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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전업주부의 종말

등록 2013-02-10 09:49

무상보육 이후 노동 대상과 정체성 흔들리는 전업주부… 언제든 비정규직으로 옮아갈 ‘잠재적 실업자’, 무상보육과 함께 질 좋은 일자리 함께 생겨야
“공짜라서 무조건 보낸 건 아니에요. 아이와 놀 만한 친구들이 모두 어린이집에 간 것이 가장 컸죠. 처음엔 떼어놓기 안쓰러웠는데 아이와 잠시 떨어져 있는 만큼 아이에게 더 잘하게 되는 것 같아요.”-최선해씨

“가사노동에 이어 자녀 양육도 사회화되며 전업주부 고유의 업무가 사라졌다. 지금 영·유아 자녀를 둔 엄마들은 자발적·비자발적으로 전업을 택했지만 5~10년 뒤에 새로 결혼하는 사람들은 결코 전업주부를 선택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인하대 이완정 교수

“1% 계층을 모델 삼아 취업자는 주부를 부러워하고, 전업주부는 자아실현을 하는 취업 여성을 부러워한다. 아파트 한 동에 사는 여자들 모두가 서로를 부러워할 이유가 있다. 경쟁을 통해 행복을 확인하는 세대의 불행한 생존법이다.”-이선영 박사

아무도 몰랐다. 2012년 3월 0~2살 무상보육이 시작되자 어린이집 앞에 돌연 긴 줄이 늘어섰다. “분명 대기번호 12번이었는데 보육료 지원한다는 뉴스가 나온 뒤 112번이 됐더라고요. 정확히 제 앞에 100명이 들어온 거죠.” 육아휴직을 끝내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려 했던 최경숙(32)씨의 1년 전 이야기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들에게 보육료를 전액 지급하겠다는 안은 처음엔 맞벌이에게만 유리한 것처럼 보였다. 24개월이라고 해도 말문이 막 트일 시기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의사소통이 활발해지고 사회성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36개월 이전까지는 집에서 키우는 쪽을 선호한다. 어린이집 이용률이 가장 낮은 연령대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시설 위주의 무상보육을 하겠다는 발상을 두고 “적은 예산으로 무상보육 시늉만 내려 든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전업주부들은 역차별을 당하느니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는 쪽을 택했다. 정부 예측 70만 명. 그러나 결과적으로 지난해 0~2살 아이 80만 명이 어린이집에 맡겨졌다. 2011년과 비교하면 15만 명이 늘어난 수다.

무상보육 전쟁 뒤, 적극적 전업주부들

정부가 몰랐던 것은 복지가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점만은 아니었다. 전업주부에게 육아시설에 대한 욕구가 얼마나 잠재돼 있는지 사회는 몰랐다.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보육교사 김희정씨가 보기엔 무상보육을 기점으로 어린이집에 맡겨지는 돌 전 아이들이 부쩍 늘었단다. “이전만 해도 우리 어린이집에는 돌 전 아이가 보통 2~3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6명이에요. 엄마들이 처음엔 ‘오전만 맡길게요’ 그러시더니 몇 달 지나니까 오후에 데려가시더라고요.” 어린이집 새 학기는 3월에 시작되지만 올해부터 무상보육 대상이 0~5살로 늘어나 김희정씨가 일하는 어린이집은 일찌감치 모든 연령의 정원이 찼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려고 일을 그만두었던 전업주부들이 적극적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19개월 된 아이를 처음 서울 노원구의 어린이집에 보낸 최선해(35)씨는 이렇게 말한다. “공짜라서 무조건 보낸 건 아니에요. 아이와 놀 만한 친구들이 모두 어린이집에 간 것이 가장 컸죠. 처음엔 떼어놓기 안쓰러웠는데 아이와 잠시 떨어져 있는 만큼 아이에게 더 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하루 종일 옆에 끼고 있을 땐 종종 아이한테 짜증도 내고 그랬거든요.” 한국노동연구원 윤자영 박사는 미취학 아이를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에 맡기면 여가시간이 얼마나 늘어날지 분석해봤다. 2004년 국민생활시간 조사 자료를 근거로 분석한 이 연구에서 0~2살 자녀를 둔 전업주부가 집에서만 아이를 키운다면 하루 평균 4시간10분 정도의 여가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아이를 시설에 보냈을 때도 여가시간은 4시간25분으로 하루 15분 남짓한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미취학 자녀를 둔 부모의 시간 사용 분석’) 윤자영 박사는 “아이를 시설에 보내도 전업주부가 할 일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다만 애를 데리고 하느냐, 없이 하느냐의 차이로 노동강도와 여가시간의 질적인 차이가 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고 했다. 0~3살 영아기에는 엄마가 종일 아이를 돌보는 전일제 모성 돌봄이 가장 좋다고 알려져왔다. 그러나 핵가족 구조에서 혼자서 자녀 양육을 전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무상보육은 고립된 가족 내에서 혼자 하루 종일 육아에 매달려야 하는 전업주부에게도 숨 쉴 틈을 내주는 정책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만 쳐다보고 있으니 하루가 너무 길어요. 집의 시간은 다른 터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한 인터넷 게시판에 전업주부가 올린 글이다. 무상보육으로 전업주부들은 끝없는 가사노동 터널에서 대피소를 얻었다. 그러나 동시에 전업주부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회의가 몰려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홈페이지 방문자를 대상으로 주부의 가사노동 시간을 조사해보니 ‘미취학 아이 보살피기’가 절대적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30대 주부는 평균 하루 가사노동 시간 9시간18분 중 2시간35분을 아이를 돌보는 데 보낸다.

