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몸도 불편한 여자애가 집에나 있지 왜 나가냐”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는 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장애여성’은 ‘소수자 중의 소수자’였다. 1997년 ‘국제장애여성리더십포럼’ 한국 대표단장을 지낸 뒤 1998년 그는 장애여성 인권단체 ‘공감’을 설립하며 장애여성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정신지체 장애여성 성폭력 사건을 쟁점화하고, 장애여성 성폭력 상담소를 만들었다. 2002년 장애인이동권연대회의 공동대표를 맡아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서울 종로구 혜화동 로터리와 광화문을 오가며 “장애인도 버스를, 지하철을 타자”고 외쳤다. 최근까지도 그는 장애아동 교육, 장애인 차별 문제에 매달려 왔다. 박영희(54)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의 이야기다.
그를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 인권위원으로 추천하는 안건은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60명 가운데 찬성 99표, 반대 147표, 기권 14표로 부결됐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자였다는 ‘딱지’ 때문이었다. 박 대표를 추천한 새정치민주연합마저 찬성표를 던지지 않은 의원이 최소 22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주변에서 지켜봐온 이들은 누구도 그의 정체성을 ‘통합진보당’으로 보지 않는다. 단지 “소수자의 목소리를 내달라”는 요청에 2008년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게 죄라면 죄라는 게 시민사회의 평가다. 민노당이 통합진보당으로 바뀌고, 2012년 총선에서 그는 비례대표 17번을 받았지만 ‘부정선거’ 논란이 불거지자 곧바로 자진사퇴하고 탈당까지 했다. 그럼에도 국회는 그의 20여년간의 활동 대신 ‘통합진보당 출신’이란 옛 꼬리표만 봤다. 그를 인권위원으로 추천했던 새정치연합도 지난달 의원총회에서 박 대표에게 ‘부적격자’라는 낙인을 찍은 바 있다. 박 대표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정치나 정파나, 계파 같은 건 잘 모르겠다. 단지 이번 일로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묻히는 나쁜 선례가 될까봐 걱정스럽고, 안타까울 뿐이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