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으로 선출된 유승민 의원(오른쪽)과 원유철 의원(왼쪽)이 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무성 대표의 축하를 받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처음 인사드립니다. 정치부에서 여당 말진(막내)으로 일하는 서보미입니다. 새누리당 의원을 기다리고, 듣고, 받아 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방송 뉴스에서 늘 정치인을 둘러싸고 레이저를 날리고 있는 ‘기자떼’ 중 한명이네요. 오늘은 현장에서 뚜렷하게 관찰되는 ‘친박 소멸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지금 새누리당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용어부터 짚고 넘어갈까요? 친박근혜계의 줄임말인 ‘친박’은 ‘박근혜 계파’, 그 이외를 ‘비박’이라고 합니다. 친박이라는 말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 박근혜’가 치열하게 맞붙었던 한나라당 경선 때 생겨났습니다. 벼랑 끝 승부에서 이명박 후보 편에 섰던 이들을 ‘친이’, 박근혜 후보 편에 서던 이들을 ‘친박’이라 불렀던 것이지요.
당시 박 후보는 이 후보의 비비케이(BBK) 실소유주 의혹을, 이 후보는 박 후보와 고 최태민 목사의 관계 등을 물고 늘어졌지요. 그러다 보니 두 후보 주변으로 몰린 사람들이 특정한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진 않았습니다. 리더가 쟁취한 권력을 나눠 가져 저마다의 목적을 이루려는 꿈을 꾸고 있었겠지요. 친박, 친이가 비전과 가치를 공유하는 ‘정파’보다는 단순한 ‘결사체’에 가까운 이유입니다.
경선 당시 박 후보 캠프의 구성은 다양했습니다. 핵심 그룹은 박 후보가 2004년 한나라당 대표를 맡던 당시 주요 당직에서 함께 일했던 이들입니다. 이들을 ‘원박’(원조 친박)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의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진영·한선교 의원 등이었지요. 또다른 그룹은 아버지인 고 박정희 대통령 인맥인 김기춘 비서실장,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등입니다.
이들을 통해 친박의 정체성을 추정해보면 이렇습니다. 대선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를 자극해야 한다고 계산했던 사람들, ‘티케이(대구·경북) 대통령’이 나오길 바랐던 사람들, ‘영애’를 대통령으로 세워야 한다는 의리를 내세운 사람들 등 이해와 친소 관계로 복잡하게 얽힌 집단이 친박의 원류라 할 수 있습니다.
친박은 똘똘 뭉쳤지만 경선에선 패배했습니다. 그 혹독한 대가로 이명박 대통령 때 치러진 2008년 총선 공천에서 친박들이 대거 탈락하는 ‘공천 학살’을 당하지요. 이들 중 상당수는 정당인 ‘친박연대’를 창당하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결국 한나라당에 재입성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래도 당시 180명이 넘는 한나라당에서 친박은 50여명에 불과했지만 끈끈한 결속을 유지합니다.
영원할 것 같던 친박의 결속을 무너뜨린 건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었습니다. 2009년 5월 재보선에서 참패한 친이계는 화해 제스처로 친박 좌장인 김무성 의원에게 원내대표를 제안합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이를 단칼에 거부합니다.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 김 의원은 이때 ‘탈박’(탈출한 친박)합니다. 그 뒤 바른말 하던 유승민·이혜훈 의원도 대통령에게서 서서히 멀어지면서 ‘짤박’(짤린 친박)이 되지요.
그래도 사람은 미래 권력의 중심으로 모이기 마련인가 봅니다. 2012년 대선 코앞에 치러진 총선에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박 대통령은 황우여·이주영 의원 등 ‘신박’(새로운 친박)을 데리고 ‘선거의 여왕’답게 압승을 거둡니다. 총선 직후엔 “새누리당 의석 153석 중 100여석은 친박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이때가 친박 역사의 정점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박 대통령이 정권을 거머쥔 지 2년 만에 친박은 하염없이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뼛속까지 친박인 ‘종박’(추종하는 친박)을 중심으로 “잘해야 30명이다”라는 자조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1차 충격은 지난해 5월 국회의장 당내 경선 때 찾아왔습니다. 비박인 정의화 의원이 친박인 황우여 의원을 두 배 가까운 표 차이로 이기자, 친박은 흔들렸습니다. 결정타는 그로부터 두 달 뒤, 비박이 된 김무성 의원이 친박 맏형인 서청원 의원을 상대로 압승을 거둔 전당대회입니다. 이 시점을 전후로 ‘홀박’(홀대받은 친박) 또는 ‘멀박’(멀어진 친박)들이 유력한 미래 권력이 된 김 대표 쪽으로 줄을 갈아탑니다. 여기에 지난 2일 실시된 원내대표 경선에서 비박인 ‘유승민-원유철 조’가 친박인 ‘이주영-홍문종 조’에 또다시 대승을 거두자 ‘탈박 선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초선 의원은 “저쪽(비박)은 (유승민 의원 지역구인) 티케이를 중심으로 똘똘 뭉쳤지만 우리는 코어(핵심) 없이 몇명만 움직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때 최강을 자랑하던 친박의 조직력이 이번 경선을 계기로 거의 와해됐다는 뜻입니다. 이러다 곧 “나는 친박이 아니다”라는 커밍아웃이 속출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칠수록,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친박의 때를 벗으려는 몸부림은 더 활발해질 테니까요.
서보미 정치부 정치팀 기자 spring@hani.co.kr
서보미 정치부 정치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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