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페이스북 갈무리
페북에 장문의 글 “병도 모르면서 처방 내려”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을 지낸 금태섭 변호사가 4·29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내홍에 시달리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 논의에 대해 ‘제 살 깎기’와 ‘책임을 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장문의 글을 썼다.
금 변호사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관련 링크) 에 ‘문제를 알면 해답이 보인다-’안철수 혁신위 안‘에 대한 평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금 변호사는 이 글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에 대해 “병을 알아야 약을 쓸 수 있다”며 “그런데 문제인 대표 지도부는(직전 김한길·안철수 지도부도 마찬가지인데) 무엇이 문제인지 진단을 내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 불쑥 대답부터 내놓았을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런 처방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새정치민주연합의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그건 ‘지겨움’과 ‘책임지지 않는 태도’라고 말했다.
금 변호사는 “우리 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지겹다’라고 할 수 있다”며 “객관적으로 의원들의 선수, 연령 등을 따져보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염증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안다.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대교체’를 내세우는 당내 486 정치인들의 주장이 전혀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은 그들조차(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이야말로 가장)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금 변호사는 이어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제 살 깎기’를 해야하고, 여기서 ‘제 살’은 ‘우리 당의 살’이 아니라 ‘우리 계파의 살’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책임지지 않는 태도’ 문제도 심각하다며 “지난 대선 이후 ‘문-안-문-안’으로 반복되는 이 모습을 보고 누군가 ‘돌려막기’라고 해도 쉽게 반박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이하 글 전문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문제를 알면 해답이 보인다 ? ‘안철수 혁신위 안(案)’에 대한 평가>
※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안철수 전 대표가 혁신위원장 직을 거부했다는 속보가 떴다. 이 글은 문재인 대표가 안 전 대표에게 혁신위원장 직을 제안하고 아직 수락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을 때 쓴 글이다. 안 전 대표의 결정에 상관없이 평소에 하던 생각이라서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올린다.
(문재인 대표가 안철수 전 대표에게 혁신위원장 직을 제안했다. 매우 고심한 끝에 나온 방안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과연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나온 해법인지는 매우 의문이 든다. 새정치민주연합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당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개인적인 생각을 한번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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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재지 말고 직관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자. 작년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당할 당시 대부분의 민주당 인사들은 야권연대를 위해서 잘 된 일이라고 대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김한길 대표와 함께 합당 선언을 한 안철수 대표는 공동대표가 되면서 거의 비상대권에 가까운 권한을 부여받았다. 최고위원의 반수를 공동대표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지명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안철수 대표는 그런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도 당의 혁신에 성공하지 못 했다. 물론 직접적인 사퇴의 계기는 작년 7.30 재보선의 패배였지만, 그 전까지 야당의 체질을 혁신하는 일에 대단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대표로서, 그것도 일반적인 경우와 비교하기 힘든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서도 혁신에 실패했는데, 다른 사람이 대표인 상황에서 아무리 ‘전권’을 부여받는다고 한들 혁신위원장으로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현재의 대표인 문재인도 하지 못 하는 일을 직전에 대표를 지내다가 책임을 지고 물러난 사람이 할 수 있다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안철수 혁신위 안(案)’이 처음부터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상식적인 의문에도 답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혁신을 추진하다보면 당연히 곳곳에서 저항도 있고 불만도 터져 나오게 된다. 때로는 힘으로 물갈이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기득권을 버리게 하고 ‘모두가 사는 길’을 찾아서 관철시켜야 한다. 그런데 겨우 10개월 전에 결과에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한 사람이 “내가 현재의 대표로부터 전권을 받았으니 따르시오.”하면 과연 그런 말이 먹힐까. 당 내에는 문 대표와 안 전 대표 모두와 거리를 두고 있는 정치인들도 많다. 두 사람이 단지 함께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정치인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까.
더욱이 문재인 대표는 4.29 재보선 이후 매우 어려운 처지에서 책임 추궁을 당하고 있다. 전당대회 직후 힘이 살아있을 때라도 혁신은 어려운 법인데, 자기 스스로가 힘이 약해진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전권’을 줄 수 있을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하더라도 “당신들은 뭘 그렇게 잘했다고.”라는 비아냥을 들을 위험이 있지 않을까.
문제를 알아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안철수 혁신위 안(案)’이 가진 근본적인 결함은,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살피지 않고 나온 해법이라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야당의 지도부는 성공을 거둔 일이 없다. 현재 문재인 대표 체제도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만일 ‘안철수 혁신위 안(案)’이 그런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려면, 먼저 어떤 원인으로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병을 알아야 약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표 지도부는(직전 김한길, 안철수 지도부도 마찬가지인데) 무엇이 문제인지 진단을 내리는 일을 하지 않았다. 불쑥 대답부터 내놓았을 뿐이다. 그런 처방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해결책을 찾기 위한 움직임은 이 지점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문재인 체제가 공격을 당하는 이유가 4.29 재보선의 패배라면, ① 그 선거에서 이기거나, 혹은 이기지는 못 하더라도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는지, ② 만약 그렇다면 어떤 점을 잘 못해서 좋은 결과를 못 냈는지 철저하게 분석해야 한다. 당을 혁신하지 못 했던 것이 이유라면, ① 어떤 이유로 당이 지지를 받지 못 하고 있으며, ②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먼저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나온 후에야 ‘안철수 혁신위 안(案)’이든 다른 방식이든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안철수 전 대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말을 할 수 있다. 혁신위원회를 맡아서 당을 환골탈태시키는 일을 하려면 대표로서 권한을 가졌을 당시 무엇을 잘못했는지 납득할만한 스스로의 진단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없이 막연히 ‘이번에는 잘 할 수 있다’는 말만으로 신뢰를 받기는 어렵다.
