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서울 용산구 청파로에 서울시 구청장협의회가 내건 ‘박근혜 대통령이 무상보육 약속을 지켜달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아이를 폭행하는 사건이 터졌는데, 느닷없이 ‘무상보육 폐지’ 논란이 불붙었습니다. “이게 다 무상보육 때문이다. 전업주부들까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보육의 질이 하락했다”는 목소리까지 나옵니다. 일하는 여성뿐 아니라 전업주부의 자녀들까지 어린이집에 보냈기 때문에 보육교사들의 부담이 늘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응당 어린이집과 관리·감독기관의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 어째서 엄마들의 잘못으로 변질된 걸까요? 책임질 사람들은 사라지고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들끼리 편을 갈라 다투고 있는 현상, ‘전업주부 vs 일하는 엄마’ 간의 전쟁으로 번지기까지의 과정을 <한겨레>가 차근히 짚어봤습니다.
‘0~5살까지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대선 후보 시절 내놓은 ‘제1 공약’이자 현 정부가 대표적으로 내세우는 복지 정책입니다. 원래 0~2살 아동 보육료 지원은 하위 70% 가정에만 주어졌는데,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이 지원을 모든 가정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유례 없는 저출산 고령화(2013년 출산율 1.19명) 현상이 이어지자 아이를 낳기만 하면 국가가 키워주겠다고 장담한 것입니다. “자녀를 가지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축복이 될 수 있도록 국가 책임 보육 체계를 확실하게 세우겠습니다. 5살까지의 아이는 국가가 무상보육을 책임지겠습니다.”(18대 대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공약집)
당시 무상보육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를 두고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박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한가?’ 끈질긴 질문에는 “그래서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것 아닙니까”로 맞섰습니다. 당선 이후에도 박 대통령은 “새로운 세금은 걷지 않겠다”, “보육사업처럼 전국 단위로 이뤄지는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며 재원 마련 부담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지 않겠다고 거듭 확언했습니다.
하지만 무상보육은 시행 반년도 못 가 수요 폭증을 맞았습니다. 어린이집 위주의 지원 정책이 빠르게 자리 잡아갔고, 핵가족 체계에서 혼자 버겁게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해야 했던 전업주부의 ‘숨겨진 수요’까지 드러나면서 어린이집 이용률이 정부의 예상보다 빠르게 늘었습니다. 정부 예측은 70만명이었지만, 지난해 맡겨진 0~2살 아이는 80만명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 전업주부의 종말)
■ ‘중앙정부 vs 시도 지자체·교육청’ 대결 구도
동아일보 1월19일치 사설.
2013년 3월 무상보육이 전격 시행된 지 반년 만에 누가 돈을 부담할 것인가를 두고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갈등이 시작됐습니다. 무상보육은 새로 시행된 0~2살과 교육부 누리과정에 연계된 3~5살 과정으로 나뉘는데요, 이 가운데 0~2살의 무상보육 재원은 지자체가 상당 부분을 부담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경우, 어린이집 지원금의 80%는 서울시가 내고 중앙정부는 20%만 부담합니다. 공약을 한 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인데, 부담은 서울시가 대부분을 지는 꼴입니다. 보육 부담이 급증하자 지자체들은 20%포인트만큼 정부가 더 많이 분담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불발됐습니다. 가장 부담이 컸던 서울시는 2013년 9월5일 200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해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 정부는 이번엔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또다시 재원 떠넘기기를 시도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2014년 9월26일 발표한 ‘2015년도 예산’ 편성에서 누리과정(3~5살 영유아 보육료) 예산 2조2000억원 전액을 삭감해버렸습니다. 한마디로 교육청이 알아서 재원을 마련하라는 얘깁니다. 0~2살 무상보육은 지자체가 부담하고, 3~5살 무상보육은 시·도교육청이 부담하는 꼴입니다.
■ ‘무상급식 vs 무상보육’ 대결 구도
시·도교육청의 불만이 커지자 정부는 뜬금없이 “무상급식 재원으로 무상보육을 하면 될 것 아니냐”고 주장합니다. 2011년 찬반 주민투표를 거친 뒤 전면 무상급식 시대가 열리면서 이미 자리 잡은 무상급식 예산을 전용해 무상보육에 쓰라는 지시였습니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 거부 선언’으로 정부를 거들었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교육청 재정이 부족한 것은 방만하게 운영한 탓이며 무상급식 때문에 교육의 질이 하락했다”고 지원 사격을 했습니다. 때를 놓칠라 청와대는 ‘무상보육은 박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므로 지켜야 하지만 무상급식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런 전략은 세 가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먼저 중앙정부는 복지 재원을 마련하지 못한 책임을 회피한 채, 지자체나 시·도교육청과의 예산 갈등이 문제의 본질인 것처럼 대결 구도를 세웠습니다. 진보교육감에 색깔론까지 덧씌우면서 ‘정치 싸움’을 만들었습니다. 이 와중에 본질인 정부의 보육 예산 부담 거부 문제는 사라졌습니다. 시민들은 이어지는 ‘이념 갈등’ 소식에 넌더리를 냈습니다.
