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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박근혜는 메가와티인가

등록 2015-06-19 20:43수정 2015-06-20 09:46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뒤 어법과 행태에서 기막힌 공통점을 보여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겨레>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뒤 어법과 행태에서 기막힌 공통점을 보여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겨레> 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의 마거릿 대처’라고 불리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한국의 메가와티’라고 불려야 한다.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의 딸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박근혜와 메가와티는 여러 점에서 닮은꼴이다. 아버지가 나라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이고, 그 후광으로 대통령이 됐다는 점부터 공통점은 시작된다. 두 사람은 대통령 취임 전후로 표변했다는 점에서 쌍둥이 같은 모습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애면글면, 대통령이 된 뒤에는 오불관언이다. 화장실 가기 전과 간 뒤에 돌변한 태도 같다.

두 사람은 정치인으로서는 부족한 언변을 장점으로 살렸다. 준비한 원고가 없으면 말이 꼬이는 이들은 토론이나 대담을 피했다. 대신, 대중을 상대로 ‘외마디’를 던지는 충격과 신비주의 요법을 구사했다. 1993년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독재정권은 당시 인도네시아민주당 전당대회를 방해했다. 전당대회가 당수 선출도 못하고 폐회를 2시간 남기자, 메가와티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신이 당원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실질적으로 당수라고 간단명료하게 선언했다. 정식 전당대회에서의 유세 대결이 버거웠던 메가와티로서는 다행이었다. 박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지방선거 운동 도중에 피습을 받고 나서는 “대전은요?”라는 한마디로 선거운동을 마감한 것과 비슷하다.

어쨌든 두 사람은 야당 시절에는 외마디로나마 대중에게 다가가려고 애면글면했다. 그런 태도는 대통령이 확정된 순간부터 돌변했다. 2001년 7월23일 당시 부통령이던 메가와티는 탄핵당한 압두라만 와힛의 대통령직을 승계한 순간부터 기자와 대중들과는 담을 쌓았다. 그는 대통령 취임 발표문을 5분 동안만 읽고는 기자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사라졌다. 메가와티는 앞선 대선에서 예상을 깨고 자신을 눌러 대통령이 된 정적 와힛에 대한 탄핵을 주도했다. 탄핵 정국 기간 동안에는 그의 주변에 들끓던 기자들은 그렇게 갑자기 사라졌다. 박 대통령도 2012년 12월20일 첫 당선자 회견을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준비된 원고 낭독으로 갈음했다. 물론 기자들과의 문답은 없었다. 그 뒤로는 회의에서 참모에게 지시하는 형태로 국민들에게 일방적 메시지를 전했다.

메가와티의 오불관언은 2002년 200명 이상이 숨진 발리 폭탄 테러 때 절정에 이른다. 메가와티는 사건 직후부터 아무런 관련 언행이 없었다. 특히 사망자의 대부분인 외국 관광객이나 테러 방지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국내외 압력이 들끓자, 그는 해외 순방을 나가는 길에 발리를 사건 발생 17일 만에야 방문했다. 그는 발리 테러 1주년 현지 추모행사 때에도 참석 여부를 놓고 실랑이하다가 대리인을 파견했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에서 박 대통령이 보여준 어법과 행태를 상기하면, 당시 메가와티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2004년 대선 결선투표에서 참패당한 메가와티는 패배를 인정하는 언급을 하지 않았고,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식에도 불참했다. <뉴욕 타임스>는 물러나는 그에 대해 “침묵과 냉담으로” 나라를 이끌었는데, 떠날 때도 마찬가지라고 평했다. 신문은 “그의 습관적 침묵은 지지자들조차도 분노케 했다”며 “그는 대통령직을 타고난 권리라고 보았으나 그 직을 수행할 지적인 깊이는 부족했다고 비판자들은 말한다”고 전했다. 유력지인 <자카르타 포스트>는 “무지와 독기가 그에 대한 묘사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유체이탈 화법’ ‘아몰랑’(아! 나는 몰라, 몰라) 등 비슷한 얘기가 지금 박 대통령에게 쏟아진다. 2년 반 뒤 청와대를 떠날 때 그는 어떤 얘기를 들을까?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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