노동의 가치가 돈으로 쉽게 환산되고 돌봄 노동이 사회화되면 전업주부들은 ‘일하러 나가야 한다’는 사회의 암묵적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전업주부가 없어지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크다.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유치원 버스를 타는 아이들.
노동의 가치가 돈으로 쉽게 환산되고 돌봄 노동이 사회화되면 전업주부들은 ‘일하러 나가야 한다’는 사회의 암묵적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전업주부가 없어지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크다.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유치원 버스를 타는 아이들.

2012년 전체 가구 26.8% 여성 가구주

가뜩이나 가사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노동자 간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아이 돌봄 노동을 덜어낸 전업주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보육교사들이) 일하는 조건이 너무 후지다 보니까 일하지 않는 부모들의 아이들까지 맡아보는 게 심리적으로 힘들 때가 있어요. 일하지 않는 엄마들은 티가 나요. 뒤늦게 와서 점심 먹을 때 데려다놓거나 미용실 갔다가 에어로빅 하고 와서 데려가기도 하지요. 가정육아를 지원해야 하는 건 맞는데 일 자체가 너무 힘들다 보니까 못마땅해지게 되는 거죠.” 한 보육교사의 하소연이다.(윤자영, ‘사회서비스 노동시장 분석’) 전업주부 또한 자기 정체성을 되묻는다. 요즘 인터넷 게시판에는 “전업주부는 잉여?”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은 얼마인가요”와 같은 글이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

인하대 이완정 교수는 무상보육 이후 전업주부의 노동 대상과 정체성이 한꺼번에 흔들리는 상황에 주목한다. “가사노동에 이어 자녀 양육도 사회화되며 전업주부 고유의 업무가 사라졌다. 지금은 아이 맡겨놓고 술 마신다는 둥 몇몇 도덕적 해이만 문제 삼고 있지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변화는 무상보육으로 전업주부라는 직종이 없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영·유아 자녀를 둔 엄마들은 자발적·비자발적으로 전업을 택했지만 5~10년 뒤에 새로 결혼하는 사람들은 결코 전업주부를 선택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징후는 도처에 있었다.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2012년 전체 가구의 26.8%가 여성이 가구주다. 2030년에는 34%로 늘어나리라 예상했다. 이혼율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데다 구조조정과 조기 퇴직으로 남성이 더 이상 안정적인 가장 노릇을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다. 고도성장기에는 안정된 수입을 가진 남편을 둔 중류층 여성을 상징하는 전업주부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라도 비정규 일자리에 종사할 가능성이 있는 미취업 상태 여성 인력으로 여겨진다. 일본 사회학자 야마다 마사히로는 이미 1999년에 쓴 책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에서 “회사나 결혼이 생활 보장이 되었던 시대가 가고 전업주부는 도태될 위험이 높은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며 “전업주부가 사라지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맞벌이를 하며 그럭저럭 생활할 수 있는 정도의 환경에서 각자가 자신의 꿈을 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구조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전업 주부’의 핵심은 ‘전업 어머니’지만

