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8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원내대표 사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8일 ‘평의원’으로 돌아간 유승민 의원은 ‘원내대표’ 자리를 잃어버린 대신 ‘대선주자’란 자리를 얻었다. 사퇴를 전후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그는 여권의 선두그룹으로 올라섰다. 대신 평탄한 길 대신 험로를 가야하는 대가를 치러야할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의원은 9일 오전 국회에 나와 당직자와 기자들에게 “고마웠다”, “나 때문에 고생 많았다”며 한 명 한 명에게 ‘고별’ 악수를 건넸다. 마침 지나가던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먼저 다가와 “힘내시라. 훌륭하시다”며 두 손을 맞잡기도 했다. 유 의원은 “야당이 많이 도와줬다”고 화답했다. 그는 ‘앞으로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서울에 있으면 의원회관에 있고, 지역구 관리를 위해 대구도 가려 한다”고 답했다.
평의원으로 돌아가지만, 예전처럼 칩거하며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주변에선 전망한다. 유 의원과 가까운 한 의원은 “예전과는 조금 달라질 것 같다”며 “국회의원 유승민이 생각하는 ‘따뜻하고 정의로운 보수’와 관련해 생각이 맞는 의원들과 토론도 하고, 같이 입법 활동도 활발히 할 것 같다”고 했다. 다만 그는 “아직 모임 결성 등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유승민 사단’인 경제민주화실천모임 소속 김세연·이종훈·민현주 의원 등과 함께 지난 4월 국회 대표연설을 통해 제시한 ‘신보수의 길’의 내용을 채워 가면서, 향후 당내 ‘수구보수’에 맞서는 ‘개혁보수’로서 재기를 도모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도 전날 사퇴 기자회견에서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다”며 ‘유승민의 실험’을 예고했다.
유 의원에겐 그간 ‘티케이(TK·대구경북) 지역 정치인’이란 한계가 있었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는 과정에서 ‘전국구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한 정계 원로는 “유 의원이 여당에서 가장 뚜렷한 대선주자가 됐고, (청와대 편을 든) 김무성 대표는 끝났다”며 “어제 사퇴 기자회견을 본 주변 지식인들은 다 그렇게 이야기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친박근혜계의 집중적인 견제로 유 의원이 곧바로 다시 정치 중심에 등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유 의원도 이를 의식했는지, 전날 함께 일했던 부대표단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저 때문에 마음 고생 많으셨다. 내년 선거에서 꼭 이겨서 정치를 계속 해야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자신과 뜻을 같이 해 준 초선 의원들에 대한 덕담인 동시에 험난한 앞날에 대한 걱정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실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며 박 대통령을 반민주 세력으로 비판하는 듯한 그의 사퇴의 변을 두고선, 벌써부터 친박계에선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일단 내년 총선에서 지역(대구 동구을)에서 먼저 살아남고 봐야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유 의원이 정치의 중심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당내에서 지지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대중적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 의원은 이번 ‘유승민 정국’에서도 소수의 원내 부대표단하고만 거취와 전략을 상의했다. 이에 대한 뒷말도 나오고 있다. ‘신보수의 길’을 선언한 지난 4월 국회 연설도, 당내 공감대를 형성하는 사전작업없이 일방적으로 화두를 던진 것이 한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