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왼쪽)과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3월1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회의 시작 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기고
수의계약 바꿔 F-35 선정 강행에
‘미 기술이전 불가’ 지적 모르쇠
한국형전투기 개발 사업 난관
이제와 핵심 계약내용 몰랐다니…
수의계약 바꿔 F-35 선정 강행에
‘미 기술이전 불가’ 지적 모르쇠
한국형전투기 개발 사업 난관
이제와 핵심 계약내용 몰랐다니…
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국감)는 큰 이슈 없이 막을 내리는 듯했다. 내년이 총선인 국회의원들의 국감 집중력은 떨어져 보였다. 그러나 이번 국감에서 대형 사건이 하나 터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의원은 9월17일 방위사업청(방사청) 질의에서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이 큰 문제에 봉착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우리 정부가 미국 록히드마틴이 개발중인 스텔스 전투기 F-35 40대를 도입하기로 계약했지만, 한국형 전투기 개발에 필수적인 능동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비롯한 핵심 기술 4개 분야의 이전을 미국 정부가 이미 올 4월에 거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약 7조원을 록히드마틴에 지불하면서 기술을 받아내지 못하느냐”는 비난 여론이 정부를 향했고, 급기야 청와대 민정라인은 방사청이 청와대에 이 점을 보고하지 않았다며 조사를 시작했다.
공군한테 전투기 노후화는 치명적 위기다. 영공 수호 능력과 대북억지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노후화된 전투기는 파일럿을 위협하기도 한다. 공군은 차기 전투기 사업과 함께 국산 전투기를 개발해 전투항공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길 바란다. 국산 전투기 개발은 비용 절감, 전투항공력 유지, 항공산업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합리적인 방안이다. 그러나 당장 소요예산이 문제였다.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에 약 8조원,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에 약 18조원이 예상됐다. 인천공항 건설비가 약 7조6천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따라서 정부는 공개입찰을 통해 차기 전투기 사업 선정업체에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을 위한 기술이전과 사업투자 등을 계약조건으로 설정해 이 두 사업을 연계한다. 이를 통해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 선정업체가 기술이전과 자본투자를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에 제공함으로써 개발 비용 일부를 부담하는 것이다. 이러한 절충교역은 두 사업을 엮는 얼개였다. 공개입찰로 진행된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 막바지 2013년 9월,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보잉,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은 각각 F-35와 F-15SE, 유로파이터를 입찰했다. 그러나 록히드마틴은 예산 초과,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은 계약조건 위반으로 최종 탈락했다. 결국, 보잉의 F-15SE가 최종 낙찰되는 것으로 예상됐지만,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위원장으로 있던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보잉사를 부결시켰다. 그리고 이듬해 2014년 3월24일, 차기 전투기 사업은 록히드마틴의 F-35를 수의계약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그러나 공개입찰 체계가 수의계약으로 전환되면서 핵심기술을 차기 전투기 선정업체로부터 이전받고자 했던 얼개가 끊어지게 됐다. 2011년부터 정부 안팎의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핵심 4개 분야의 기술이전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업체가 보유한 국방기술 해외 이전은 미국연방수출통제법상 정부의 사전 허가가 필수다. 따라서 업체의 기술이전 공약을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한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기술이전 정책으로 인해 국산 전투기 개발 사업이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또한 미국 정부가 업체를 통해 개발중인 F-35와 같은 전투기를 수의계약할 경우, 최종 비용과 인수 시기, 기술이전 내용이 우리 쪽에 불리해지므로 좀더 신중히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이들은 기술이전을 위해서 차기 전투기 사업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을 선정업체에 확실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개발 중인 전투기를 수의계약하면서 기술이전을 받을 수 있다고 공언했다.
전문가들의 우려는 7월1일 방사청이 새정치민주연합 백군기 의원실에 제출한 보고자료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물론 당시에는 이 내용이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방사청 보고는 이미 올 4월 ‘미국 정부가 한-미 방산기술협력위 등 양국간 잇단 회의와 접촉에서 차기 전투기 절충교역 협상을 통해 논의된 4건의 핵심기술 이전이 불가하다고 2015년 4월 최종통보’한 것으로 명시했다. 또한 경쟁입찰 과정에서 방사청은 KF-X 관련 기술을 51건 요구했지만, 수의계약 당시에는 42건으로 9건을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최종합의는 25건으로 마무리돼, 17건의 기술이전이 빠지게 되었다. 수의계약으로 인해 경쟁입찰 때보다 기술이전이 부실하게 된 것이다. 경쟁계약에서 수의계약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바꾸어가면서 F-35를 선택했지만, 핵심기술 이전이라는 얼개가 빠지면서 국산 전투기 개발 사업의 미래가 불확실해진 것이다.
이 두 사업을 면밀히 관찰한 전문가의 입장에서 필자는 차기 전투기 사업의 핵심 계약 내용을 청와대가 몰랐다며 방사청을 조사하고 나섰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 사업 진행 중의 비리 정황이 있다면 밝혀내야 한다. 그러나 차기 전투기 사업을 수의계약으로 전환시킨 당시의 국방장관이 김관진 현 국가안보실장이라는 점, 여러 자문회의에서 기술이전의 어려움을 보고받은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현직이라는 점, 6월에 방사청이 야당 의원한테까지 협상 결과를 보고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청와대가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최종 책임이 청와대에 있음에도 방사청에 대한 체벌적 조사는 이 정권의 또다른 유체이탈적 책임회피로 보일 뿐이다.
우리가 수십조원의 혈세를 들여 미국산 전투기를 구입하면서도 동맹국 미국한테서 기술이전을 거부당하는 상황은 한-미 동맹의 적나라한 서글픈 민낯이다. 우리 정부가 록히드마틴과 진행하는 무기 사업은 차기 전투기 사업 7조3419억원뿐만 아니라, 차기 이지스 구축함 탑재용 이지스 전투체계 1조5천억원과 K-F16 개량사업 1조8천억원으로 총액이 약 11조원에 육박한다. 이쯤 되면 “왜 정부는 이렇게 많은 사업을 한 업체와 진행하면서 ‘갑질’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하지만, 동맹 앞에 서기만 하면 “같이 갑시다”라는 구호만 외쳐댄다. 이러다 자주국방의 대들보인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이 한낱 꿈으로 남을까 걱정이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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