사라지는 직종, 전업주부는 누구인가. 2012년 통계에서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비경제활동인구는 여성의 50.3%다. 여전히 절반을 넘는 대규모 집단이다. 이들의 기본노동 항목은 20가지를 넘지만 핵심은 육아다. 사회학자들은 “전업주부의 일상생활은 자녀의 등하교 시간과 사교육 시간을 중심으로 구조화돼 있다. 모성이야말로 한국 전업주부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흔히들 일하는 여자의 위기는 세 번 찾아온다고 한다. 육아휴직을 마칠 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리고 고3 때. 자녀의 정서적 안정은 물론 교육적 성취까지 철저히 엄마에게 책임을 묻는 구조 탓이다. 인하대 윤홍식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는 좋은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조차도 큰 불안감을 느낀다. 교육 경쟁에서 낙오되는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는 너무 뻔하다. 전업주부는 노동과 생계부양 의무를 면제받는 대신 자식을 좋은 일자리까지 갖도록 할 부담을 지고 있다. 만약 이들이 취업이나 자아실현을 돌아보는 순간 자식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자식이 도태될 가능성도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근거는 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은기수 교수의 ‘비교방법론’ 수업에서는 2012년과 2009년 두 차례에 걸쳐 서울대와 수도권 2년제 대학생을 조사했다. 부모의 취업 상태와 교육 수준, 경제 형편을 묻는 조사다. 그 결과 서울대 재학생들의 어머니는 전업주부 비율이 높았고, 반대로 2년제 대학생들은 맞벌이 부모가 훨씬 많았다. 은 교수는 “고3 때 어머니의 취업 상황을 물은 조사다. 두 학교 학부모들의 교육 수준 자체가 차이가 컸다. 어쨌거나 계층 간에 교육이 대물림되는 현상이 뚜렷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얼핏 어머니의 취업 여부가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소득·교육 수준이 높은 ‘전업 어머니’여서 가능한 경우가 많다. 윤홍식 교수는 “사교육을 따라잡으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지만, 돈 벌러 나가면 교육 관리는 못한다. 대부분의 전업주부 처지는 진퇴양난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부러워하던 전업주부는 누구인가. 여성학을 전공한 이선영 박사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전업주부는 미취업자가 아니라 종신고용을 보장받은 남편과 상속받을 자산이 있고 자식을 취업시킬 능력까지 갖춘 소수일 뿐”이라며 “1% 계층을 모델 삼아 취업자는 주부를 부러워하고, 전업주부는 자아실현을 하는 취업 여성을 부러워한다. 아파트 한 동에 사는 여자들 모두가 서로를 부러워할 이유가 있다. 경쟁을 통해 행복을 확인하는 세대의 불행한 생존법”이라고 했다.

40대는 행복하고 50대는 흔들리고

전업주부 삶의 다른 측면, 자신과 타인의 삶을 살피는 여유와 배려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한귀영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층은 40대 여성이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자기 삶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 이들”이라며 “친구를 찾고 여행을 떠날 여유를 갖춘다. 이들처럼 여백 있는 삶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것이지만 문제는 이런 삶이 40대 중산층 전업주부에게만 국한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여성 취업률은 20대 후반에 71.4%로 가장 높다가 30대 초반에 급격히 낮아졌다가 50대에 62.3%로 다시 높아진다. 남성 가장의 경제적 어려움과 자식들 뒷바라지로 50대 여성의 삶이 크게 흔들리는 탓이다. 더 큰 문제는 전업에서 취업으로 돌아선 여성을 기다리는 것이 대부분 질 낮은 일자리라는 점이다. 윤홍식 교수는 “스웨덴은 무상보육을 하며 여성이 돌봄 노동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질 좋은 공공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라면 전업주부가 여성 근로 빈곤층으로 고스란히 옮아갈 우려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도 이것은 변화의 조짐이지 저주가 아닐지도 모른다. 야마다 마사히로는 “전업주부가 남편이나 자식, 아버지를 향한 퇴로가 열려 있는 한에서는 그들은 변혁의 힘이 될 수도 없고 새로운 사회의 비전이 될 수도 없다”고 못박는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전업주부는 지금까지 ‘가족의 왕국’에 갇혀 점처럼 흩어진 개별적인 사회적 자원이었다. 사회를 중심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일본 청년들을 향해 <하류지향>을 쓴 우치다 다쓰루의 충고는 지금은 전업주부들에게 더 유용할 듯하다. “약자가 약자인 것은 고립해 있기 때문입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0~3세 엄마 양육론
누가’보다 양육의 ‘질’

거부할 수 없는 믿음이다. “인간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많은 수의 아이들이 보육시설에 맡겨져 있다”(세라 블래퍼 허디)지만 발달심리학자 절대다수가 지지하는 이론이다. 아이들은 태어나서 6개월부터 2년까지의 시기에 주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해야 하는데 이때 양육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까지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기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와 어머니가 처음 맺는 관계가 미래 관계의 원형이 된다는 프로이트의 믿음을 미국 심리분석가 존 볼비가 받아들여 ‘애착 이론’이 태어났다. ‘0~3살은 엄마가 키우는 것이 가장 좋다’는 존 볼비의 생각은 현대 부모들에게는 육아의 정설이다. 뒷날 ‘엄마’ 대신 ‘안정된 주양육자’로 대체되기는 했지만 모성의 위력은 몹시 강력해 아버지·할머니·베이비시터 등 다른 주양육자는 어머니보다는 못한 차선책처럼 여겨진다. 많은 여자들이 일을 그만둬야 할지, 아니면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할지 갈등할 때 애착 이론을 떠올린다.