둘째,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무상보육의 혜택을 받는 영유아 부모와 무상급식의 혜택을 받는 초중등 부모를 갈라놨습니다. 졸지에 부모들이 아이들의 나이에 따라 갈려 다투는 구도가 됐습니다. 첫째 아이의 급식비와 둘째 아이의 어린이집 보육비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 가정도 있었습니다.
셋째,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추진된 무상급식 정책에 재정 파탄의 책임을 돌리면서 무상보육에 예산을 투입하지 않은 박근혜 정부의 책임론에 대한 시선을 분산하는 효과까지 거뒀습니다. 책임은 사라지고 갈등만 남은 꼴입니다.
■ ‘전업주부 vs 일하는 엄마’ 대결 구도
비정규직 철폐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오체투지로 청와대로 향하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경찰에 의해 막히자 108배를 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책임 회피형 갈등 유발 편 가르기 전략’은 이번 어린이집 폭행 파문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어린이집 폭행 사건으로 공분이 일던 지난 16일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보육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이루지 못한 무상보육 체제도 근본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19일자에는 ‘허벅지로 눌러 아기 재우고 4세 아이 얼굴에 주먹질’이라는 기사 곁에 ‘선별 복지 급한데 무상시리즈만 늘어’, ‘무상보육 1조 줄이면 민간시설 4000개 국공립 전환 가능’이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21일 보건복지부는 이 흐름을 타고 ‘전업주부는 양육 지원을 해주지 말자’고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제안했습니다. 그렇다면 맞벌이 가정 자녀는 100% 국가가 맡아줄 거라 안심해도 될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22일 박 대통령은 슬쩍 기업에 책임을 떠넘깁니다. “눈치 보여서 육아휴직을 못 쓰는 ‘사내 눈치법’이 없어져야 짠 하고 선진 대한민국이 된다.”
일하는 엄마를 1년 휴직시켜 집에서 아이를 보게 하면 이들은 1년 동안 전업주부가 되는 거겠죠. 물론 육아휴직 활성화는 옳은 이야기지만, 집권 3년차인 이제 와서 뒤늦게 기업에 한마디 한다고 해서 ‘짠’하고 선진국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네요.
이런 구도 속에서 다시 책임은 사라지고 갈등만 고스란히 아래로 전가됐습니다. 전업주부들은 일하는 엄마들과 ‘누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도 당당할 수 있을 만큼 더 힘든 처지인지’ 겨뤄야 하게 됐습니다. 일하는 엄마들은 “집에 있으면서 별일 없이 종일반 보내는 엄마들은 뭐 하는 거냐”고 따지고, 전업주부들은 “직장 나가면 커피 마시면서 한숨 돌릴 짬이라도 있다. 24시간 애랑 있는 전업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고 맞섭니다. 아이가 보육교사에게 폭행당한 사실에 한마음으로 통곡했던 엄마들이 순식간에 두 편으로 나뉘었습니다.
육아노동과 가사노동을 병행해 온 전업주부들이 받은 상처는 큽니다. 기사 댓글에는 1% 상류층 여성에 대한 혐오를 전업주부에게 전가하는 글들이 넘쳐납니다. ‘남편 등골 빼먹는 여자들’, ‘지들이 낳아놓고선 방치한다’, ‘지들이 좋아서 낳았으면서 왜 나라에서 돈 주길 바라냐.’ 등등…
“회사 그만두고 빠듯하게 아이 키우는 동안 단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전업이라는 이유로 남편 등골 빼먹는 년 취급이나 받고요. 직장 생활보다 힘든 육아에 집안 일을 그렇게 해도 맨날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하네요. 힘든 것 알아달라는 게 아니라 무시당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드네요.” (육아커뮤니티 ‘맘스홀릭’에서 발췌)
■ ‘흡연자 vs 비흡연자’ 대결 구도
갈등 유발 편 가르기는 ‘꼼수 증세’에서도 있었습니다. 담뱃값 인상이 대표적인 ‘편 가르기 증세’로 꼽힙니다.
흡연자의 세 부담을 늘리면서도, ‘비흡연자 vs 흡연자’ 간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 세 부담에 대한 반발을 ‘담배 피는 사람들’의 일로 제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공공장소에서의 간접흡연 문제, 국민 보건 문제 등을 들먹이면서 여론도 자연스레 담뱃값 인상에 호의적이 됐습니다. 담뱃값 인상을 필두로 주류세, 자동차세 등 인상에 대한 논의의 길도 열렸습니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흡연자들에 대한 ‘혐오 정서’를 십분 활용한 전략입니다.
