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8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지난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남다른 감회로 들었다. 평소 “왜 한국에는 ‘가슴을 울리는 정치인의 명연설’이 없을까” 하는 개인적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겠다’, “그분들의 통증을 느끼고, 그분들의 행복을 위해 (새누리)당이 존재하도록 하겠다”는 부분에선 절로 공감의 박수가 나왔다. 그 다음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 역시 ‘감동’은 덜했지만, 진심이 느껴졌다. “성장에서도 유능한 진보”가 되겠다는 다짐을, 문 대표는 경제라는 단어를 100번이나 써가며 거듭 약속했다. 문재인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의 연설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더 치열하게 변하겠다’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그 당의 정치인들은 과연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을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유승민·문재인 두 사람의 선언대로 바뀔 수 있을까? 사석에서 만난 새정치연합 국회의원들이 ‘경제정당론’에 대해 말할 때는 불편한 외투를 껴입은 듯한 표정을 보이곤 한다. 이들은 4·29 재보궐선거에서 뜻대로 풀려가지 않으면 또다시 ‘이명박근혜 심판론’을 들고나올 것이다. 새누리당 곳곳에서도 유승민 원내대표의 연설 내용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이들 역시 뜻대로 풀려가지 않으면 ‘종북세력 심판론’을 들고나올 것이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경로의존성’을 띤다고 표현한다. 한번 가던 길에 익숙해지면, 그 경로가 비효율적이란 사실을 알아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을 말한다. 경로의존성이 가장 완벽하게 작동하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 특히 야권이었다. 그들이 의존하는 경로가 ‘선명야당’, ‘정권심판’ 등의 구호였다. 익숙한 그 길을 고집하면, 야당은 2016년과 2017년을 거치면서 또다시 야당이란 익숙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정치인들은 ‘집권전략’이란 표현을 즐겨 쓴다. 그러나 지금은 집권전략이 아니라 ‘책임전략’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지금은 특정 정치세력의 집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불행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세력의 집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표는 연설에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청년들과 노후 준비를 포기하는 부모들과 삶을 포기하는 어르신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우리의 현실을 말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연설에서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성장전략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짚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은 ‘고용 없는 성장’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정치권은 ‘경제 민주주의’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지금은 ‘일자리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정치 민주주의’가 소수가 독점하던 정치적 권력을 다수에게 되돌리는 과정이라면, ‘경제 민주주의’는 소수가 독점하던 경제적 특혜와 기회를 다수에게 되돌려주는 행위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일자리 민주주의는 지금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취업의 기회를 더 많은 다수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성장·분배의 전략을 이런 방향에서 다시 짜자는 것이다.
1970년대 국민들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쳤다. 80년대 국민들은 ‘망월동에 부릅뜬 눈’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다. 지금 2015년 국민들은 일자리에 목이 타고, 일자리에 눈을 부릅뜨고 있다. 그래서 나는 기대한다. ‘일자리 민주주의’를 외치는 정치인을.
이태희 정치부 정치팀장 hermes@hani.co.kr
이태희 정치부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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