그런데 소수이긴 하지만 애착 이론에 대한 다른 견해도 존재한다. 인하대 소비자아동학과 이완정 교수는 ‘만 0~2세 영아 양육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경험 많고 숙련도 높은 보육교사가 하는 시설 보육이 숙련도 낮은 주양육자보다 궁극적으로 더 나을 수 있다”는 주장을 소개한다.

강한 아버지와 가정에 충실한 어머니상이 지배할 당시 미국에서는 시설 보육의 효과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인식이 대세였다. 그런데 맞벌이가 크게 늘자 조사 결과도 달라졌다. 미국 국립아동보건 및 인간발달연구소는 매년 영·유아 보육조사를 하는데 갈수록 아이들이 시설에서 보내는 시간이 언어·사회·인지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보고가 있었다. 2011년 한국아동패널국제학술대회에서 ‘어머니의 취업 여부가 영아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논문이 발표됐다. 이 연구는 2008년 태어난 아이들을 전업모(277명)와 취업모(378) 환경으로 구분해 만 1살 시점에서 발달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집단은 과정만 다를 뿐 발달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주변에서 육아 지원을 받는 취업모 집단은 전업모 집단에 비해 사회·환경 자원이 많고, 우울이나 육아 스트레스 등 부정적 심리 특성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머니의 부정적 심리 특성이 높으면 아기에 대한 일상적인 양육 배려도 부족할 개연성이 높다. 결국 누가 아이를 키우느냐보다는 양육의 질이 영아 발달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연구를 진행한 이완정 교수는 “그러나 질 좋은 대리 양육 시스템을 국가가 저비용으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딜레마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주의적 관점의 인류학자 세라 블래퍼 허디는 핵가족에서 여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아이에게 여러 대행 부모가 있는 쪽이 아이가 훨씬 더 건강하게 자라는 데 나을 수 있다는 이론을 편 일이 있다. 친밀한 공동체든, 저렴한 비용으로 믿고 맡길 만한 곳이든 우리에겐 쉽게 얻을 수 없는 꿈이다.

신종 아내·신종 엄마
결국은 파트타임 주부

다가오는 종말을 다른 식으로 타개할 수 있다고 믿는 주부들도 있다. 일본에서는 거품경제가 사라진 직후 가정으로 돌아가는 여성이 늘었다고 한다. 이런 경향을 ‘신 전업주부 지향’이라고 부른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도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지만 집에서 가족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신종 아내’(New Wife)들이 급격히 늘었다.

한국에서도 취업 대신 ‘취집’을 택하는 여자 대학생이 많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임옥희 대표는 “요즘 여학생들을 보면 주부가 다시 해볼 만한 직업이라고 믿는 것 같다”며 “예전에는 거의 유일한 공동체의 공간이라고 믿었던 가정 자체가 이미 시장이 된 상황에서 바깥에 나가서 경쟁하느니 가정의 경영자가 되려 한다”고 했다. 이들은 집안 경영을 잘해내는 동시에 거의 예술적 경지의 자녀 교육을 꿈꾼단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체화한 이들 세대의 생존 전략이자 나름의 가치 추구다.

직장도 가사도 잘해내라는 사회의 ‘슈퍼맘’ 요구에 지친 여자들도 ‘신종 엄마’를 택한다. 서울 강남에 사는 김아무개(36)씨는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전업주부로 살기를 택했다. 한국의 ‘신종 아내’들은 아버지의 월급을 받아 부동산이나 주식투자를 하며 자산을 불려온 어머니를 보며 성장했다. 1990년대는 육아에 전념하면서도 자산 관리자의 지위를 잃지 않았던 중산층 전업주부의 황금시대다. 김씨는 주식시장이 마땅치 않자 과외를 시작했다. 그는 단순히 생활비를 보태는 정도가 아니라 가정식 학원을 계획했다. 대출을 얻어 집을 넓혔다. 공들여 동네 엄마들과 인맥을 쌓았지만 과외시장 경쟁은 예상보다 심했다. “이러다간 대출금을 갚기 위해 보험이라도 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자발적으로 전업주부의 길을 택한 많은 여자들이 과외 아니면 보험에 종사하는 파트타이머 주부가 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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