 요구한 부분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지난 3월 두 사람의 갈등이 처음 불거진 계기인 ‘정윤회씨의 박지만 미행설’ 보도를 놓고도 두 사람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당시 미행했다는 사람이 썼다는 자술서를 검찰에 제출하라’고 박 회장을 압박하고 있지만, 박 회장 쪽은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 언론은 ‘박 회장 쪽’을 인용해 “(시사저널 보도 뒤) 정씨가 찾아와 오해라고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이 가증스러웠다”고 보도했다. 정씨와 박 회장 쪽의 갈등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이 ‘박지만 미행설’ 사건도 검찰이 조사를 진행중이고 박 회장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어서, 결론이 날 경우 둘 중 한 명은 치명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박 회장의 친구인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윤회씨가) 박지만과 대질신문하겠다니 참으로 가당치도 않다”며 “그(정윤회)는 대통령에 대한 일말의 애정도 없는 허세”라며 박 회장에 대한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밖에 최근 청와대가 이번 ‘정윤회씨 국정개입’ 문건의 작성과 유출 진원지로 지목한 이른바 ‘조응천 그룹’과 박 회장이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가운데 1명인 전아무개씨는 박 회장의 측근인데다 박 회장이 직접 그를 ‘김앤장’에 취직시킨 것으로 알려졌고 조응천 전 비서관도 전씨의 청와대 근무를 추천한 일이 있다. 청와대가 ‘조응천 그룹’으로 분류한 <세계일보> 간부 김아무개씨와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 고아무개씨도 박 회장과 연관이 있다. 김씨는 박 대통령이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낼 때 3년 정도 비서관으로 일하며 박 회장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고씨는 박 회장이 유출된 문건을 전달받은 뒤 국정원에 의사 타진을 한 당사자일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은 지난 7일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오찬 자리에서 박 회장에 대해 “지만 부부는 여태까지 청와대에 온 적도 없고 앞으로도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안 올 것”이라고 못박은 바 있다. 향후 박 회장이 이런저런 일에 관여할 여지를 공개적으로 차단해버린 셈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검찰이 최근까지 박 회장과 관련해 제기된 여러 의혹을 확실히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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