이 모든 갈등 유발의 이유는 ‘증세’가 박근혜 정부의 금기어이기 때문입니다. “국민 부담을 늘리기 전에 먼저 정부가 예산의 비효율적인 부분을 줄이고 나라 살림을 투명하게 꾸려나가는 게 우선이다. 세입 확대는 비과세 감면제도를 정비한다거나 지하경제를 활성화(양성화를 잘못 말함)해 마련할 것이다”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2013년 한해 동안 8조5000억원에 이르는 ‘세금 펑크’가 났습니다. “공약 발표할 때 재원 조달 방안 검토해서 실현 불가능한 건 다 뺐다”고 자신하던 것과 달리, 박대통령이 제시한 재원 확충 비과세 감면 축소나 지하경제 양성화 등은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어, 비과세 감면을 축소해 2014~2015년 2년 동안 2조7000억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으나, 올해 세법 개정안은 4000억원을 확충하는 데 그쳤습니다. (▶관련 기사 : ‘복지 확대’ 구호뿐…재원 대책은 없어)
2008년부터 네 차례에 걸친 법인세 감세(최저세율을 13%에서 10%로, 최고세율은 25%에서 22%로)로 법인세 세수는 25조원(2008년 7월)에서 22조원(2013년 7월)으로 3조원 가량 줄었지만, 법인세 인상은 역시 ‘증세’인 데다 기업이 과세 대상이니 대안이 되지 못했습니다. ‘증세인 듯 증세 아닌 증세 같은’ 서민들의 간접세만 늘어난 이유입니다.
■ ‘정규직 vs 비정규직’ 대결 구도
‘교육재정파탄위기극복과 교육재정확대를 위한 국민운동본부’
뿐만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차별 철폐’ 정책 또한 마찬가지로 ‘책임 회피형 갈등 유발 편 가르기’입니다.
지난해 11월 기획재정부 이찬우 경제정책국장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으로 인한) 기업 부담을 덜기 위해 정규직 정리해고 요건 완화를 검토중”이라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정규직을 해고하기 쉽게 만들어서 기업의 부담도 줄이고, 비정규직과의 형평성도 맞추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국장은 “노동시장 개혁은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정규직 보호 합리화를 균형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다수의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하향 평준화’하겠다는 말입니다. 자연스럽게 비정규직 문제가 ‘정규직 vs 비정규직’ 간의 대립 구도로 편 가르기가 됩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또한 “비정규직 문제 해결 위해서는 정규직 과보호를 철폐해야 한다”식의 발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구도는 원래 ‘정부 및 기업 vs 비정규직 노동자’로 짜여져 정부와 기업에 비정규직 보호 대책을 세우라고 압력을 넣는 쪽으로 진행돼야 맞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기업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정부의 책임은 빠진 채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싸고 ‘의자놀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됩니다. 대표적인 노-노 갈등 부추기기입니다.
과연 정규직 해고가 쉬워진다고 해서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날까요? 오히려 비정규직만으로 채워지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닐까요? 최 부총리 발언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소위 ‘일자리 낙수효과’라고도 할 수 있겠는 데요. 과거에도 낙수 효과를 기대하고 기업에 세제 지원을 퍼부었지만, 결과는 사상 최대의 기업 유보금 보유로 나타났습니다. 자본은 정부가 압박하지 않으면 절대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으니까요.
‘책임 회피형 갈등 유발 편 가르기 전략’을 유용하게 활용한 것은 공무원 연금 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차분하게 개혁 대상인 공무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8년 전인 2007년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전환이 이뤄진 국민연금과 대조하면서 ‘국민 연금은 요만큼인데 공무원 연금은 펑펑 내준다’ 식으로 여론몰이를 했습니다. ‘철밥통에 연금까지 펑펑 받는’ 공무원에 대해 여론은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 연금이 국민연금처럼 반토막이 난다고 해서 다른 국민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하향 평준화되면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이 될까요?
‘보육재정파탄대응공동대책위원회’
세계를 호령했던 대제국 로마의 정치술 비결은 ‘분할통치’(Divide and rule)였습니다. 편을 가르고, 서로 이권을 두고 싸우게 하는 전략입니다. 점령지 주민 일부에게만 시민권이나 이권을 주고 다스리게 했고, 점령한 영토별로는 경제적 이해관계나 종교, 민족감정 등을 이용해 분열을 꾀하고 서로 견제하게 했습니다. 양자택일을 강요하면서 하향 평준화를 유도하는 현 정부의 ‘편 가르기 전략’이 이 통치법을 닮았습니다. 당신은 흡연자입니까, 비흡연자입니까. 정규직입니까, 비정규직입니까. 전업주부입니까, 일하는 엄마입니까. 그리고 그 대립항마저 사라질 때, 당신은 어디에 서 있을까요. 이제부터라도 ‘시민의 이름’으로 목소리를 모아 정부에 책임을 추궁해야 하지 않을까요?
전업주부의 보육료를 지원하지 않겠다던 뉴스가 뜬 날, 육아커뮤니티에서 한 누리꾼(toda****)은 이렇게 썼습니다. “전업주부 보육 지원 안 할 수 있다는 기사가 떴네요. 보육교사 논란 - 어린이집 CCTV 설치 논란 - 전업주부 보육 지원 폐지 - 형평성 위해 맞벌이 가정도 지원 폐지 - 무상보육 사라짐. 전 이렇게 갈 듯한데요. 누구는 손 안대고 코 풀겠네요.”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또 누구를 위해 서로 다투고 있는 걸까요.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