책임 있는 지위를 맡았던 사람들이 우리 당이 안고 있는 문제를 먼저 스스로 진단하는 일을 해야 한다. 문제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해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작업이 계속 되다보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새롭게 바뀌고 총선이나 대선에서도 승리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의 가장 큰 문제들은 무엇이며 그 해법은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는 정말 개인적인 의견이라 다시 나누어서 본다.
‘지겨움’과 ‘책임지지 않는 태도’
우리 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지겹다”라고 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의원들의 선수(選數), 연령 등을 따져보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염증을 느끼는 것은 누구나 안다.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세대교체’를 내세우는 당 내 486 정치인들의 주장이 전혀 호응을 얻지 못 하는 것은 그들조차(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이야말로 가장)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지 때문이다.
조국 교수가 ‘현역 의원을 40% 이상 교체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하거나, 이철희 소장이 침묵하고 있는 486 정치인을 질타하는 글 을 쓴 것은 그런 면에서 누구나 느끼고 있는 문제점을 짚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최선일까. 너무나 여러 번 나와서 식상한 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제 살 깎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제 살’은 ‘우리 당의 살’의 의미가 아니다. 그야말로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 계파의 살’이 되어야 한다.
안철수 전 대표가 친노의 살을 깎자고 나서면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문재인 대표가 비노나 호남 정치인들에게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호통을 치면 그게 먹힐까. 반발만 불러올 것이다. 오직 ‘자기 편’만이 ‘자기 편’에게 양보를 강권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을 먼저 해내는 계파는 권위와 진정성을 가지고 다른 계파에게도 혁신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계파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는 것은 건강한 모습의 ‘계파정치’다. 흔히 우리 당의 가장 큰 문제가 계파정치라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된다면 문제가 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소위 말하는 ‘비노’를 보자. 4.29 재보선 이후에 비노는 문재인 대표의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사퇴까지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당 안팎을 막론하고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 하고 있다. ‘비노’가 목소리를 높이는 근거가 ‘스스로 혁신을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 ‘문재인이 못 했다’는 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우리는 재보선 결과에 책임지고 물러났는데, 그쪽은 왜 안 물러나나’라는 얘기를 하는 것일 뿐이다. 친노라고 다르지 않다. 말만 무성할 뿐 실제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제살을 깎는 모습을 보여준 일은 한 번도 없다. 때문에 ‘지겨움’을 없애고 당을 참신하게 바꾸기 위한 일은, 스스로 자기 편의 살을 깎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책임지지 않는 태도’의 문제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역시 이것저것 떠나서 외형적으로 드러난 우리 당 지도부의 모습을 한번 보자.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표는 대선후보로서 당 대표의 권한을 행사했다. 대선에서 실패하고 나자 김한길-안철수 체제가 되었는데(물론 처음에는 김한길 대표 단독 체제였다가 합당 후 공동대표가 되었다), 7.30 재보선 이후에는 전당대회를 거쳐 다시 문재인 대표가 되었다. 그런데 4.29 재보선으로 어려움을 겪자 다시 안철수 전 대표를 ‘전권을 가진 혁신위원장’으로 세운다고 한다.
이런 말까지 해도 될지 모르지만, ‘문-안-문-안’으로 반복되는 이 모습을 보고 누군가 ‘돌려막기’라고 해도 쉽게 반박할 수 있을까.
물론 선거 패배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지도부가 바뀌었고, 그때마다 ‘책임을 진다.’는 말을 하기는 했다. 그러나 단순히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책임을 다하는 것일까. 더욱이 상대방이 잘못하면 또다시 당권을 장악할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이야말로 무책임한 것이다.
나는 한번 당을 대표하는 자리를 맡았다가 성과를 내지 못 하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철저하게 분석해서 해명하는 처절한 자기고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야말로 당이 바뀌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당의 진로를 결정하는 일을 하려면,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 그런 문제를 극복하려고 하는지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얘기하지 않고 회전문처럼 지휘부가 바뀌는데 어떻게 발전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안철수 혁신위 안(案)’은 언뜻 보기에 책임을 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분산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도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패했을 때 당 대표와 전권을 가진 혁신위원장이 서로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체제로 가다가 성과를 내지 못 하면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스스로 진단해보려는 움직임이 그야말로 없어질 것이다)
‘제 살 깎기’와 ‘책임을 지는 모습’, 이것이 우리 당이 시급하게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묘수로 난국을 돌파하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기본부터 하나하나 다시 해 나갈 때 야당도 바뀔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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