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일 오전 청와대 본관 접견실에서 ‘5개 중견국 협의체(MIKTA) 국회의장단 회의’를 위해 내한한 인도네시아 이르만 구스만 상원의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정의화 국회의장은 2일 자신이 주도해 만든 ‘믹타(MIKTA·5개 중견국 협의체) 국회의장단 회의’ 참석자들의 청와대 방문에 초대받지 못했다. 오찬으로 예정됐던 행사가 이번주 들어 ‘접견’으로 축소되면서 초청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국회의장실은 공식적으로는 “의전상 조정된 것이지 불참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비공식적인 답변에서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믹타는 한국과 멕시코·인도네시아·터키·오스트레일리아 5개 중견국가로 구성된 협의체로, 2013년 한국이 제안해 만들어졌다. 대통령 면담 수준이 갑자기 낮아진 이유에 대해 청와대는 중요한 ‘비공개 일정’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요국 국회의장을 동시에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일정이 며칠 사이 ‘갑자기’ 들어왔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사이가 불편해진 정의화 국회의장을 피하기 위해 외교 행사까지 축소한 것 아니냐는 정치권의 추측에 더 믿음이 가는 이유다.
여당과 정부 인사들을 만나다 보면 대통령의 ‘낯가림’에 대한 이야기를 적잖게 듣게 된다. 한국계 부인과의 뜨거운 사랑으로 ‘한국 사위’로 불리는 래리 호건 미 메릴랜드주지사가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간곡히 요청했지만 거부당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 인사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청하지만 모두 수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 만난 외교부의 한 인사는 “과거 정부에 비해 박근혜 청와대가 해외 인사 면담에 인색한 것 같다”고 전했다. 대통령의 면담은 최고의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외교다. 대통령이 국익을 위한다면 좀더 많은 해외인사들을 만날 필요가 있다는 아쉬움이 배어 있는 말이었다.
대통령이 면담보고 대신 서면보고를 선호하고, 본관 집무실 대신 관저에서 업무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관저는 대통령 혼자 사는 집으로, 제2부속실 직원들만 오가는 곳이다. 이렇게 되면, 본관에서 근무하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조차도 수시로 대통령을 면담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병기 실장과 가까운 인사로부터 “성완종 리스트 초기에 ‘브이아이피’(VIP·대통령)에게 성완종과의 관계를 모두 보고드려서 오해를 받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이 실장과 대통령의 관계가 편하게 만나는 사이는 아닌 것 같다는 분위기를 전해 들은 적도 있다. 올해 초의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에서 드러난 바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이른바 ‘3인방’을 제외하고는 비선 라인도 없는 것 같다.
물론 “대통령이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있다”는 한 여당 의원의 설명도 있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을 비공개로 만난 이들에게는 철저한 보안을 요구하기 때문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을 비공개적으로 만나는 이들은 자기 차량을 이용해 청와대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에서 통지한 장소에서 청와대 차량으로 갈아타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방문 기록’도 남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나 보안이 철저하기에 ‘누가 대통령을 따로 만났다더라’는 소문조차 나지 않을까.
이런 말들을 듣다 보면 아침마다 살펴보는 청와대 대통령 일정이 떠오르곤 한다. 박 대통령의 공개일정은 보통 1개 정도다. 2개 이상일 경우가 드물다. 그런 일정을 볼 때마다 “대통령은 과연 누구를 만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니, 누군가를 만나기는 하는 걸까?
이태희 정치부 정치팀장 hermes@hani.co.kr
이태희 정치부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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