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가운데)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지난 29일 여야가 합의처리한 국회법 개정안의 행정입법 수정 요구 조항과 관련해 정부의 국회 입법권 침해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김태년, 오른쪽은 전해철 의원.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야당이 꼽은 ‘상위법 위반’ 14개 사례
지난해 4월 자유무역협정(FTA) 피해보전직불금(직불금) 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던 전국한우협회는 현재 행정소송을 다시 내는 것을 검토중이다.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특별법)에 따라 지급될 직불금 규모를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가 2013년부터 대폭 줄였기 때문이다. 당시 특별법에 따라 추산하면 한우 1마리당 약 5만5000원 정도로 지급될 피해보전 직불금이 행정입법인 ‘고시’에 따라 1만3000원으로 깎인 것이다. 직불금 제도는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수입농산물의 증가로 국내산 농축산물 가격이 떨어지면 그 차액의 90% 정도를 보전해 주는 제도인데, 정부의 ‘입김’으로 4분의 1이 줄어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일 국회가 만든 법을 정부가 행정입법으로 무력화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로 이 사례를 들었다. 한우 1마리당 지급될 직불금이 깎인 것은 2013년 농식품부가 직불금 산정 기준을 만들면서 특별법에 없던 ‘수입기여도’(직불금을 계산할 때 가격 하락 원인 중 해외 수입으로 인한 피해 비중을 적용하는 것)라는 개념을 넣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2013년 4월 ‘농업인 등 지원위원회’ 심의를 거쳐 수입기여도라는 산정기준을 행정입법인 장관 고시로 밀어붙였다. 김영록 새정치연합 의원의 추산에 따르면 2013년 2000억원의 예산이 300억원으로 대폭 깎였다. 지난해까지 김 의원 등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법률 해석 결과 수입기여도를 반영하는 것은 현행 법령상 불가능하다”고 수차례 지적했지만 농식품부는 아예 이를 명문화하는 입법도 검토중이다.
새정치연합은 이날 이처럼 시행령·시행규칙 등의 행정입법이 상위법을 위반하거나 문제 소지를 가진 14건의 사례를 공개했다. 강기정 새정치연합 정책위원회 의장은 정부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 권한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 논란을 의식해 “법하고 충돌하는 것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야당의 눈에 거슬리는 시행령을 고치겠다는 점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새정치연합이 이날 공개한 사례는 정부가 국회 동의를 얻기 어렵고, 논란이 예상되는 정책을 행정입법을 통해 밀어붙이거나 현재 검토중인 것들이다.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 달리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살 무상교육) 예산을 시도교육청이 부담하게 하기 위해 시행령 개정을 최근 추진중인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김태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간사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1조는 교부금 지원 대상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는데 보육시설인 어린이집은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며 “명백히 상위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가 22조원을 들여 추진한 4대강 사업도 정부의 시행령 남용의 전형적인 사례로 지적된다. 정부가 지난해 의료기관의 부대사업(영리사업)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공포한 것도 “의료영리화 정책”이라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발을 의식해 ‘우회로’를 택한 사례로 꼽힌다. 당시 국회입법조사처와 대한변호사협회는 “의료법의 위임입법을 벗어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새정치연합은 학교 앞에 호텔을 짓는 것을 열어주는 학교보건법 장관훈령 제정, 임금피크제를 회사 쪽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하려는 고용노동부의 취업규칙 변경 추진도 ‘시행령 공화국’의 한 단면이라고 지적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무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은 아비 없는 시행령 같았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법의 아들 같은 시행령은 아비의 뜻을 잘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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